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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n 14. 2019

요가매트 위에서 눈물이 났다.

요가는 마음 수련의 영역이다.


중학교 시절, 내 인생의 첫 면접 질문은 '휴지를 주제로 점심방송을 기획해보세요.' 였다. 일상의 작은 소재일지라도, 맛깔나게 풀어낼 수 있는 PD의 자질을 시험해보려던 한 살 위 선배들의 현명한 질문이었다. 휴지와 관련하여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 이야기, 우리 학교의 하루 휴지 사용량, 요즘 핫한 휴지 브랜드, 휴지를 대체할 환경템 등 첫 면접이라 기가 죽었지만 오목조목 대답을 이어나갔고 방송 PD라는 인생의 첫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나에게 밤을 새워서 이야기해도 설레는 일상의 단어가 있다면 바로 '요가'이다. 남편은 요가를 뒹굴뒹굴 구르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그건 요가를 제대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들이나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이다. 20대 초반부터 요가를 시작하여 수련을 했다, 안 했다를 반복했다. 아직도 초보 수련자의 자세에서 고군분투 중이지만 10년 넘게 내가 사랑하는 최고의 운동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아이를 낳고 요가를 다시 시작했을 때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분명 나는 똑바로 서있는데, 만화 속 찌그러진 인간 캐릭터처럼 한쪽 골반과 가슴뼈가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아이가 한쪽으로만 긴 시간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때부터 요가를 다시 시작하고, 지금까지 주 2회 요가를 다니고 있다.



매트 위에서도 나를 이기지 못하면, 세상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요가를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마음이 시끄러운 날이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요가 자세를 잘 해낼 수가 없다. 특히나 남편과 싸우는 날이면 몸은 제 멋대로, 가장 자신 있는 동작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반대로 일터에서 즐겁게 일을 마치고, 요가 후 시원한 맥주 약속이 있는 날이면 요가를 제2의 직업으로 삼아도 좋은 삶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트 위를 날아다닌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도 마음이 시끄러운 날이었다.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카운트의 절반도 못한 채 자세를 풀어버리곤 했다. 그런 모습을 들켜버렸는지 선생님은 <요가는 매트 위에서의 나를 이겨내는 수련>이라며 나를 꾸짖었다. 물론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선생님의 말은 쇠창살이 되어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온전히 한 시간도 내 몸과 마음을 지켜볼 삶의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들켜버린 것이었다.



어제는 요가매트 위에서 눈물이 났다


요가가 끝나면 사바사나에 들어간다.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인데 피곤한 날엔 코를 골며 꿀잠을 자기도 하고, 다시 시끄러운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워밍업을 하기도 한다. 몸을 바삐 움직이다 탁-하고 힘을 내려놓으면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주절주절 떠들어댄다.


'집에 가면 건조기에 있는 빨래를 개어야지'

'이번 주에는 친정에 가니 이유식을 또 만들어야 부족하지 않겠네'

'일회용 수세미랑 이유식 재료도 배송시간 전에 사야 하는데'

'남편 말이 맞지. 여행은 사치야. 대출금을 갚으려면 더 아껴 써야겠다'

'이러다 빚을 다 갚지 못하고 기생충 같은 삶을 살면 어쩌지'


온갖 생각이 스치고 간 길 끝에 이유 모를 눈물이 흘렀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내 몸과 마음이 주는 시그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마음의 근육이 약한 상태구나.


눈물의 이유를 생각해 봤다. 나의 에너지보다 너무 많은 의무와 책임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단연코 아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깊은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새벽 세 시만 되면 여김 없이 밥을 달라고 울어버리는 아이, 잠결이지만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 찾고 없으면 울어버리는 아이 때문에 지금까지 깊은 잠을 잔 적이 없다. 육아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는 임계치에 다 달아 폭발 직전이 되었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한시적 외벌이로 체험한 경제적인 두려움도 한 몫했다. 한 사람의 고정적 월급이 끊긴다는 것이 우리 집 가정에 현실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과 심리적인 부담을 주는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꼭 영어 유치원이 아니어도,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갖기 위해 서울 땅에서 고군분투해야 할 앞으로의 20년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자칫 정신을 놓고 있다간, 영화 속 기생충의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과하지만 있을법한 걱정이 든다.



요가로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키울 수 있을까요


전국에 수많은 요가원이 있지만 믿고 거르는 요가원은 요가와 다이어트를 한 단어처럼 묶어 세일즈 하는 요가원이다. 요가가 몸매를 다지는데 좋은 운동이고, 특히 요가하는 남자의 근육은 무척 섹시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요가는 나를 만나고 발견하는 시간이고,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과 좋은 에너지를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생각한다. 그래서 집 앞 요가원이 아닌 차로 수십 분을 가야 하는 요가원을 다님에도 그 번거로움을 견뎌낼 수 있다.


대표적인 요가 수련자인 이효리가 효리네 민박을 통해 보여준 삶의 태도는 많은 이들의 삶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물론 보이는 모습 다는 아니지만, 스스로 요가를 통해 마음이 단단해졌음을 많이 이야기했다. 드라마틱하진 않아도 요가는 분명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하기 위해서는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 몸일으키거나, 일을 마치고 피곤한 남편의 육아 바통터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한 시간의 요가는 더욱 인생에서 빛이 난다. 그리고 절대 이번엔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로서, 워킹맘으로서 만날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단단하게 견뎌낼 마음 근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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