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약속 한 후 남자친구 부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
결혼을 약속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로의 부모님께 상대를 인사시키고 결혼을 허락받는 것이다.
사실 결혼을 허락받는다는 말 자체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하지는 않지만, 부모님의 허락이 기본값이 되는 게 한국에서의 결혼이기에 허락을 받는다고 할 수밖에..
멕시코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뒤 며칠 후, 남자친구는 본가에 가서 결혼소식을 알렸고 그의 부모님과 나의 첫 만남은 몇 주뒤로 잡혔다. 어른들께 처음 인사를 드리는 자리인데 빈손으로 가기는 그렇고, 조금 더 의미 있는 선물을 드리고 싶어 내가 만든 도자기 접시를 포장해 집을 나섰다. 바람이 많이 불은 탓인지 첫 만남에 긴장해서인지 몸이 으슬으슬했다.
어른들이 예약하신 호텔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안쪽에 앉아 계셨다. 나름 면접에 강한 편이라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드렸다. 아 그런데 정말 어색했다. 메뉴를 정하고 뻔한 인사말을 나눈 뒤, 준비해 간 선물과 카드를 드렸다. 카드를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남자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썼다 지웠다 겨우 쓴 카드였다. 내용은 "만나 뵙게 돼서 반갑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였다. 손으로 만든 도자기라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 민망하면서도 기뻤다. 도자기를 드리고 나니, 어머님께서 내게 작은 봉투를 건네주셨다. 어 이건 뭐지? 예상하지 못한 전개. 상자를 열어보니 작은 크리스털 귀걸이와 내 탄생석인 오팔로 만든 귀걸이 두 쌍이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재밌게도 남자친구와 나는 생일이 하루차이라 탄생석이 같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님이 내 생일을 물어보셔서 사주를 보시려나 했는데, 탄생석으로 만든 귀걸이라니! 10월의 탄생석은 오묘한 빛을 내뿜는 오팔이다. 탄생석으로 된 아이템을 갖고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섬세한 선물에 놀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자친구가 태어난 영국 지역에서 사 오신 도자기 잔을 주셨다. 도예 수업을 듣는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것 같다며 익살맞은 표정이 특징인 잔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아 이렇게 순조롭게 첫 만남이 시작되는 건가!
음식이 곧 나왔고 중간중간 어색한 침묵이 있을만하면 어머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셔서 대화를 주도하셨다. 그러던 중 어머님으로부터 첫 만남에서 생각지 못한 질문을 2개 받았다. 연달아 받은 건 아니고, 이 두 가지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아 이렇게 기록해보려고 한다. (아버님께서는 말수가 적으셨는데, 중간중간 내가 전공한 인도네시아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셔서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첫 번째 질문. @@씨 스스로가 보기에 사회생활하면서 알게 된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요?
교직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라 그런가.. 아 이건 정말 그냥 인사가 아니라 진짜 면접이구나. 그래 면접이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평소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 점을 말씀드렸다. 조금 당황스러워서 어버버 댄 것 같은데, 요지는 "음.. 저의 장점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블라블라블라."
내 질문을 들으시더니 어머님은 "아. 사교적인 것 같아요." 라며 자연스럽게 다른 대화를 이어 나가셨다.
두 번째 질문. @@씨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결혼 생활은 어떤 건가요?
이 질문이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나는 면접에 강한 편이다. 다행히도 이상적인 결혼에 대한 생각을 나름 정리했던 차에 당황했지만 꽤 말씀을 잘 드린 것 같다. 내 대답의 요지는 "결혼을 하다 보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양한 이슈가 발생할 텐데 서로 대화를 통해서 상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이에요. 연애하면서 오빠랑도 대화를 많이 하면서, 결혼생활을 함께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오빠가 배울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 대답을 들으시더니 어머님께서는 "정답이네요."라고 답을 하셨다. 정답이라는 말씀에 아 면접통과한 건가? 하는 생각이ㅋㅋㅋㅋ 남자친구의 어렸을 때 이야기, 서로의 일상생활, 우리 둘에게 해주시는 덕담 등을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다음을 기약하고 인사를 드린 뒤 식당을 나왔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식당에서의 시간들을 복기해 보았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충분히 물어보실 만한 질문이었고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이 되더라. 남자친구의 부모님께서는 그동안 여자친구가 있다는 건 아셨지만, 갑작스레 결혼을 하겠다고 데려간 내가 반가우시면서도 어떤 아이일지 궁금하셨을 테니.
남자친구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 직전, 가까운 선배에게 꽤나 긴장된다고 말을 했는데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 부모님께서도 너를 평가하는 자리겠지만, 너도 어떤 부모님인지 어떤 가정에서 자랐을지를 볼 수 있는 자리니 너무 시험 보는 느낌으로 가지는 마라." 사실 첫인사는 결국 첫 면접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서로가 가장 맞는 사람을 선택했을 거라고 믿으며, 오손도손 서로 위하면서 살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으니 면접은 합격했나 보다.
역시 면접에 강한 나.
*커버 출처: https://pin.it/8lUQeL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