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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03. 2024

아직 설렘을 논하기엔 좀

인지의 시간 6

설레는 빈도가 줄고 있다. 확실히 몇 년 전보다 줄어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별 거 안 해도 즐겁고 내일이 기다려지던 때도 있었는데. 이 또한 호르몬의 영향인가?


- 원래 [설렘의 값]이 비싼 편이에요.


'설렘을 물이나 공기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니었구나.'


어쩔 수 없이 비싼 비용을 치르더라도 [설레는 일]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결국 비용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수로 들어간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런데 왜 설레고 싶어 하는 걸까?'


설렘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떠서 두근거림.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만 움직임을 표현하는 설레다의 명사형.


조용하고 평온한 나날에 싫증이라도 난 것인가?

분명 더없이 좋은데.


좋다고 여기는 감각과는 별개인 듯하다. 고요하고 평온함을 추구하는 일도 결국 설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로운 시간을 실컷 보내보니 나를 설레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그렇다고 당장 설레는 일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째서? 찾을 수가 없는 거지?'


결국 다시 또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이번엔 그냥 흘려보내기만 하진 않았다. 어떻게든 흥미를 유발할 혹은 꾸준히라도 할 수 있는 소일거리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게 무슨 일이든 상관없었다. 단지 지치지 않고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소일거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 달리 소일거리조차 쉽게 찾아지진 않았다.


'취미 부자인 사람이 부러울 줄이야.'


어떻게든 발을 들여보려 시도는 해봤는데, 금세 흥미가 사라져 버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시작도 미미하고 마무리는 부실의 연속이었다. 이러다가는 인간 실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까지 생겨났다.


'과거에 사회생활은 대체 어떻게 했던 거지?'란 생각까지 들었다. 마치 지나간 꿈처럼 아득히 먼 과거처럼 여겨졌고, 내가 아닌 상상 속의 누군가가 겪었던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직을 하며 꿈을 이뤄보겠다던 열정과 설렘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가. 도대체 지금의 난 무슨 설렘을 꿈꾸는가?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졌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단은 책상 앞에 앉았다. 물을 한잔 벌컥 들이마시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천천히 떴다. 내 옆에 놓여 있는 노트북 가방의 지퍼를 열고 낡아서 해진 가방 안의 컴퓨터를 꺼냈다.


머리가 복잡하더라도, 컨디션이 별로더라도, 별 생각이 없더라도, 해가 뜨고 지는 날이 반복되는 것처럼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다.


처음 글을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때는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 어떤 것부터 써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늘 차가운 상태다. 간혹 잘 쓰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노동에 가깝다. 그렇다고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니고, 뭐라 표현하기가 참 애매한 상태다.


글쓰기가 참 신기한 게 쓰다 보면 어떻게든 쓰이긴 한다. 텅텅 비어버린 머릿속에서 더 이상 만들어질 문장 따윈 없을 것만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쓰다 보면 글은 완성된다. 만듦새의 질을 떠나 써지기만 해도 어디일까 싶다.


그렇게 쓰다 보니 후회처럼 보이기도 하고, 토로하는 듯하기도 하고 어쩌면 무언가를 기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제발 글쓰기가 설레는 일이 되게 해 주세요.'라는 듯하다.


진심으로 바란 적이 있다. 글 쓰는 게 천직처럼 내게 잘 어울리고 평생토록 설레는 일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하나 쓰면 쓸수록 그런 나의 바람에 부합할 수 없는 행위라는 걸 깨달았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마치 매일 외우는 기도문과도 같은 일이 되어가는 듯하다. 단지 매일 하려 하고 유지하다 보니 어떻게든 이어지는 일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토록 설레는 일 하나만 찾게 해달라고 빌었건만.'


그러다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혹시 설레는 일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한때 천직처럼 여겨졌던 회사 생활도 처음부터 설렘이 존재하진 않았었다. 오히려 불행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던 순간도 있었다. 다만 그 시간을 견뎌내고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텨낸 결과 비로소 해보고 싶은 설렘의 순간이 감사하게도 찾아왔던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 내가 설렘을 논할 단계인가?' 싶었다.


지금 글쓰기를 하며 툴툴거리고 설레지 않는다며 투정 부릴 때가 아니구나. 아직 설렘을 논하거나 느낄 정도로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았는데. 일단은 비용부터 제대로 지불하자. 할인할 생각도 하지 말고 제대로 제 값을 치르자. 그리고 그 뒤에 다시 한번 [설렘]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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