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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 장치가 망가진 기차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선로 위에는 5명의 사람이 있어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5명이 죽게 되고 선로를 바꾸면 5명은 살지만 바꾼 선로에 있는 사람 1명은 죽게 된다. 분기기(分岐器) 스위치는 당신 앞에 있다. 스위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명 [트롤리 딜레마]로 명명된 윤리학적인 문제.
찾아보면 이런 예시는 꽤 있는 편이다. 언제나 선택이라는 양날의 검이 주어지면 갈등하게 될 수밖에 없달까. 잘 모르긴 해도 비슷한 사례가 자율주행의 판단 기준에도 어느 정도는 적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만약 내가 다수에 속한다면 소수의 의견은 무시해도 괜찮은가? 이 또한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삶의 행태를 보면 소수에 가깝기 때문일까?
살아오면서 대를 위한 희생을 많이 하고 살았던 편이라고 생각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하여!]와 같은 공리주의적 입장에 동조하는 편이었고, 그런 상황에 반하게 될 거 같으면 눈치가 보였다. 되도록이면 최대 다수 안에 포함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뜻과 상관없이 주변인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회에서 정의된 성공하는 사람의 기준에 미치기는 힘들었고, 그럴수록 어두워져 가는 내 미래는 늘 걱정의 대상이었다. 스스로 걱정하며 행동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단지 두려움이 아니라 진짜로 현실이 되어버릴까 봐 그게 더 무서웠다.
어려서부터 봐왔던 내 주변의 사람들이 살아있는 지표이자 표본이었다. 행복의 길에서 벗어난 자의 삶이 얼마나 궁핍해지는지를 똑똑히 봐왔기에 가진 것 없이 다가온 20대는 불안 그 자체였다. 트롤리 딜레마라고 정의할 필요도 없이 분기기를 조종하는 자가 "당신이 첫 번째 희생양이라고!" 하며 거리낌 없이 내게로 기차를 보낼 것만 같았다.
언제나 주목받는 이들이 부러웠다. 성격이 활발해서 주목을 받든, 외모가 화려해서든, 재능이 충만해서 누구나 가까이 다가오고 싶은 존재여서든 이유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압도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주목을 받아야 삶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겠지만, 이미 내 안에 자라난 욕심의 크기가 커져 있는 걸 누르기는 어려웠다. 직성이 풀리려면 주목받는 이들의 반의 반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하 정도의 관심이 필요했다. 가진 능력에 비해 욕심이 컸을 때의 안타까운 모습이구나.
언제나 도피처는 영화와 소설이었다. 때로는 만화가 되기도 했고, 게임이 될 때도 있었다. 즐기는 순간만큼은 현실의 내가 아니어도 되니까. 대신 그런 콘텐츠들은 강제로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이 언제나 등장하곤 했다.
자극적인 상황과 선택의 순간에 노출되다 보니, 내 사고관도 다소 충동적으로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인위적인 갈등과 해결방식을 진리라 여겼고, 현실에서도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하게 되었다. 삶을 현실이 아닌 도피처에서 배우지 않았어야 했는데. 힘들더라도 현실에서 경험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했었는데 다소 편한 길을 택한 결과는 어두운 성격 형성에 일조했다.
'돌파구는 없는 것인가?'
돌파구의 방법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딘가 결여된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집착 또는 의존의 형태로 변하는 경향이 있었고, 처음과 달라진 모습은 곁에 있는 이를 떠나게 만드는 지름길이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벽을 쌓고 절대적인 이해만을 바랐던 어리석은 과거의 나. 어째서 나만이 이해받아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언제나 나의 힘듦이 최우선이었고, 타인의 고충엔 일말의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모습은 투정 부릴 줄 아는 아이에 가까웠음을 인정한다.
이제는 결혼해 나의 아내가 된 그녀 또한 이런 나의 모습에 질리거나 지쳐 떠나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던 말이 하나 있다.
"아마 당신이 결혼해 주지 않았다면 난 여전히 화려한 싱글이었을 거야."
"거슬리니까 [화려한]은 빼줄래? 화려했던 적도 없잖아. 그리고 그 말은 맞아. 내가 뭐에 씌어서 결혼을 한 건지 휴.."
"결혼해 줘서 고마워."
"알면 잘해. 툭하면 꺼내는 잔소리 좀 줄이고! 내가 요즘 이혼장려 프로그램 즐겨 보는 거 알지?"
'걱정 마. 나도 같은 한국인인데 한국어로 말하는 당신의 의도를 모르겠어?'
"암만 봐도 모르는 거 같아서 하는 소리야. 있을 때 잘해!"
역시 독심술의 소유자인 그녀는 내가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속마음을 읽어내는구나.
"그리고 뭔 흑화 된 인간처럼 본인을 묘사하는데 그거 웃기거든? 중2 시절엔 뭐 하다가 이제 와서 그러는 건데?"
"그거야.. 내가 주제를 배덕감으로 잡다 보니."
"때려쳐."
과거엔 어땠을지 몰라도 현재는 너무나도 평온한 나날이 이어지는 중이다. 평온함에 젖은 생활을 하다 보니 과거의 독기 비슷한 것들이 전부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아무리 흑화 된 것처럼 써보려 해도 괜한 장광설만 늘어지는 게 영.. 별로다.
혹시 우울했던 과거와 빠르게 이별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는 행운아가 되면 된다. 절대로 아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쓰는 글이 아니다. 정말로 좋은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리고 같이 살아갈 행운을 얻게 된다면 나를 괴롭혔던 수많은 문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