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 숙제
임기의 3/4인 1년 6개월쯤 지나자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제 아이들에게 보건 교육은 누가 해주지? 라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고 없어도 보건 교육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교사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교사 교육을 실시한다고 해서 보건 수업이 지속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캄보디아에는 보건 교사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응급처치 교육이라면 아이들이 다쳤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 선생님들이 보건 수업을 따로 하지 않더라도 쓸모 있는 주제라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수업을 나가는 학교 중 하나인 끄다이 껀달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 곧 다가올 방학을 이용해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응급처치교육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나의 계획은 시작부터 좌절 위기에 처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교사들의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캄보디아에서는 교사의 근무시간외 교육에 대하여 참석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돈은 드릴 수 없지만 구급함과 교재를 만들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대답은 변하지 않으셨다. 나는 지역 내 초등학교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소속은 교육청이다. 교육청이라면 현지 교사들을 움직일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기관장님께 달려갔지만 기대하는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속상했다. 교장선생님과 기관장님 모두 야속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현지 초등 교사들은 백불 안팎의 박봉에 시달리며 생계를 위해 학기 중에도 투잡이 기본이다. 그런 선생님들이 방학이라고 집에서 편히 쉴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JICA단원 Chiemi Shimizu(이하 Chiemi)가 웃기지만 웃지 못 할 일화가 있었다며 하소연을 했다. 평소와 같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던 중 기관에 다다라서 넘어졌고 이내 학생들이 Chiemi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로 인해 다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Chiemi를 위해 학생들 중 한 명이 약을 하나 내밀었는데 그 약은 바로 Tiger balm(호랑이 연고)이었다며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한국인에게 호랑이 연고로 잘 알려진 'Tiger balm'은 캄보디아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쓰이고 있다. Chiemi의 일화에서처럼 찰과상은 물론이고 두통, 요통, 피부병 등등 모든 치료는 호랑이 연고로 통한다. Chiemi는 응급 처치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간호 단원인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Chiemi의 활동기관은 PTTC(PreyVeng Teacher Training Center)로 학생들은 졸업 후 초등교사가 된다. 그러니 이들을 가르치는 게 곧 교사교육이 되는 셈이다. Chiemi가 원하는 수업 내용도 내가 생각한 주제와 딱 맞아떨어졌다. Chiemi에게 응급처치교육을 도와주겠다고 하고 서로의 일정을 확인하고 각자의 기관에 상의하기로 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가 싶더니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번에도 역시 돈이 문제였다. 내가 활동하는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진행하면 구급함을 제작하는 비용, 유인물 복사비 등등 수업에 필요한 경비를 코이카에서 지원해주는 활동물품비에서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PTTC는 내 활동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활동물품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지원 받지 못할 경우도 생각해야했다. 모를 땐 물어보는 게 상책! 캄보디아 사무소 담당 관리요원님으로부터 협력사업으로 진행할 것을 추천받았다. 선배단원들의 협력사업 사례들을 보면서 같은 코이카 단원끼리의 협력활동만 지원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활동 내용만 적절하다면 타 국가 봉사단원이든 현지인이든 누구와도 협력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응급처치를 주제로 한 일주일간의 교사교육을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 협력 활동의 첫 시작은 나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내가 수업을 나간 학교들에도 구급함과 함께 구급함 사용 매뉴얼, 응급처치 매뉴얼을 전달했다. 수당 지급 문제로 당초 계획했던 기존의 교사들 대신 선생님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들로 대상이 바뀌었지만 이는 도리어 전화위복이 됐다. 교사의 꿈을 안고 있는 학생들이다 보니 수업에 적극적이고 흡수도 빨랐다.
교육을 마친 후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이번 수업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설문 결과를 신뢰해도 될 수 있을지 의심이 생길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만족스러웠다는 의견이 100%, 이러한 교육을 또 받고 싶다는 의견도 100% 가 나왔다. 더 배우고 싶은 주제에도 다양한 의견을 적어 주었다. 일주일간의 경험과 학생들의 의견을 토대로 귀국 전에 교사교육을 제대로 진행하고 싶었는데 방학이 한 달이나 연장되는 바람에 계획에만 그칠듯해 너무 아쉽다.
협력 활동을 통해 얻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자이카 단원과의 활동 교류가 활발해졌다. 이번 협력사업을 기준으로 전에도 자주 만나곤 했지만 대부분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였다. 이후에는 자이카 단원들이 현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음악회에 초대받아 동기들과 함께 K-Pop 공연을 선보이기도 하고, 비록 일정이 엇갈려 참여하진 못했지만 코이카 단원들의 봉사모임인 쏙써바이팀 활동에 초대하기도 하는 등 서로의 활동을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