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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우 May 28. 2016

뉴욕, 라이카로 본 시선

Volume 24. 운명의 색, 그것은 빨강

Volume 24. 운명의 색, 그것은 빨강






선정적이고

방탕한 역할을

하는 색은

빨간색이다




고독 -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컬러 사진이다



대놓고 말하기 매우 미묘한 화두이긴 하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빨간색이 지닌 일종의 보편적이라면 보편적인 운명일 뿐이다. 그러나 내 경우에 빨간색은 그러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바로 이 사진으로부터 -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컬러사진이기도 하다 -  받은 영감 때문인데, 사진 속 배경이 주는 강렬한 빨간색은 어떠한 면에서 본다면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 주었고, 나는 이것을 나의 운명에 색이라고 믿기로 했다. 또한 빨간 운명론을 말하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라이카로 본 시선'이라는 이 에세이의 제목처럼, 내가 사용하는 라이카의 로고 - 나이키의 빨간색만큼이나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 도 너무나도 유명한 빨간색이기 때문이다.


상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스토리를 가지고 있듯이, 라이카의 기원은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것은 색에 관한, 다시 말해 빨간딱지라고 불리는 라이카 로고에 대한 것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왜 빨간색이어야 했는지 말이다.


나는 문득 개인에게 운명적인 색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개인의 기질에 따라 우리가 선호하는 색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선호라던지, 취향에 따라 분류되는 그러한 것들이 아닌 필연적인 색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사진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어떤 색이 슥하고 내 가슴에 들어와 불을 지피는 경험을 해보았는가. 지금 말해두고 싶은 건, 바로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 색의 기억에 관한 나의 기억이다









맨해튼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도가 낮은 빨간색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비 오는 타임스퀘어 광장을 말한다. 수많은 전광판에 비친 모든 빛들이 고스란히 바닥으로 떨어져 색의 축제가 시작된다. 나는 아직도 이 사진을 찍던 순간의 짜릿한 강렬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저 멍하니 그것을 바라만 보다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들어오는 한 남성을 보게 되었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홈리스인지, 투어리스트인지, 혹은 네이티브인지 알 수 없는 중년의 남성을 말이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셔터를 눌렀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그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 나 같은 경우에는 사진을 먼저 찍고 그에게 다가가 나는 한국에서 온 작가인데 이런저런 콘셉트로 사진을 찍는다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메일을 물으며 동의를 구한다 - 짧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로부터 '그래 좋아! 멋지네 계속해서 너의 일을 사랑하길 바라. 행운을 빌어'라는 묘한 말을 듣게 되었다. 사실 별다른 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쪽에서는 며칠 동안 귓가에서 그의 말이 맴돌았다. 콘크리트 정글 속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타인으로부터 그렇게 관대하고. 철학적이며. 희망적인. 말을 듣게 될 줄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이 사진을 내가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사진은 필요 없다고 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쿨하게 피던 담배를 한 모금 마저 빨아 당겼다. 그가 내뿜는 담배연기는 허공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면서 빗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곤 가던 길을 향해 발검을을 옮겼다. 나는 그렇게 유유히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그를 멍하니 봐라만 보았다.


고백하건대 나는 여전히 빨간색 - 그도 그럴게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 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따금씩 홀로 중얼거리며 생각을 하는 게 있다. 인생에 운명이 색이 있다면 빨간색이야 말로 내 운명이 아닐까. 그리고 운명의 물건이 있다면, 혹은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2015년에 라이카를 가지게 된 것이다.라고











USA  |  NYC  |  2016  |  ©Hyunw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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