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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구 Sep 10. 2020

청바지를 입고 수업을 했다.

그저그런 대학생 강사가 아니라 프로패셔널한 강사가 되겠노라 마음먹은 후 부터는 단 한 번도 수트를 벗은 적이 없다. 불편하고 더워도 항상 멀끔히 수트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그게 내게 값을 지불하는 학부모님들에 대한 예의고 하나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 청바지를 입고 수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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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일년을 가르쳤는데 성과가 미미한 학생이 있다. 솔직히 역대급으로 성과가 안나와서, 나조차도 내 실력을 의심하며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지난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학부모님께 "면목이 없으니 수업을 그만두셔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이 안되셨으면 다른 선생님이 될 거라 생각치않으니 계속해주시면 좋겠다" 시면서, "그 대신 선생님이 아니라 형으로 다가가주시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그러게. 나도 이제 피 끓는 20대가 아니구나. 형 보다는 아저씨에 가깝지. 그러니 얘는 내가 불편했을수도 있겠구나. 내 일의 본질은 가르치는게 아니라 맡은 학생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라는 걸 잠깐 경시했다.

그래서 오늘은 수트를 입고가서는 이 학생 수업 전에 청바지로 갈아 입고 수업을 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같이 랭겜을 돌렸다. "쌤 롤 하실래요?" 라면서라도 물꼬를 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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