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하려다 이주 노동자 참사…"안전센서 꺼놔"
정철규(이하 '블랑카')씨는 2004년 <폭소클럽>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블랑카'씨를 연기하며 불후의 명대사 "사장님 나빠요!"를 외쳤다.
햇수로는 16년이 지났다.
그리고 사장님들은, 여전히 나빴다.
2020년 3월경부터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관한 여러 현장을 방문하며 취재했다.
사실은 3월보다 더 전에 이루어진 취재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후 이주노동자들 측에서 다시금 연락이 와 본인들의 인터뷰를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바꿔 보도가 불발되기도 했었다.
임금체불, 폭언 및 욕설, 폭행 등 고질적인 문제부터
사고 후 트라우마, 작업환경에서 비롯된 알러지 등 쉬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고용 허가제'.
시간상으로는 가장 최근(4월 3일)에 다녀온 '한국프라스틱 공장' 보도가
이주노동자 특집 리포트들 중 가장 먼저 방영됐다.
이 곳에서 지난 2월 중 있었던 사고에 대한 리포트였다.
사고 경위는 이랬다.
한 이주노동자와 반장이 함께 사출기 내부를 수리 중이었고
수리 중 어떤 문제가 생겨 반장이 먼저 기계에서 나와 기계 바깥문을 작동시켰다.
그런데 기계가 전자동 모드로 되어있던 탓에 바깥문이 닫힘과 동시에 기계가 전면 작동돼
사출기 사이에 이주노동자 몸이 끼여 사망했다.
끔찍한 상상이 들것같아 더욱 자세한 묘사를 하기 어렵다.
단순히 '이러이러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이미 사건 당시 보도됐다.
하여 이번 리포트에서 전하고 싶었던 점은
이러한 사고가 '왜' 일어난 것이고, 이러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방법은 없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공장에 찾아가 당시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들 찾았다.
늘 그렇듯 담당자는 '외출중'이었고 해당 공장의 예산 지사장이 우리를 맞았다.
방문 이유를 밝히자 잠시 내부적으로 알아보겠다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를 기다리며 우리도 차량 안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사이 나는 차 창 밖으로 공장의 모습들을 촬영했다.
스트레이트 기사* : 피쳐 기사(feature articles)에 반反하는 개념으로 사건이나 사실 관계에 대한 단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짤막한 기사
다시 돌아와 그가 한 말은 늘 그렇듯 취재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부를 찍는다거나 정식 인터뷰를 요청할 생각은 없으니 묻는 몇가지에 대답만 좀 해달라고 했더니
본인은 '사무실 담당'이라 현장에 대한 일은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이 공장의 대표가 나와 할 말이냐고,
본 공장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대표라고 나온 사람이
당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냐고 묻자 그는 답하지 못했다.
이어 동행한 취재기자가 끈질기게 몇가지를 묻자 그는 짤막짤막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마저도 후속질문들에 대해서는 칼같이 답변을 피했다.
취재기자가 끈질기게 물은 질문은 "당시 왜 기계에 있던 센서가 작동하지 않았냐"는 것이었고
공장 대표는 (통상적으로) 작업에 방해가 돼 센서의 코드를 뽑고 작업한다는 대답을 흘렸다.
플라스틱을 찍어 모양을 만들어내는 사출기 내부에 달려 있는,
노동자들의 '생명줄'과 같은 센서는 작업의 효율성에 떠밀려 코드조차 꽂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사출기에는 '수동 모드', '반자동 모드', '전자동 모드'가 있는데
수동은 기계의 바깥문과 내부 작동이 모두 별도로,
반자동은 바깥문을 닫을시 기계 내부가 1회 자동으로 작동되고
전자동은 바깥문을 닫으면 기계가 끊임없이 작동되는 모드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사고 당시에는 '전자동 모드'로 설정되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이 기계 내부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에는
안전을 위해 기계를 '수동 모드'로 놔둬야 한다.
혹시나 누군가 안에 사람이 있는 걸 모르거나 또다른 이유로 기계 외부도어를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안에 들어간 사람이 다치는(죽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계는 전자동 모드였다.
이 또한 관행적인 일일까?
수리하러 들어갈 때마다 일일히 수동모드로 바꿔주는 일이
과연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잡아먹는 일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게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나는 매번 모드를 바꿔주는 '수고로움'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이든 지켜져야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이 당연한 일들이 지켜지지 않은 책임과 이유를
누구에게 얼만큼 물어야할지는 기자들이 판단할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자세한 조사 내용을 듣기 위해 예산 경찰서를 찾았다.
사실 예산 경찰서에서 얼만큼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있었다.
취재기자가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은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왔었기 때문이다.
사건 접수가 이루어진 뒤 현장방문을 다녀온 경찰들은
사고가 일어난 기계 어디어디에 센서가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내부에 위치한 센서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조사가 이루어졌냐는 질문을 할 생각이었는데
내부에도 센서가 있냐고 되물어오니 할 말이 없었다.
취재기자 휴대폰의 통화 녹음 파일에서 들었던
"사고 생기고 나서 이렇게 '결과론적으로' 따지고 들면 당황스럽쥬"하던 시선과 태도를
고스란히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닫힘' 버튼을 눌렀던 작업반장은 개인 사정으로 대구에 내려가있어
아직 단 한 차례의 조사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마침' 다음주에 피의자 신분 조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도가 언제언제 나갈거라고 좀 얘기해 줬으면 그 때까정 좀 더 조사를 해서 알려드렸을거 아녀유."
경찰은 보도를 위해 보도시점에 맞춰 수사를 하는 기관인가.
정말 나쁜 생각이지만
과연 이 사고의 사망자가 한국인 노동자였더라도
공장이나 경찰이 지금과 같은 태도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어 드는 씁쓸하고도 슬픈 생각.
누군가에겐 '생명의 무게'가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걸까, 하는 생각.
평소에도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취재기자는
이주노동자의 처우나 사고에 관련된 취재를 하며 한가지 공통된 인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사고를 부상자 혹은 사망자인 이주노동자들의 '안전 불감증' 탓으로 돌린다는 것.
설령 그들이 실제 안전 불감증에 걸려있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안전에 대해 불감한 것이 비단 그 개개인의 탓인지,
안전에 불감한 노동자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치거나 죽지 않게 해야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건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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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713302_325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