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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게매니아 Dec 18. 2016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세월호 참사를 마주한 건 군대에서였다. 때마침 몸 어디가 좋지 않았고, 부대 내 의무대가 아닌 외부 군 병원으로 향했던 상황이었다. 오전 10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당시 군 병원 내 매점에서는 갓뽑은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다. 실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매점에 설치된 TV를 보고 있는데 실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푸른 바다 위에 배가 누워있었다.


나는 아직도, 이 말 만큼 당시의 풍경을 정확히 설명해주는 문장을 찾지 못했다. 바다 위에 배가 누워있었고, 그 배 주변을 몇 척의 통통배가 감싸고 있었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영화에서나 보던 풍경이었던 셈이다. 물론 현실과 영화의 차이는 컸다. 영화에서 배가 침몰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승객을 밖으로 빼낸다. 구명조끼를 착용한 승객은, 배 밖에서 표류하며 간절히 구조를 기다린다. 현실은 달랐다. 구명조끼를 입은 이들은 배 주변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도 TV에선 볼 수 없었다.


순서가 되어 잠깐 진료를 받고 나왔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러 가는데, TV 화면은 바뀌어 있었다. '단원고 학생 324명 전원 구조'. 무언가 이상했지만, 영화는 현실과 다르니 현실에서만 작동하는 어떤 로직이 작동했을거라 믿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구조되었다는 사실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밥을 먹고 다시 매점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화면은 또 바뀌어 있었다. 내가 아는 그 모든 상황들은 오보였고, 아이들은 여전히 배 안에 있었다. 이후 상황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아이들은 차가운 물 속에서 희생되었고, 긴 시간의 구조에도 배에는 9명의 희생자들이 남아있었다. 대통령은 인양을 지시했고 유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인양에 동의했다. 내가 기억했던 세월호는, 거기까지였다.


세월호를 다시 마주했던 것은 제대 이후 광화문에서였다. 인양이 진행중이라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광화문에 있었고, 노란 리본을 나눠달고 있었다.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그야말로 착각이었다. 광화문 천막에서 서명을 하던 중 유가족에게 질문을 했다. 다 해결되지 않았냐고. 유가족은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라 답했다.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정말 해결된 것이 없었다. 그렇게 기억 저 편으로 넘어가있던 세월호는, 내 의식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여전히 나는 세월호가 사고가 아닌 타살에 가까운 참사라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아이들은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다리고 있으면 다 해결될 것이라 믿고 있었을 수 있다. 어른들은 항상 그렇게 가르쳐왔으니까. 말만 잘 들어라, 그러면 너희들은 다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대했다. 세월호 안에서도 동일했다. 어른들은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얘기했고, 그 사이 배를 움직이던 어른들은 배를 누구보다 빨리 빠져나왔다. 사고란 본디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황망한 죽음을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는 아니었다. 인간의 의지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들을, 그들은 막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댓가는 너무나도 크게 돌아왔다.


나는 대통령의 탄핵이 한국이란 사회를 급격하게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관성화되어 있는 사회는 하나의 계기만으로 급변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답변을 듣고 싶은 얘기 중 하나는 이 것이다. 어째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끊임없이 보고를 받았다는 대통령이 7시간 후 회의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찾기가 그렇게 힘드냐' 따위의 말을 했냐는 것이다. 적어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아니 TV 화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저 얘기는 나오지 않았어야 한다. '타이타닉'이라면 저 얘기를 할 수 있다. 영화 화면 속 승객들은 일사불란하게 배를 빠져나와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었으니까. 세월호 참사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 의해 배를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바다 위는 너무나도 조용했다는 것을, 모든 미디어는 참사 직후부터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8주 내내 광화문에 울려퍼졌던 노래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다. 단 4줄의 가사로 구성된 노래를 들으며, 얼굴이 한없이 화끈거렸다. 미안했다. 나는 한 것도 없는데, 저들은 그 자리에 오래도록 버티고 서서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어둠에 맞서 한 줌의 승리를 쟁취했다. 그리고 그들의 승리는 자연스레 우리의 승리로 치환된다. 승리의 경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이 승리의 경험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는지를 고찰하려는 시도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의 승리는,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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