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추모
삼촌에 대해 떠올리면 오대오 가르마의 다소 긴 머리에 환하게 웃고 다정하고 가끔 동생을 둘러메고 뺑뺑 돌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랑 동생이랑 삼촌과 같이 에버랜드같은 곳에 갔던 것도 기억이 난다. 우리 아빠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고 짜증이 나면 무섭게 화를 내는 사람이어서 나는 그런 곳에 가보고 싶단 말도 안 했고 아빠랑은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날은 좋았다.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고 날씨는 좋았던 것 같고 튤립같은 꽃이 피어있었던 것도 같다. 에버랜드가 아니고 서울랜드였던가. 같이 찍은 사진과 그 분위기만 기억이 난다. 행복하고 따뜻하고 즐거웠던 기억.
삼촌과 엄마 아빠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턴가 우리 집에 자주 찾아왔고 나와 동생과 잘 놀아주었다. 삼촌이 놀러 오면 애어른 같았던 나도 삼촌 팔에 매달려 놀았다. 그 장면들이, 기억들이 자세히 남아있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사실은 잊으려고 애써 노력했던 기억이라 이만큼이라도 남아있는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삼촌은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 엄마 아빠는 워낙 감정에 솔직하고 자주 우는 사람들이지만, 그때가 엄마 아빠가 엉엉 우는 것을 처음 봤던 때였다. 난 그때 어른도 소리 내며 운다는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았는데 그게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아니면 그 두 장면이 겹쳐져서 감정이 전이된 건지도 모른다. 나도 아마 울었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오지 않았던 삼촌. 엄마 아빠가 또 울까 봐 삼촌이 왜 죽었는지는 고사하고 삼촌 얘기조차 꺼낼 수가 없었던 마음만 기억난다.
그렇게 나는 컸고 많은 시간과 사람들이 스쳐갔다. 그러면서도 가끔 삼촌을 떠올렸다. 나는 그저 그랬었지, 하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삼촌의 죽음이 내가 이 생애 마주했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으며 나는 그 죽음에 무척 큰 충격을 받았었고 삼촌이 너무 보고 싶었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을 묻어두었다는 것을.
나는 가끔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 상상을 한다. 물론 바람은 아니고 불안에 가깝다. 열 번 중에 두 번 정도는 삼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오래된 추모 의식 같은 것이기도 했고 나의 불안을 태우는 연료 같은 것이기도 했다.
삼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이였고 삼촌에 대해선 하나도 모른다. 그때 우리 엄마보다 어렸으니까 지금 나보다 서너 살 정도 많았던 나이였겠다. 백수였나, 어떻게 평일에도 우리랑 같이 놀러 다녔지. 아닌가 주말이었나. 그런데도 사람이 많은 곳에 우리를 재밌게 해 주려고 데리고 갔었던가.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떤 이유로 떠났을까. 삼촌은 나와 동생을 보고 싶어 했을까. 삼촌이 죽지 않았다면 우린 아직도 종종 보는 사이였을까?
엄마와 아빠의 친구가 떠난 것이 나에게도 상처였다는 사실이 엄마 아빠를 조금 더 슬프게 할지도 몰라 고민했지만 이 글의 초안을 쓴 뒤 엄마에게 말했다. 사실은 그때의 기억이 아주 즐거웠다고 삼촌을 생각보다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고. 울다가 웃다가 뒤늦게 함께 삼촌의 마지막을 나눴다. 어떤 것들은 이렇게 한 이십 년쯤 지나서야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