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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창한 날들 May 08. 2024

비 오는 일요일, 83세 아버지와 잘 보내는 법

어버이날에 부치는 글


1.

지난 일요일 아버지 돌봄 당번이었다.

이틀째 비는 내리지, 아버지는 거실 침대에 누 채 텔레비전에만 눈을 두고 꼼짝을 하지 않지, 집안 전체가 축축 처지는 것만 같았다. 글도 못 쓰겠고 책도 안 읽히고 나갈 수도 없으니 더 갑갑하였다. 내게로 옮아오는 눅진한 정서와 분위기에 짓눌릴 것만 같아 짜증이 올라왔다.

전날 삼 남매가 어버이날 기념으로 모여 저녁 식사를 했는데 아버지는 웃지도 않다. 아버지는 얼굴이 쏙 빠진 채였다. 자식들이 모이면 늘 웃는 낯이던 분이 웬일까.

모두들 가고 나만 남았을 때 여쭈니, 지난주에 수염 깎다가 턱을 다친 뒤 식사를 못다고 했다.
"다리도 낫지 않고."
아버지가 우울해한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차도가 없는 당신의 몸 상태. 하체 근력운동을 안 하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아버지는 4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잘 못 쓰신다.)

지난주 매일 아침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다다는 말씀은 없다.
"별일 없어!"

잘 지낸다는 아버지 말씀을 무조건 믿고 싶었던 건 아닌지 죄송스럽기도 했다.  


작년 5월부터 우리 남매는 토, 일요일 아버지 돌봄 당번을 정했다. 아버지 하체 근육이 도무지 회복이 안 되니 나는 지난 3월부터 근력운동을 가르쳐 드렸다. 하지만 내가 가고 나면 아버지 스스로 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운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허벅지와 궁둥이 근육을 키우도록!

"아빠, 아빠나 저나 근력운동만이 살 길이에요. 지난번에 가르쳐 드린 것 우리 같이 해 봐요."

영 하기 싫으신 아버지의 표정을 못 본 체하고 유튜브 영상 볼륨을 크게 틀었다. 동작 몇 개를 한 뒤 내가 없을 때도 아버지가 꾸준히  수 있게 표를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


볼펜과 종이를 겨우 찾아냈다. 늘 공부하던 아버지에게 그런 문구용품이 이젠 필요치 않다는 게 다시금 울적해지게 만들었지만,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두 가지 동작하시고, 퇴근해서(주간보호센터) 세 가지 동작하신 뒤 주무세요. 일주일 뒤에 인증숏 찍어 보내시면 제가 선물드릴게요."



아버지 머리맡에 놔 드린 메모지



2.

아버지가 집안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잘 걷지 못하시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집안일을 해 드리니 기운 없다는 이유로 당신 몸 씻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버지가 스스로 자아효능감을 느끼실 수 있으려면 집안일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아빠, 저는 밥을 준비할 테니까 아빠는 대걸레질 좀 해 주세요!"
"비 와서 먼지도 없는데 뭐 하러?"

"운동 삼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보시던 방송 다 보신 뒤에 해 주세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버지를 모른 척하고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샐러드를 준비하고 만둣국을 끓이고 있었는데 아빠가 대걸레질을 하며 다가다. 대걸레 자루에 의지한 아버지는 생각보다 잘 걸다. 꼼꼼한 성격대로 구석구석 닦는 아버지 표정이 밝아보였다.

저녁을 먹은 뒤 근력 운동 한 가지를 더 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앙상한 다리를 이상한 폼으로 올리고 내리는 동안, 힘들다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에 힘이 붙어있었다.

15분의 하체 운동을 했는데 그렇게 달라진 아버지를 보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께 메모지를 건넸다.

"아빠가 직접 동그라미를 그리세요."

 


3.

안산 집으로 돌아오기 전 아버지께 10분 정도 인터뷰 영상을 찍자고 했다.

"집에나 가지, 찍긴 뭘 또 찍는다고 그래. 할 말도 없는데. 매일 통화하잖아."

"통화랑 다르죠. 전 아빠가 요즘 무슨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자아효능감(이 말이 요즘 너무 좋아서 자꾸 사용하고 있다)에 도움이 될 만한 긍정의 질문을 드렸다.


요즘 감사하다고 느낀 일이 있으셨어요? 무슨 일인지 들려주세요.


당신의 몸이 낫지 않는다고 적해하아버지에게 작은 감사거리라도 찾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내가 센터(주간보호센터)에서 신문 나눠 주는 일을 하거든. 그걸 사람들이 고맙다고 했어."

아버지가 감사하다고 느낀 일이 무엇인지 여쭌 것인데 남들이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일을 말씀하다니. 센터에서 신문을 나눠주는 일은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지팡이에 의존해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신문을 나눠줄 아버지를 상상해 봤다.


그런 뒤 같은 질문을 바꿔 여쭈었다. 아버지는 다른 듯 비슷한 답을 하였다.

"성당에 매주 누룽지 사탕을 가지고 가서 신부님, 수녀님들, 행정 보는 M님께 세 개씩 드리거든. 다들 감사하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어."

내 귀를 의심했다.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영민한 분데. 내 질문을 잘못 들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두 번 다 그렇게 답했다는 것은?


당신이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싶으신 거구나.


일요일에 아버지를 쉬지 못하게 한 것 같아 죄송한 감도 있지만, 너무 편하게 해 드리면 안 된다. 아버지를 못 살게 굴어야 한다. 음번에 더 못살게 굴 방법을 상상해 보자.


아버지의 허벅지에 근육이 다시 붙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지 의문이지만, 가져 보기로 한다.

우리의 늙음은 착각이라는 책도 있으니, 믿고 싶은 것부터 믿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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