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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Jan 12. 2024

Day5. 얼리턴과 다이빙의 질

23.12.14


Day1. 1년 만의 프다팡, 1년 만의 다이빙 
https://brunch.co.kr/@engbenedict/118
Day2. 급할수록 천천히 
https://brunch.co.kr/@engbenedict/119
Day3. 칭찬은 프리다이버도 춤추게 한다 
https://brunch.co.kr/@engbenedict/120
Day4. '가 본' 수심과 '갈 수 있는' 수심 
https://brunch.co.kr/@engbenedict/121



벌써 다섯 번째 날. 

프리다이브 팡라오에서 나의 하루는 대략 이렇다.


07시 20분 기상
07시 30분 아침식사
08시 00분 폐 스트레칭
08시 30분 다이빙 준비  
09시 00분 다이빙 출발
11시 00분 귀가
11시 30분 점심식사
12시 00분 낮잠 혹은 커피
13시 30분 이론 수업 시작
16시 00분 이론수업 종료
17시 00분 저녁 식사
17시 30분 커피&과제


꽉 차고 알찬 날들은 매일매일이 비슷했지만 하루하루 재밌었고, 

그만큼 시간은 빨랐다.

엄마는 뭔 취미로 매번 그렇게 전지훈련을 가냐고 했고 

(여름휴가 땐 발리 서핑캠프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혹자는 회사 휴가를 그렇게 쓰면 아깝지 않냐고 했는데 

아니, 전혀. 아주 즐겁고 보람찼다. 

 


프다팡 보트와 동하 쌤




오늘도 9시에 바다를 나갔다.

오늘의 과제는 총 세 가지였다. 

40m 수심 종목 두 개와 25m레스큐&50m토잉(towing)*.

FIM** 40m와 CWT*** 40m을 도전해 보고, 

혹시 안 되는 종목이 생기면 내일 다시 하기로.

어제 느낌대로라면 40m는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다. 


*토잉(towing): B.O. 다이버를 수면에 눕혀 끌기.

**FIM(Free IMmersion): 하강과 상승 모두 로프를 당겨 다이빙하는 종목

***CWT(Constant WeighT): 하강과 상승 모두 핀을 차고 다이빙하는 종목. 바텀에 도달해 턴을 하는 과정에서 한 번 줄을 잡는 것이 허용된다. 바이핀(bi-fins)을 착용하는 CWTb, 핀을 착용하지 않는 CNF 등의 하위 종목이 있다.  


FIM 첫 시도에서는 34m를 갔다. 

마우스필(mouth fill)*을 뽑는 타이밍이 이상했고 운용도 어려웠다.

너무 늦게 마우스필을 뽑아 살짝 폐가 눌리는 느낌이 있었고 

그 불안함은 입속의 공기를 빠르게 소진시켰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마우스필에 집중하고 

15m 알람을 들은 뒤 프렌젤**을 한 번 하고 마우스필을 뽑았다. 

그 직후 프리폴을 타는데 영 속도가 더디게 느껴졌다. 

'내려는 가고 있는 건가? 이 속도로 언제 다 가지? 아 안 되겠다'. 얼리턴***.

어제는 당장 40m 줄만 내리면 스노클링 하는 기분으로 다녀올 것 같더니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회복호흡을 마치니 동하 쌤이 일부러 웨이트를 안 찬 거냐고 물었다. 


"아뇨, 깜빡했는데요..."


*마우스필(Mouth fill): 프렌젤 이퀄라이징의 상위 버전으로 AIDA 레벨4 과정에서 가르친다. 폐 내의 공기가 잔기량(RV) 이하로 남기 전, 남은 공기를 입안으로 올려 가둬두고 그 공기로 이퀄라이징을 하는 방법. 

**프렌젤(frenzel): 목과 혀의 움직임으로 입안에 있는 공기를 귀로 밀어내는 압력평형(EQ) 방식. 

***얼리턴(early turn): 목표한 수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전에 턴을 하는 행위.

 

2kg 넥 웨이트를 차고 한 번 더 같은 방식으로 FIM을 진행했다. 

15m 알람 듣고, 프렌젤, 마우스필, 프리폴.

프리폴 속도가 확연히 달랐다. 

속도에 대한 불안함이 없어지니 마음도 편했다. 

프리폴을 시작해 캔디볼*이 보이기까지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최종수심 41.2m. 완수했다. 


*캔디볼: 프리다이빙 하강로프에 달아놓은 표식. 보통 바텀플레이트에서 1m 상단에 위치하며, 터닝 시 손잡이 역할을 하고 다이버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회가 아닌 경우 수면에서부터의 수심을 바텀플레이트가 아닌 캔디볼을 기준으로 측정, 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CWT를 진행했다. 개인적으로는 FIM보다 편하게 느껴지는 종목이었다. 

FIM보다 프리폴 구간까지 빠르게 내려갈 수 있고, 

양손이 자유로우니 이퀄라이징도 더 편하게 운용할 수 있기 때문.

 

그런데 특정 수심에서 오른쪽 귀만 이퀄이 되질 않았다. 

왼쪽 귀는 잘 뚫리는 걸로 보아 프렌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오른쪽 귀 유스타키오관*이 부었거나 고막에 상처가 난 모양이었다. 

한 2초 정도 더 버텨보고는 안 되겠어서 얼리턴을 했다. 

턴을 하며 보니 코앞에 캔디볼이 보였다. 

