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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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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잼 Jul 16. 2023

지나가는 비

2023-07-16

모든 비는 지나간다.

지나가지 않고 머무는 비는 없다. 지나가지 않고 머물 수 있는 비도 없다. 지나감은 비의 숙명이다. 변하지 않는 속성이다. 

 

금기는 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안되는 걸 알지만, 불가능에 도전해보고 싶은 건 사람의 속성이다. 

인간의 본능이다. 본성이다. 그래서, 비를 보고 사랑을 노래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가, 생각한다.


줄기차게 와장창 내리던 비가 슬그머니 미스트처럼 귀찮아졌다. 잦아드는 비가 반가웠지만 동시에 공기에 습도는 가득해서,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데도 입을 꾹 다물고, 고집스레 버티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뺨을 슬그머니 잡아 늘리기만 해도 와앙-하고 눈물 구슬을 와르르 쏟아낼 것 같은데. 고집스러운 하늘이 미련해 보인다. 


왜 저렇게 참고만 있을까. 어차피 지나갈 뿐인데.


정말 비처럼 옷을 적시고 지나간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소나기인 줄 알았다가, 오랫동안 나를 푹 적실 장마일 줄 알았다가, 예상을 깨고 순식간에 끝나버렸던 그 계절의 비가. 처음엔 비가 아니라 사랑일 줄 알았는데. 많은 계절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변덕도 그런 변덕이 없다. 날씨보다 더 일관성이 없던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잡으려고 했다는 게, 이제와 돌아보니 그저 우습기만 하다. 지나가는 비는 온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는데. 그 비를 따라가면 우리가 평생 함께 할 수 있을 줄만 알았던 것 같다. 나는 그 비를 계속 추적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비가 어디로 가는지, 비 자신도 몰랐을 텐데도.


그래서 우리는 이별했다. 장마가 오기도 전에. 장미가 피기 시작할 즈음 시작해서 장미가 다 피고, 지기도 전에 헤어졌다. 아무 의도 없이 비는 오고, 그 의도 없음에도 꽃은 피어난다. 그게 참 억울하고 어이없었다. 교통사고 당한 기분이었다. 


요 며칠 내린 비는 그 사람 마음처럼 정함이 없이 내리다 말았다. 안 오나 싶으면 오고, 그쳤나 싶으면 오고, 이제 계속 오려나보다 했더니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치고 말았다. 그 변덕스러움에 나는 울음을 참았다 터뜨렸다,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랬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지나가는 비에 마음을 쏟는 일 같은 거, 너무 우스운 이야기라.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었어서. 

아, 나는 사랑이었나 보다, 하고. 지나가는 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무르고 싶으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숙명을, 본인도 깨닫지 못한 채

어딘가 머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뒷모습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랑은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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