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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y 12. 2024

완벽하려다간 아무것도 못해

새스커툰 공항은 생각보다 많이 작았다. 그리고 WestJet이라는 생소한 캐나다 저가항공사를 이용해 밴쿠버에서 이동했는데 오히려 거리대비해서 고려해 보면 국외선 가격보다 훨씬 비쌌다. 캐나다 내에서의 항공비용이 더 비쌀 줄이야..


수속은 별다를 게 없었지만 여행객 신분으로 오다 보니 다른 줄에서 대기해야 했고 내 순서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상한 소리 하면 쫓겨납니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됩니다.]


잘 알아듣고 이상한 소리를 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만 하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다 보니 다음 순서가 됐다.


"@#$@#$@#$"

"What?"

"@#$@#$@#$@#$"

"P.. Pardon??"


망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꾸 모르겠다고 되묻자 직원도 갑갑한지 날 노려보는 거 같았다.


"@#@#$@#$ Korean Service? @#$@#$@#$"

"Yes.. yes. plase."


식은땀을 흘리며 궁지에 몰리기 시작할 때쯤 귀에 들어온 말. 어떻게 저것만 내 귀에 들렸지?


빨리 끝낼 수 있는 수속을 놓치고 한국인 통역 서비스를 기다려서 겨우 통과했다. 대기 시간은 오래 걸렸는데 수속 통과되는 건 금방이었다.


뭐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불법체류 하러 온 것도 아니니.


그렇게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가량 늦게 바깥으로 나오자 이종사촌이 보이기 시작한다.


'와.. 많이 컸네? 내 기억 속 녀석은 중학생이었는데. 시간 참.'


배실배실 새어 나오는 어색한 웃음을 참으며 흔드는 손을 향해 수줍게 미소 지었다.


"뭐야~ 왜 이리 오래 걸렸어?"

"아니.. 수속이 오래 걸렸어. (차마 영어 문제가 있었다고는 못했음)"

"그래? 좀 이상한데.. 암튼 오긴 왔네. 난 또 안 오는 줄. 반가워 형."

"하하.. 어색한데 신기하다. 여기가 캐나다라니."

"뭐 다 똑같지. 두꺼운 옷은?"

"어.. 패딩 잔뜩 챙겼어."

"지낼 만은 할 거야. 가자."


아직까진 차가 없던 터라 끌고 온 캐리어를 들고 버스를 탔다. 겨울 옷이 많아서 부피가 상당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바깥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어지고 안도감이 느껴지면서 반은 기절한 상태 비슷했다.


"내려야 돼~"


버스에서 내리자 길가엔 눈이 내렸던 흔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로도 얼어있고 인도 쪽에는 무릎 높이 이상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정류장에서 조금 걸으며 연신 "추워~"를 외쳤다.


"많이 추워?"

"어.. 생각보다 추운데? 넌 안 추워? 이 날씨에 발목양말이라니.."

"난 괜찮아 적응돼서. 다 왔어. 여기야."


'오.. 이 집을 다 쓰는 건가? 괜찮은데?'


"지하로 가야 해. 무슨 생각하는 거야? 학교에서 가까운 만큼 가격도 비싸. 여기도 겨우 구한 거야."

"응."


베이스먼트.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반지하였다. 이상하게 사대주의에 취해 있어서 그런가 베이스먼트라고 하니 같은 반지하여도 있어 보였다.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코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놓여 있었다.


"형 저 쪽은 베트남 가족 살고 있으니까 마주치면 인사해 줘. 가끔 음식 해 먹는데 냄새가 좀 심해."

"어.. 그래."

"난 좀 이따 학교 가야 하는데 형도 여기 주변 한번 돌아다녀봐. 음식점도 가보고. 근처에 패스트푸드 점도 있고 좋아."

"알았어. 어서가."

"저녁 같이 먹어. 내가 데려가줄게."

"오키. 걱정 말고."


사촌은 내가 영어를 꽤나 하는 줄 알고 있었다. 걱정 말라고 한 말과 달리 내 머릿속엔 걱정으로 가득 찼다. 낯선 나라에 도착해 정신 차려보니 도착한 반지하. 아니 베이스먼트. 그리고 바닥의 쥐색 러그가 반기고 있었다.


원룸 구조라 방은 사촌이 쓰고 난 거실 겸 방으로 내 차지가 되었다. 확실히 낯설다. 나라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난생처음 혼자 불시착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리고 고립이 찾아왔다. 사촌 동생이 나가서 둘러보라고 했지만 집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 고립을 택했고 약 2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난 골방에 틀어박힌 채 날 가둬놨다. 명목은 영어 공부를 좀 하겠다며.


사촌도 내가 2주 가까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줄을 몰랐던 거 같았다. 몇 번 정도는 날 데리고 음식점에 가긴 했는데 유일하게 외출했던 시간이었다.


기껏 용기 내서 온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히키코모리의 삶 그 자체였다. 비싼 돈 주고 와서 혼자 틀어박힌 모습이라니.


사촌도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느 날인가 진지하게 얘기를 건넸다. 맥주와 함께.


"형.. 여기 온 목적이 뭐야?"

"나? 뭐.. 영어도 배우고. 삼촌일 도우면서 이민도 할까 해서?"

"영어 배우려면 나가서 써야지 느는데. 지금 뭐 하는데?"

"음.. 유튜브로 강의도 듣고.. 좀 익히느라."

"혀엉.. 그거 별로 도움 안돼. 그냥 되든 안되든 나가서 부딪쳐야 해."


알겠어. 알겠는데.. 용기가 안나.


"무슨 마음일지 알겠는데 이렇게 있을 거면 여기 올 이유가 없잖아. 학교 수업도 곧 해야 할 텐데. 어떻게 따라가려고 그래."

"네 말이 맞긴 해. 그런데.. 좀.. 그래."

"나도 그랬어. 난 1년 정도 학급에서 아무하고도 말 안 했었어. 지금 와서 가장 후회되는 게 그거야. 진작에 말도 걸고 하고 했어야 하는데. 내 모습 보는 거 같아서 그런 거니까 형도 해봐. 할 수 있어. 뭐 어차피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영어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어?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그냥 해."


사촌의 현실적인 조언은 따끔했지만 큰 도움이 됐다.


'그래.. 내일부터는 좀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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