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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19. 2024

럭키비키한 삶

65 걸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어‼️'


20대의 내 목표였다. 연애는 하더라도 결혼까지는 음..


안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못하겠거니 생각했었다. 가끔은 상상했다.


'연애의 끝이 결혼이 아니더라도 괜찮을까?'


그러다 깊게 생각하기를 관뒀다. 어차피 그런다고 해서 갑자기 묘안이 떠오를 리도 없고.




20대 초에 만났던 여사친이 있었다. 동갑이지만 마치 누나 같은 아이였다. 당시 그 친구는 연애 중인 상태였는데 나이차이가 꽤나 나는 사람을 만나고 있어서인가 현실을 바라보는 모습이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야! 누나가 조언하나 해줄게."

"네가 왜 누나야?"

"아휴 이 핏덩어리 같은 걸 어째. 나니까 이런 조언도 해주는 줄 알아라! 30 되기 전에 1억 모아."

"왜?"

"그냥 모으라면 모아!"


1억이라.. 현실적이지 않게 들린 액수. 내가 받고 있는 두 자릿수 월급으로 1억을 모으려면 몇 년 동안 일을 해야 할까?


컴퓨터에 숫자를 끄적이며 계산을 하다가 닫아버렸다. 숫자에 압도돼 1억이라는 숫자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훗날 그 친구는 사귀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 형이 1억 이상은 모았기 때문에 결혼한 걸까?'


물어본 적은 없다. 유부녀가 된 친구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29살이 되던 해. 내 통장을 살펴보니 한숨이 나왔다. 사회생활 8년의 결과물 치고 많이 소박한 잔고는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운 좋게도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까진 똑같았지만 오늘은 그녀에게 할 말이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허둥지둥 거리며 집에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선임의 "프리맨 저녁 뭐 먹을래요?"라는 친절한 식사 권유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아아... 죄송해요 대리님. 저 오늘 집에 큰일이 생겨서 빨리 가봐야 할 거 같아요."

"크흠.. 그러세요."


못 마땅해하는 눈치를 뒤로한 채 후다닥 짐을 싸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휴! 살 거 같다."


회사를 빠져나오니 진짜로 살 거 같았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와야 하는 곳인데도 왜 이리 정이 안 붙는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을 땐 그녀가 먼저 와 있었다.


"오빠!"


일단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정했다. 할 얘기는 있었지만 밥맛 떨어질 얘기일 거 같아 식사 후 조용한 곳에서 하려고 눈치만 봤다. 내 마음을 모른 채 그녀는 오늘 일과를 얘기해 줬다.


식사가 끝나고 카페로 갔다.


"뭐 마실래? 아아?"

-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신다고 햇!


"음.. 달콤한 거 마셔볼까?"

"아냐. 그거 몸에 해로워. 건강 생각해서 0칼로리 음료 마시라구."

"헤헤. 그럴까?"

-럭키비키‼


내 계략에 말려서 결국 제일 싼 아아를 시키게 하는데 성공. 아.. 절대로 데이트 비용 내는 게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0칼로리..


"구차하니 그만하쇼."


주변도 조용해졌고 이제는 말을 꺼낼 차례였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게 잡고 있어?"

"사실 할 말이 있는데.."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그녀는 생각보다 쿨한 반응이었다. 당시의 난 둔감한 사람인지라 그녀가 말하는 대로 그냥 쿨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그녀는 쿨하지 않았었다. 이건 뒤늦게 알게 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좀 그렇다.

2천만 원 남짓 모은 전재산을 가지고 외국에서 살아보겠다고 떠벌이는 남자친구를 무슨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그리고 예상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현재의 와이프다.


"혹시 미래의 다른 와이프도 생각 중이라서 현재라고 표현하는 건가요?"

"전 유일신을 믿습니다. 전 신의 다른 이명을 이렇게 부릅니다. [아내]라고.. 즉 제 인생에서 다른 신을 섬길 생각이 없다 이 말이죠."

"언제든 말만 해. 개종시켜 줄 테니까."


갑자기 나타난 아내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글을 쓰기로.


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불현듯 20대 초에 내게 조언을 해준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과거에 그녀가 했던 말이 현재진행형처럼 들려왔다.


"야! 내가 그렇게 30 전에 1억 모으라 했니? 안 했니?"

"미.. 미안해. 겨우 이거 모았어.."

"그냥 넌 누구 불행하게 만들 생각하지 말고 평생 혼자 살아라 쯧쯧."


이런 말을 들었던 건 아니지만. 혼자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소설을 써보긴 했다. 지금의 아내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외국 생활 실패 후 전재산 0원이 되면 이별을 고할 셈이었다.


괜히 나 같은 사람 만나서 고생길에 동참해 달라할 자신이 없었다. 당시의 난 잔고도 적었지만 자존감마저 바닥이었다.




그랬던 내가 정신 차려보니 결혼도 했고 자식도 생겨 있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난 결혼한 적이 없는데!"

"뭐 잘못 먹었어?"


꿈인 줄 알았던 결혼식과 출산의 과정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하. 꿈이 아니었다니.. 세상에."


어떻게 된 일일까. 가끔은 지금의 현실이 정말 꿈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20대만 해도 내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일 거라 생각했던 일들. 문득 감회가 새로웠다.


"이상한 짓할 거면 애들 밥이라도 좀 챙겨. 맨날 앉아서 킥킥거리다 질질 짜다 뭐 하는 건데?"


괜찮다. 오늘따라 그녀가 더욱 빛나 보인다. 무일푼이었던 나를 감싸준 존재. 결혼할 때만 해도 알았을까? 미래의 남편이 백수가 될 거라는 걸.


20대의 목표였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어‼️'는 솔직히 말하면 글러 먹었다.


이미 한 사람의 남편이 되었으며,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다. 관계라는 게 자유를 옭아매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진 않지만 일부 그런 효과가 있긴 하다.


철 없이 떠돌이처럼 살다 떠나는 쿨한 싱글 라이프를 꿈꿨던 나지만, 지금의 속박이 오히려 좋다고도 생각한다. 과거의 내가 생각했던 자유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이지만 현재의 삶에서도 충분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연애의 끝이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게 도와준 아내에게 오늘은 정말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야.. 너 뭐 샀니?"


아내의 촉은 역시 대단하다. 혹시 다음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저의 명복을 빌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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