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레카야자 Feb 21. 2020

때리는 군중, 맞는 카메라

청와대 앞 도로 열렸다…천막 철거·주민들 '환영' 


오랜만에 맞았다

여느 때처럼 경찰들은 나를 보호하며 "참으시라"고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때리면 맞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아침 7시 반, 지하철을 타고 출근 중에

데스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 앞 사랑채로 급히 가보라는 것.

경복궁 역에서 회사차량을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2월 13일 아침부터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에 있던 

천막 구조물들이 모두 철거되고 있었다. 



200213 뉴스데스크 <청와대 앞 도로 열렸다…천막 철거·주민들 '환영'>



500명이 넘는 인력이 동원돼 청와대 앞 도로를 정비했다.

다섯 차례 이상 계고장을 붙였지만 시정되지 않은 결과였다.


당시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에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보수단체 범국민투쟁본부(이하 범투본)의 천막 9개동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최대한 서둘러 도착했지만 현장에는 이미 천막이 모두 해체되어 땅바닥에 

그 잔해들만이 널부러져 있었다.


어딘가에 꽂혀있었고 누군가에게 들려있었을 태극기와 성조기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좌) 200213 뉴스데스크 <청와대 앞 도로 열렸다…천막 철거·주민들 '환영'> / (우) <미방분> 땅바닥에 나뒹구는 성조기



갈 곳 잃은 범투본 사람들은 잔해 주위를 돌아다니며 씩씩거렸다.

그러다 내가 들고있는 카메라에 붙은 로고를 보았다.


한 명은 위협적이지 않다.

그들이 나에게 위협이 되는 순간은 

처음 다가오는 그 한명의 뒤를 이어 그 무리 전체가 나를 

둘러싸게 되는 순간이다. 


다섯번 이상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구청이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불법 점거물임에도 행정대집행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어딘가에 화풀이를 해야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소리쳤다.



<미방분> 특정 언론사의 취재를 막는 범투본 참가자들



찍지말라는 고함으로 시작된 목소리들은 이내 욕설과 

'빨갱이' 운운하는 식상한 멘트들로 번졌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한 남성은 다가와 렌즈를 손으로 친 뒤 배치기를 했다.

어림잡아 나보다 못해도 20kg은 덜 나갈 남성이었다.


주위에 있던 할머니와 아줌마들은 

들고있는 팻말이나 셀카봉을 휘둘렀다. 

몇몇의 '휘두름'은 허공을 갈랐고 나머지의 것들은 

그들의 목표점, 나에게 도달했다.


나는 오디오맨에게 휴대폰을 꺼내 이 상황 전체를 찍어달라고 했다. 

이 얘기를 듣자 그 카우보이는 "그렇게 싸우고싶어?" 하며 또다시 다가와 배로 나를 밀쳤다.

부러울 만큼 날씬한 배였다.



<미방분> 렌즈를 쳐내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



정보관을 비롯한 경찰들이 와 그들을 제지했다. 

나에게는 "참으시라"며 잠시 떨어질 것을 요청했다. 

그들이 '자존심'이 상해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자존심이 상해 그러는 것이든 무슨 이유로 그러는 것이든 

나는 크게 상관없었다. 


왜냐면 현장에서 취재진을 향해 벌어지는 그들의 폭력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 이유가 정당하든 아니든 간에

이유라는 것이 있기나 하든 말든 간에

나는 "때리면, 맞으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타난 기자가

'그렇게 싸우고 싶'을리 없을 거라는 정도는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그들과 맞서 배치기를 할수는 없었다.



<미방분> 헌금함을 들고와 카메라를 치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



집회 현장에서 

우리 회사 로고가 붙은 카메라를 보고 

달려들어 취재를 막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방송에 내보내지도 않으면서 찍긴 왜 찍냐"는 것이다.


난 수없이 들은 이 말들이 아직까지도 너무나 이해가 되질 않는데 

그들 스스로가 보도되지 않는게 불만이라면

일단 내가 찍게 놔둬야 방송이 나가든 말든 할게 아닐까?


여러 집회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대응을 해봤다.

함께 인상을 쓰며 고성도 질러보고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할 일만 하기도 해보고 (렌즈를 하도 막아 ok컷을 만들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격언을 지표 삼아 욕을 먹을 수록 방긋방긋 웃으며 "네", "네" 하는 

반응도 해봤다. (취재에는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날이면 날마다 써먹기에는 내 감정이

잘 따라주질 않는다.)



<미방분> 반대쪽 도로로 넘어가려는 취재기자를 저지하는 범투본 사람들



현장 스케치를 마무리 하고

사실상 가장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었는데

범투본 쪽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었다. 


취재기자가 다가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벌집을 건드렸다.

벌떼를 피해 한걸음 물러서자 한 여성이 할 얘기가 있다며 다가왔다.

안전을 위해 여기서는 말고 한적한 데에서 인터뷰를 하자며 

데리고 가는 데 우리를 발견한 집회자들이 몰려와 인터뷰를 막았다.


할 얘기가 있어 그런다,던 여성은 

그들과 인터뷰를 하려거든 다시는 이 모임에 나오지 말라는 얘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무리에 합류했다.



<미방분> 인터뷰 중 난입하는 범투본 집회자




이 글이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내 편과 네 편을 갈라

'특정 진영'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이야기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2016년도 촛불집회 당시에도

모 선배는 침을 맞고

모 선배는 돌을 맞았다고.


모 선배는 카메라와 마이크에 로고를 떼고 다녔고

모 선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존심'이라며

언어와 신체의 폭력을 견디며 로고를 지켰다지.




200213 뉴스데스크 <청와대 앞 도로 열렸다…천막 철거·주민들 '환영'>



그저 취재과정에서 있었던,

여전히 바뀌지 않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현장 기자의 푸념이다.










내일은 광화문에서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우리 회사의 로고를 붙인 카메라를 들고 

광화문에 나갈 것이다. 


그가 내일

안전하기를 바란다. 






관련 리포트 ;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660756_32524.html


매거진의 이전글 시동을 끄지 않아도 시동이 꺼지는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