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먼지잼 Dec 22. 2021

재택근무 일기

지구불시착 글이다클럽 첫 모임, 두 번째 시간

재택 중에는 좀처럼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다. 거치적거릴 사람 없이, 내 방에 갇혀서 고양이와 함께 노곤노곤 녹아내리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 7월부터 이어진 재택이 처음에는 여름방학 같았다. 어른이 된 이후로 맛보지 못한 방학의 감각에 마냥 들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방학은 어릴 때도 딱 처음 일주일만 신났다. 아무 자극 없는 매일이 계속되자, 자꾸 자극적인 것을 입에 넣었다. 맵고, 짜고, 달고, 고소하고, 심심하고, 새콤하고, 쌉쌀한 것을. 그러자 뱃속이 커다랗게 부풀대로 부풀어, 휑한 바람 소리가 났다. 웅웅 소리에 매일 밤 귀가 울린다. 아 짜증 나.  


이 와중에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건 시간뿐이다. 크리스마스 파티도 못하는데. 여행도 못 가는데.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게다가, 무려 토요일이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디즈니 플러스, 최신 개봉한 영화들, 옛날 드라마까지 모두 다 섭렵해서 크리스마스에는 볼게 남아 있지도 않은데.  


문득 현실에 발목을 잡혀 지구에 불시착한 것처럼 중심을 잃는다. 뻥튀기 마냥 속이 텅 빈 마음에 중력이 가해진다.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은 걷어차도 채이지 않고, 굴려도 구르지 않는다.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큰일이다. 마음을 달래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맛있는 것도, 재밌는 볼거리도, 여행도, 친구도 소용없다. 무엇으로 채워야 웅웅 울음소리가 잦아들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기분이 좋아질까. 반대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대면 기분이 좋아질까.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아질까. 근데, 왜 기분이 좋아지려고 애써야 하는 거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의식하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3시의 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보편적이지만 보편적이지 않은, 같은 향수를 쓰는 사람, ㅂ에게.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 도망친 곳에서 만난 소설. 대체할 수 없는 말. 대체할 수 없는 사람. 대체할 수 없는 일상. 대체할 수 없는 마음의 빈 공간.  


생각이 많아지면, 발이 무거워진다. 발이 무거워지면, 마음이 묶인다. 마음이 묶이면, 기분이 나빠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덜 생각하고 발을 바삐 움직여야 한다. 걷자. 목적지가 없어도, 동기가 없어도, 동행이 없다면 혼자서라도 무작정 걷자. 묶인 마음을 풀어주고, 기분을 달래야지. 굳이 채우려 하지 말고, 빈 곳에 바람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좀처럼 요동칠 거리가 없는 마음에게 여행을 선물해야지. 코시국이니 뭐니 뭐 어쩌라고. 재택근무인지 프리랜서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모르겠다는 언니의 핀잔. 떠날 수 있는 곳도, 돈도, 동행도 없지만, 뭐 어쩌라고. 한창 흘러야 할 때, 흐르지 못해서 고여 버린 마음 좀 달래겠다는데. 새해가 밝을 테니 내 마음도 좀 밝혀보겠다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