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법
지난 수요일 21학년도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그와 함께 본인의 실패를 인정한다며 재수를 결심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향후 방향을 알려달라는 메세지가 쇄도했다. 그 중 한 학생이 보낸 메세지의 원문을 공개한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번에 수능 마치고 온 학생입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실패한 학생입니다. 저는 어려서 부터 머리좋다는 소리를 꽤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꽤 잘난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학창시절 동안 저는 저의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았고 고3 초반까지 그런 막연한 기대감에 숨어살았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6월 직전부터 남들과의 갭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6월간 하루10시간이상 공부에 투자하고 하루는 탐구공부를 하며 잠깐 숨돌리는 식의 계획으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계획은 매일아침6시에 일어나 7시까지 학교에 가서 국어모의고사를 풀고 수학기출문제집을 오전시간동안 풀고 오답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국어 비문학 문단요약, 오후시간에는 영어 연계 공부와 탐구 공부를 하였고 집에와선 주로 수학을 더 풀었습니다.
이정도가 저의 올 한해 일정이었고 말의 서두가 없어서 횡설수설을 해버렸습니다 수능성적은 44344입니다 그동안의 모의고사들 중 가장 못봤습니다. 지금 너무 힘든 나머지 뭐라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으시다면 저의 문제점을 지적해주십시오 공부가 아닌 인생조언이어도 좋습니다. 더 궁금하신 부분은 여쭤보신후 더 좋은 조언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거의 컨c 컨v 수준이다. 분명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는 과정에서 비롯했을테니, 나의 입장에서는 과정을 물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되돌려 줄 수밖에 없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결과의 9할 이상은 본인이 만든 것이니 원인을 찾아내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이걸 해내지 못하는 것이 학생의 잘못은 아니다. 지식을 그저 쑤셔 박도록 종용하는 것은 현 체계가 그러하니 잘 모르면 휩쓸릴 수밖에 없다.)
1. 공부를 할 때 그를 통해 무엇을 획득할 목적으로 하셨는지, 무슨 공부를 하셨는지 기억 하세요? 그 공부를 왜 하셨나요? 목적이 명확히 뭐 였던가요? 그 목적과 방법이 일치 했었나요?
2. 단순히 문제를 많이 푸는 '행위' 에 집중하지는 않았나요?
3. 본질은 모르는 걸 알아내는 것, 내 문제를 고치는 것에 있으니 그걸 인지하면서 나의 무지를 채우려고 노력했나요? 나의 잘못된 지식, 논리, 생각, 습관, 행위 들을 고치려 노력했나요?
이 질문들은 결국 ‘본질을 이해했느냐’ ‘스스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했느냐?’ 라는 두 가지 맥락으로 통한다.
이런 질문을 던졌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국어는 주위사람들에게 듣기로 기출분석과 꾸준함이 중요하다 하여 기출문제집을 풀고 3회독을 하면서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어는 대다수가 갑자기 오르는 과목이기도 하고 잘 오르지 않는 과목이라 하여 꾸준히 하였습니다 오히려 이게 독이 됬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는 1등급이었습니다
수학은 학원을 다녔습니다. 수학을 정말 못해서 3등급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 이라는 교재를 가지고 개념부터 잡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작이 오르지 않고 그 노파심에 중간에 기출문제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도 저의 패착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영어는 그나마 자신있는 과목이었기에 1등급을 목표로 달렸습니다. 그렇기에 이비에스의 직접연계에 매달렸고 그 결과 6월 9월에서는 2등급이라는 성적을 받았으나 공부량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단순히 푸는 행위가 아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했고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디서 부터 잘못된건지 몰랐기에 어쩌면 노력이 부족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것 같습니다.
저의 목표는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해 저의 주변인들이 저의 이름을 말할때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본인은 ‘가오있는’ 답변이었겠지만 정말 똥 같은 답변이었다. 본인의 문제가 뭔지 모르는 건 고사하고 1년 동안 뼈 빠지게 했던 공부의 목적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한 공부는 노가다지 공부가 아니다. 이렇게 할 거면 공사판에서 노가다 뛰는게 훨씬 낫다. 돈이라도 벌지 왜 그런 삽질을 했나?