잠깐 귀의 통증을 참고 킥 한 번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그러나 미련 없이 돌아섰다. 최종 수심은 38.6m. 아쉬웠다. 

1초만 더 갔으면 됐는데, 1초면. 


*유스타키오관: 인두와 중이를 연결하는 관으로 이퀄라이징 시 중이로 공기를 보내는 통로. 


올라와 "I'm Ok"* 하고 나니 동하쌤이 오히려 칭찬을 했다. 

목표수심 1m를 남겨놓고 돌아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거기서 억지로 더 가려다가 앞으로의 다이빙을 그르친다고. 


수심을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다이빙의 질'이라고 했다. 

강사 트레이너로서 강사 후보생들을 평가할 때 동하쌤은 1-2m를 더 갔냐, 못 갔냐 보다는 

입수와 하강, 상승과 출수까지의 자세와 다이빙 구성, 

이퀄라이징의 운용, 심리적 안정 등 전반적인 다이빙의 질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방금 내 다이빙은 얼리턴을 했을지언정 훌륭했다고.


*"I'm Ok": 다이빙을 끝내고 회복호흡을 한 후 이상 없다는 뜻으로 보내는 수신호와 구두신호. 대회에서도 다이빙을 무사히 마친 신호로 사용하는 공식적인 사인이다.


"I'm OK"


수많은 강사를 길러낸 트레이너라서 할 수 있는 자신감 있는 코칭이었다. 

본인이 보고 판단한 다이빙의 질이 

수심이나 거리 등 수적()으로 정해놓은 기준보다 우선이라는 확신.

'좋은 다이빙'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 


동하 쌤은 나와 YR에게도 앞으로 교육생을 가르칠 때,

1-2m 차이의 숫자에 집착하기보단 교육생이 하는 다이빙의 전반적인 질을 보라고 조언했다. 

다이빙의 결과보다 그 과정을 보라는 말.

그것에 대한 눈을 가지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이제 남은 건 25m 레스큐에 이은 50m 토잉.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과제였다. 

기절해 몸이 축 쳐진 다이버를 수심 25m에서부터 끌어올리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고

인공호흡을 하며 파도치는 바닷길 50m를 끄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더 큰 문제는..... 나와 YR의 체급차이였다. 

나는 184cm에 90kg에 육박하는 건장한 남성이고, 

나의 버디 YR은 (모르긴 몰라도) 50kg도 안돼 보이는 마른 체형의 여성이라는 것이다. 

네.... 님 버디 잘 못 걸리셨습니다....


YR은 악바리로 해냈다. 

B.O. 다이버* 역할로 수면에 누워 끌려가면서 

YR의 헥헥거리는 숨소리를 듣는데,

진짜 기절했더라도 미안해서 일어나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50m 토잉 완수 후에는 '만세!' 내 과제를 마쳤을 때보다 기쁘더라.


*B.O.(Black Out) 다이버: 의식상실 다이버


이 날은 보홀에서 흔치 않게 너울성 파도가 좀 치는 날이었다. 

부이에 매달려 준비호흡을 하고 있으면 살짝 어질어질 어지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YR도 멀미를 했다.

어질어질 미식미식.

다이빙을 마치고 보트에 올라오니 더 어지러웠다.

보트가 출발하고 바다 바람을 쐬니 좀 나은 듯했다가

다시 땅에 올라오니 육지멀미가 났다.

샤워를 하고 밥을 먹을 때까지도 멀미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빙글빙글 어질어질어질어질어질.

보홀 바다에서 멀미라니. 나로선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론 수업시간에는 AIDA3 교육생(역할을 하는 동하 쌤과 유림 다이버)을 대상으로 

MDR*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을 가졌다. 

11일 이론시험에서 MDR과 관련된 문제를 틀렸던 것에 대한 동하 쌤의 처방이었다. 

덕분에 MDR에 대해 진지하고 깊게 공부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MDR과 관련된 논문들을 여럿 찾아봤다. 

DBpia에서 적절한 국내 논문은 찾지 못해 Google Scholar에서 해외 논문을 뒤적였다. 

그중 W. Michael Panneton의 <The Mammalian Diving Response: An Enigmatic Reflex to Preserve Life?(포유류 잠수 반응: 생명 유지를 위한 불가사의 반응인가?>를 인용했다. 

알면 알수록 우리의 몸이 신기했다. 

머나먼 과거, 가장 처음 육지로 나와봤을 용감한 물고기에게 고마웠다. 


*MDR(Mammalian Diving Response): 포유류 잠수 반응. 수압, 체내 CO2 농도 증가 등에 따라 서맥, 비장 효과, 혈액 이동 등 신체에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 


W. Michael Panneton. (2013). The Mammalian Diving Response: An Enigmatic Reflex to Preserve Life?



이제 강사과정의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최종과제인 스페셜 프리젠테이션이 불과 이틀 뒤였다. 


첫날 갔던 '나무 카페'에 가서 ppt를 만들었다. 

콘센트 자리를 먹혀서 다른 자리에서 호시탐탐 노리다가 쟁취했다. 

커피와 케잌을 시켰다가, 오래 앉아있는 게 민망해 망고 음료를 하나 더 시켰다.

마감시간까지 앉아있었더니 한국인 사장이 왔다. 역시 한국인 가게였군.



Cafe Namoo







Day6. 결이 비슷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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