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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Jun 11. 2023

도서관에 다녀오면 엄마에게 혼이 났다.

도서관에 다녀오면 엄마에게 혼이 났다


 연년생인 언니와, 두 살 터울의 남동생,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복도 끝 도서실에 모였다. 언니는 소설책을 읽었고, 동생은 과학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가면 우리는 책을 바꿔 읽었다.

 도서실에는 알록달록한 소파가 있었다. 우리는 그 소파 위에 드러누워서 책을 보기도 했고, 소파 밑에 숨어서 보기도 했다. 가끔은 책꽂이 사이에 들어가서 읽기도 했다.


방학 때 일기를 쓰는 동생과 나


 사서 선생님께서는 꽤 젊은 편이셨는데,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하시고 도서실에 새 책이 들어오면 우리를 살짝 부르셔서 스티커 붙이는 일을 부탁하기도 하셨다. 방학이 되면 우리는 사서 선생님보다 일찍 도착해서 도서실 문이 열리길 기다렸고, 저녁이 되어 해가 깜깜해지면 선생님과 같이 도서실 문을 닫고 퇴근(?)을 했다.


 책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려 너무 늦게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밥을 차려주시면서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셨다. “책 읽는 것도 좋지만, 밖에 나가서 뛰어놀기도 하자...” 어느 날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루에 2시간 이상 읽기 금지!” 우리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는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 “다른 집에서는 책을 읽으라고 하는데, 왜 우리 집은 책을 읽지 말라고 하는 거야?”라고 반항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도서실의 첨단 시스템인 “대출 서비스”를 꼭 이용했기 때문이다.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다 본 책은 꽂아둔 다음 새로운 책 한 권을 꺼내 대출을 한다. 빌린 책은 집에서 읽고 다음 날 아침에 반납을 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도서실에서 모여 책을 읽는다. 이것이 우리 삼 형제의 하루 일과였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컴퓨터도 없었다. 아빠는 뉴스를 보고 싶어 하셨지만, 우리를 위해 꾹 참으셨던 것 같다. 당연스럽게도 아빠, 엄마는 책을 사랑하는 분이셨다. 어릴 때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가 소파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고 계셨다. 그럼 우리도 자연스레 한 권을 꺼내 들고 엄마 옆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 밤에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서면, 안방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온다. 아빠가 책을 읽고 계신 것이다.


 외식을 하는 날도 마찬가지다. 부산대학교 앞 포플러나무가 줄지어선 거리를 산책하고, 작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뒤에, 서점에 가서 책을 읽다가 핫도그를 먹으며 집에 돌아오는 것이 우리 가족의 외식 코스였다. 부산대학교 근처에 있는 서점은 항상 우리 차지였다. 지금은 사라진 청하서림(현재 다사랑문고 자리)과 북스리브로부터 영풍문고까지 말이다.


부산대학교 거리
산으로, 강으로 놀러 다녔다.


 어떤 날이 되면 꼭 책을 선물로 주셨다. 초등학교 입학을 할 때는 “학교에 간 개돌이”, 선생님께 혼난 날에는 “나쁜 어린이 표”, 크리스마스 아침에 산타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셨을까? 두근대며 머리맡을 보면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가 있었다.


심지어 그다음 해에는 열세 살 키라를 받았다.


우리는 책을 모를 수가 없었다.


 고학년이 되니 컴퓨터가 너무 하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은 스마트폰도 있고, 집에서 게임도 한다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으니 참 답답했다. 방법은 하나였다. 도서실의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는 한쪽 벽에 세워진 컴퓨터 다섯 대 중 세 대는 우리 형제의 것이었다. 선생님께 들킬세라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지식in에 “꽃의 종류”를 검색하는 척을 했다. 실제로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서 게시글도 구경하고, 그림판으로 손글씨를 그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컴퓨터를 해도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놀자고 하면 난 도서실에 가서 놀겠다고 했다. 그럼 친구들이 도서실로 찾아온다. 도서실에서 친구랑 친해지는 법은 “무슨 책 읽어?” 소곤거리는 것이다. 도서실은 친구와 책 양쪽을 잡고 같이 보는 공간이기도 했고, 책꽂이 사이에서 싸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서로 삐지면 저리로 가서 괜히 책들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나는 책들 사이로 몰래 건너편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화해를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그리도 재밌었는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초콜릿 폭포는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영모가 사라졌다를 읽으면 영모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너무 궁금했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읽으면 내가 설탕이 된 것만 같았다. 누리야누리야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을 읽으면 마음이 아프고 슬퍼서 한동안 그 책만 붙잡고 있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도 권장도서는 재미가 없었고, 방학 독후활동은 지겨워서 인터넷에 올라온 독후감을 베껴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6학년 때 독서왕까지 받고 중학교 때 간간히 읽었던 만화책 식객 이후로, 내 인생에 독서는 아주 오랫동안 끊기고 말았다.




다음 편 예고

책태기가 찾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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