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성프리맨 Nov 06. 2024

아버지가 아닌 아빠가 될 수 있을까?

156 걸음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분명 많이 떨리기는 했는데 TV 속에서 봐오던 부성애 가득한 아빠의 모습과는 어딘가 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태어나 눈앞에 있는데도 얼떨떨함이 더 컸었다. 기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분명 기쁘긴 한데 현실이 아닌 듯했다. 그에 비해 아내는 엄마가 되었다는 실감이 드는지 수술 후 아픈 와중에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고, 나의 부족한 부성애에 의심이 생겼다.


'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일까?'


여전히 그때의 고민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오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이기적이야."


부정할 수 없었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나]였다. 아이에게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언제나 머릿속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거나 [내가 궁금해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럴수록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질 뿐이었다.


'좋은 아빠 되기 너무 어려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아이 아빠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나와 달리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저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겠구나.




아이들은 내 눈치를 심하게 보는 편이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나의 안 좋은 모습 중 일부가 대물림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아비에게 다가온다.


"아빠. 오늘 있었던 일인데요-"

"아빠~ 속은 좀 어때요?"

"아빠? 오늘 저녁은 뭐해줄 거예요?"

"아빠. 간지럽혀 주세요-"

"아빠! 무서운 얘기 그만 틀어!"


말의 시작엔 언제나 [아빠]라는 호칭이 존재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잘해주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좋은 아빠? 잘해준다는 의미? 는 무엇일까. 잘 알지 못함에도 여전히 나의 바람은 조금이라도 아이와 친해지고 싶다이다.


언젠가는 장난도 치고 웃고 떠들며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나의 뒤틀린 심기를 건드렸는지 순식간에 마음이 차가워져 버렸다. 그리고 차가워진 마음은 결국 가까워지려던 거리를 다시 멀리 원점으로 돌려놨다. 아이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서렸고 '오늘도 결국 아빠는 화를 낼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안고 있던 내 손을 풀러 내서는 다시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뒤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내가 다 망쳤어.'라는 뒤늦은 자책을 해봤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순 없었다. 오늘의 순간도 아이의 마음 어딘가엔 퇴적되어 버렸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결혼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괜히 내가 욕심내서 고통받는 환경을 만든 게 아닐까 싶어 수도 없이 고민했다. 조금 더 상냥히, 조금 더 따뜻하게 가족을 대하면 되는데 '왜.. 어려운 거지?'.


고민은 언제나 새로운 고민을 파생시킨다. 머리가 점점 아파지기 시작하며 쓸데없는 고민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가 다가왔다.


"아빠.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정말로 행복했던 하루야."

"정말? 별로 크게 해 준 게 없는데?"

"아니에요. 운전하느라 고생했고, 맛있는 거 사줘서 고마워요."


그 말과 함께 내 고민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 옆에서 쌔근거리더니 잠이 들었다. 물끄러미 잠든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다 쓰다듬었다. 고요한 방안에 아이와 내가 누워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너의 기억 속에 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좋은 아빠이고 싶지만 여전히 내겐 풀기 힘든 숙제다. 아이가 해준 말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부족한 아빠여서 미안해.'




다시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려봤다. 그때 아내가 내게 물어봤었던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써본다.


"아빠가 된 소감이 어때?"
"... 잘 모르겠어."
"그게 뭐야. 근데 나도 그래. 엄마라는 게 실감이 안 나."


"아빠가 된 소감이 어때?"
"얼떨떨해."
"웃기지도 않아. 이제부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게 노력하라고! 나도 노력할게."


"아빠가 된 소감이 어때?"
"무서워."
"잘 해내자. 우리 둘이서."


"아빠가 된 소감이 어때?"
"자신 없어.."
"우리 집 가장이 그래서야 되겠어? 이제 더 많이 벌어야지~ 나도 힘낼게. 파이팅!"


"아빠가 된 소감이 어때?"
"행복.. 해."
"나도."


5번의 상상 끝에 비로소 [행복]을 입에 담았다.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누구는 안 그렇겠냐만은 우리 가족에게도 나름의 이벤트가 많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 움직이지도 못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씩씩하게 커서 뛰어다닌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순간이 참 많다.


'조금 더 잘해주면 좋았을 걸..'


언제나 내 몸의 안녕이 우선이었기에 챙기지 못했던 과거가 더 떠오르는 것 같다. 뒤늦게 '이러이러했으면 좋았겠지?' 같은 상상만으로 그치지 말고 현실에서 잘해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부터 시작하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라고 상상만 하다간 결국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채 후회만 남는 고독한 아빠가 될 테니.


좀 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집중하자. 나를 챙기는 시간은 그러고도 충분할 만큼 존재하지 않는가? 그리고 쉽진 않겠지만 기복이 심한 나의 기질도 누그러들 수 있도록 심신을 다스려보자. 아쉬운 순간이 왔을 때 못했던 후회와 아쉬움을 덜 남길 수 있도록 매 순간을 살아내도록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iOS 18.1 업데이트와 아들과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