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시간 7
소설을 쓰다 보면 어느 정도 [구상(構想)]이 필요하다. 짜임새 없이 단편적인 소재 하나로만 진행하다 보면 얼마 못 가 벽에 부딪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쓰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지기도 한다. 처음엔 즉흥적으로 이어가기라도 했었는데 갈수록 즉흥력도 바닥이 나는지 '일단 써놓으면 어떻게 되겠지.'가 먹히질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구상을 해야 하나?'
떠오르는 소재나 로그 라인으로 몇 줄을 써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잘 이어지지도 않았다. 매번 뚝뚝 끊기는 단편에 가깝게 되거나 그보다도 짧은 엽편이 될 때가 점점 많아진다. 어찌 생각하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벌써 다다른 건 아닐까 싶어 두렵기까지 하다.
판소리를 잘하기 위해 [한]을 품고 있어야 하듯, 글을 잘 쓰기 위한 뭔가가 필요한데 내게는 그런 헝그리함(?)이 부족한 것 같았다. 헝그리 정신이라고 쓰는 게 잘 맞진 않는데 여하튼 내게 결여된 무엇이 있는 건 확실하다.
'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글을 읽도록 하자.'
어떤 식으로든 쓸 수 있는 영감을 끌어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닥치는 대로 보고 읽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둑맞아버린 집중력은 언제나 쉽게 산만해지는 편이기에 최대한 짧게 짧게라도 몰입의 유지가 필요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적다 보니 소위 [현타]가 찾아오기도 했다.
'독자로서 어울리는 자가 너무도 큰 욕심을 품은 게 삿된 일 아닐까?'
언제나 읽으면서 나를 비추는 과정은 괴로웠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가 언제부터 [자기 증명의 수단]이 되어버린 것인지. 잘 쓴 글을 읽으며 감탄과 탄식이 반반씩 터져 나왔다. 매번 이런 식이긴 하다. 주기적으로 잔병치레를 하듯 다시 또 감정기복이 찾아왔다.
'괴로워..'
편해질 방법은 없는가? 결국 편해지려면 그나마 스스로 약속한 글이라도 써내는 수밖에. 무엇이 쓰도록 이끄는지도 모른 채 읽던 글을 멈추고, 결국 노트북을 켜고야 말았다. 복잡하고 괴로운 감정으로 글을 쓰다 보면 읽는 분께 쓴 감정이 전달될까 두렵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나의 이 모습을 조금은 가엾이 여겨주시기를.
'날씨 탓인 게야.'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 특히 마음이 가라앉는 경향이 있다.
'하필이면 아침부터 읽은 글도 전부 우울한 내용이라 더 그런 거야.'
조용히 지내다 보면 감정조절이 쉬워질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비가 오면 비에 휩쓸리고, 글을 읽고 나면 글에 휩쓸리니. 옆에서 감정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 지켜보는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나의 이 기복이 그녀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 감정기복은 전염력이 약한지, 그녀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진 않다.
'차라리 밝은 콘텐츠라도 좀 보는 게 어떨까?'
일단 글부터 다 쓰고 나면 웃을 수 있을만한 영상이라도 찾아봐야겠다. 억지로라도 웃고 나면 가라앉아버린 기분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
하루하루 흘러가는 게 아쉬울 때도 있고, 잘 흘러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하루에 소설 1화씩을 쓴다면 1년에 365화를 완성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한 탓에 벌어진 망상이었다. 물론 어떻게든 물꼬가 트인다면 관성처럼 쓰일 수 있음을 믿지만, 지금 단계에선 고작 여기저기 찔러보는 게 전부다.
마음을 좀 더 편하게 먹고, 일단은 써보는 게 중요한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뇌에서 손가락에 명령을 잘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날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오히려 시간만 잔뜩 소요되고, 정작 글은 완성되지도 않아 있다.
구상도 마찬가지인듯하다.
막상 '이제부터 구상시작‼️'이라고 멍석을 깔면 본격적으로 머리가 하얘진달까.
어쩌면 내가 상상하고 품고 있는 생각이 [대단한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아닐까?
뚜껑을 열어보면 별 볼 일 없는데 스스로를 압박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
말은 쉬운데 쓰기는 왜 이리 어려운지. 결국 하소연이 되어버렸다. 오늘 글의 주제를 [쓰고 싶은 자의 하소연]이라고 하면 어울리려나. 쓸 수 있는 자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어떻게 지치지 않고 날마다 수준급의 창작을 해낼 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솔직해지자면 '나는 늘 괴롭게 짜내고 있다.'에 가깝다. 그리고 짜냈다고 생각한 순간 알 수 없는 미량의 쾌감이 찾아온다. 괴로움과 쾌감은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은 것인가. 쓴 맛 뒤에 하필이면 달콤함을 숨겨 놓다니.
이쯤 되면 이제 내 글을 좀 읽어주셨던 분은 아시리라.
- 이제 하소연 타임 끝!
그래. 하소연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또 일상으로 돌아가자. 마침 창 밖을 보니 비가 그쳤다. 더 이상 날씨 탓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맛있게 밥도 지어먹고, 재미있는 영상도 좀 보자. 멈췄던 책도 읽고, 아내와 수다도 떨고 그러다 티타임도 가지자.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잘 보내도록 하자. 쓰는 걸 포기하지 않았으니 아직 괜찮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쓰다 보면 다시 또 괜찮아지는 날이 분명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