첫걸음을 떼기까지
- 만드는 쪽이 되고 싶어
- 응?
- 받는 쪽 말고 주는 쪽. 소비하는 쪽이 아니라 만드는 쪽이 되고 싶다고.
평범한 일상의 어느 날, M에게 툭하고 던진 말이었다. 이날 M에게 던진 말은 오히려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래, 난 만드는 쪽이 되고 싶은 거야.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맨 처음 시도는 캘리그라피였다. 예쁜 글씨와 그림으로 성경구절을 필사하고 싶었다. 원데이 클래스를 등록하고 그 다음엔 적정 가격 수준의 소모임에 가서 배우기를 시도했다.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와 함께 준비물의 번거로움을 즐길 수 없어서 8회의 횟수도 다 채우지 못하고 포기했다. 함께 등록했던 동생의 핀잔에는 "아니, 난 언젠가는 꼭 배울건데, 캘리그라피!" 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그 사이 또 몇 번의 이직이 있었고, 캘리그라피 독학책이 쌓여갔다. 하지만 흥미와는 다르게 꾸준히 이어갈 수가 없었다. 글씨 쓰는 걸 좋아하고, 말씀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것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수준에는 이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클래스101이라는 페이지를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되었다. 아이패드로 하는 디지털캘리그라피! 수강 제목을 보자마자 이거다! 라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던 아이패드 미니를 팔아서 애플펜슬을 샀다. 아이패드 6세대는 새로 구입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수업을 등록했다.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던 프로크리에이티브 어플도 구입했다. 이번에야말로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수업은 디지털 캘리그라피 수업이라기엔 부족했다. 오히려 프로크리에이티브 사용 설명서에 가까웠다. 그때만해도 프로크리에이티브 사용 설명서조차 구하기 쉽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했지만 나름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난 아날로그 세대라 온라인 강의가 맞지 않았다. 미미한 성과만을 거두고 수업 기간은 끝이 났다. 한숨이 절로 났다.
이직한 지금의 회사는 많이 바쁘지 않았고, 넘쳐나는 시간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처했다. 난 지루함과 싸워야했다. 그런 내게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의 조합은 새로운 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화된 무기와도 같았다. 잘 써지지 않는 캘리그라피를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으로 직접 그리는 것과는 너무 많이 달랐고 브러쉬에 대한 이해도 없었기 때문에 원래 그렸던 그림의 절반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생각처럼 되지 않자 짜증이 났고,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보면서 이것도 아닌가 싶어 아이패드를 한 구석에 쳐박아 두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포기를 잘하는 사람일까. 어릴적 꿈이었던 만화가도, 그렇게 좋아했던 책과 글쓰는 일도 지금은 하지 않는다. 좋아한다면서 꾸준하지도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 자책하는 마음이 커져가자 그때부터는 단순한 취미나 즐기고자 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었지만 가벼운 스트레스와 함께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책과 그림, 글쓰는 일들을 왜 포기했을까?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 글과 그림에 대한 누군가의 코멘트를 극도로 두려워했던 나는, 온라인에 기록된 글들도 전부 다 비공개로 해두고 나 혼자만 봤었다. 그림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 나쁜 말을 들으면 회복되지 않을 내 멘탈을 걱정해서, 그 어떤 평가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발전 없이 중도포기 하게 했던 하나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번엔 공개를 해보자. 사람들의 관심을 한번 견뎌보자.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18년 7월 11일, 용기를 내자 라는 글과 함께 내 그림을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했다. 그리고 내가 견뎌야했던 건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무관심의 시기를 지나야만 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고 타인도 납득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타난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내키는대로 그렸고 그릴 게 없을 땐 쉬었다.
그냥저냥 지내다가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그리고 이 직업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추상적이고 막연했던 꿈의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짜집기하듯 정보를 모아봐도 정보가 너무 없었다. 콘텐츠 크리에이트라는 분야 자체가 너무나 방대했기에 한마디로 정의내리기가 어려운 듯 보였다. 하지만 몇가지 정보를 통해 내가 정해야할 몇가지 숙제가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1. '어떤' 콘텐츠를 할 것인가?
2. 그 콘텐츠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정기적인 업로드가 가능한가?
3.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소재인가?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야하는 길고 지루한, 답이 없지만 모든 것이 답이 되는 세계로 발을 들여야만 했다. 나의 취향이 확고한가? 표현력이 있는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가? 이 고민을 아무리 해도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답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콘텐츠와 마케팅, 크리에이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책을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유익한 정보를 얻어왔던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실행하고 있는 66일 챌린지와 빡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답을 얻어낼 때까지, 내가 만들고자 하는 습관은 다음과 같다.
1. 주 1권 독서
2. 주 1회 서평
3. 매일 그림일기 기록하기
4. 매일 30분씩 운동하기
서평을 기록할 공간으로 브런치를 택했다. 브런치도 내가 여러번 시도하고 포기한 습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때까지. 어떤 분야의 콘텐츠를 재생산해낼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