그러면 대체 무엇이 문제였느냐 하면, 이 친구는 ‘본질’을 잊고 있다. 1년 동안 대체 그걸 왜 하는지를 망각하고 무작정 했다. 본질이 없으면 행위는 의미를 잃는다. 그러니 공부라고 명명하려면 적어도 ‘무엇을’ ‘왜’ ‘어떻게’ 에 대 해서는 명확히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답변에 있는 문제를 하나씩 짚어보자.
1. 기출 분석이 중요하다
기출 분석은 누구에게 왜 중요할까? 당장의 너에게도 중요할까? 그게 아니라면 어느 시점부터 중요할까?
무작정 기출 분석하는 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유는, 쉬운 문제도 쉽게 풀지 못하는 학생이라면 아직 기초 논리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런 학생은 ‘보편적 논리’를 갖춰봤자 기초 논리 부족으로 어차피 오답이 발생한다.
2. ‘꾸준히’ 했다.
꾸준히 뭘 했나? 꾸준히 삽질하는 건 바보도 할 수 있다. 대체 뭘 했는데? 뭘 어떻게 꾸준히 했길래 결과가 안 나온다는 말인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를 아는 상황에서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면 결과가 안 나올 수가 없다.
3. 수학 학원, 교재
뭘 풀었는지, 어딜 다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누차 이야기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왜’ 가 전부다. 예를 들면, 학원에 가는 이유가 ‘성적 올리려고’ 인 학생과 ‘미적분 특정 유형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아서 푸는 방법을 배우려고’ 인 학생은 시작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다르겠지.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마라. 어차피 그들의 ‘무엇을’ ‘어떻게’ ‘왜’ 는 당신의 ‘무엇을’ ‘어떻게’ ‘왜’ 와 다르다.
4. 이비에스 직접연계, 1등급 목표
1등급을 위해서는 듣기 만점은 기본이고 독해도 완벽히 되야 하며, 문법도 90%는 맞아야 한다. 즉 필요한 건 오직 실력이다. 연계가 된다 한들 100% 직접 연계 되는 게 아니니 굳이 ‘실력향상학습’ 의 비율을 낮추고 ‘연계학습’양의 비율을 높일 필요는 없다.
1등급이 목표인데 연계에 왜 매달리나? 애초에 목표와 방법이 매치가 되지 않는다. 목표에 따른 방법 설정이 잘못 됐으니 과정이 틀어졌다. 이건 마냥 학생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만 조금 아쉽다. 목적이 뭔지, 그에 따른 최적의 방법이 뭔지는 생각을 조금 더 했어야지.
5. 목표는 명문대
그게 아니라 공부의 목표가 뭐냐고. 명문대는 결과의 목표지 과정의 목표가 아니다. 목표가 명문대 아닌 수험생 있나? ‘달성하고 싶은 점수’를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성과 + 그를 위한 행동’을 목표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수학 2등급’을 목표로 잡을게 아니라 ‘3점짜리까지 30분 컷 정답률 100%, 4점짜리 3개 제외하고 80분 컷 정답률 100% 하는게 목표. 그걸 위해서는 ... 하겠다’ 라고 잡으라는 말이다. 이 둘은 목표 점수는 같지만 과정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결과에 이르기 위한 과정의 목적까지도 다른 셈이 된다. 목적이 다르면 과정의 디테일이 달라진다.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돈 많이 벌고 싶다’ 라고 떠벌리는 것과 같다. 제발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진짜 구체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명확히 짜고 그대로 수행하라고.
이걸 보완하지 못한다면 다시 한다고 해도 성공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재수는 실패확률이 아주 높은데, 이유는 도전하는 부분에 대한 ‘본질’과 실패를 발생케 한 ‘나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일축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이 둘을 완전히 보완한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뜻도 된다. 문제를 명확히 파악하고 과정을 개선할 수 있다면 결과 또한 반드시 바뀌기 마련이니까.
뼈가 조금 아팠겠지만 긴 세월동안 나눠 맞는 것 보다 한 번에 짧게 맞는 게 나으니 견뎌내고 다음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