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 시시한 첫사랑 같은

by 하루오

우~유, 좋아. 우~유, 좋아. 우~유 주세요. (더 주세요)

우~유, 좋아. 우~유,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

잊히지 않는 노랫말, 잊혀버린 하얀 맛. 옛 연인의 안부처럼 궁금하지 않다. 우유를 내 돈 주고 사 먹은 지 오래다. 우유를 기억할 뿐, 재회에 관심 없다. 첫사랑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이었는지 알아버린 기분이다.


‘유유=건강’은 국민학생의 국룰(國rule)이었다. 초등학생도 이를 계승했다. 거짓은 아니겠지만 삶의 필요조건으로 과장된 듯했다. 지금도 거의 모든 세대에게 냉장고 필수 구성 요소로 인식된다. 우유 급식이 남긴 집단 최면이다.


우유 급식은 자율을 가장한 강제였다. 선택이지만 다들 먹는데 나만 안 먹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낙농업계와 정부의 유착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성장기 아이들의 영양을 가정에서 책임질 여력이 모자란 시절이었다.


당번이 씩씩대며 1층에서 우유를 가져 오면 아이들이 하나씩 마셨다. 우유팩 바닥에는 숫자가 있었는데 그것으로 운을 점치기도 했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숫자가 나오면 바꾸기도 했다. 의외로 숫자로 따먹기를 하거나 힘 쎈 아이가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일은 없었다. 간혹 우유가 남으면 힘 쎈 아이가 차지했지만, 마시기보다는 창밖에 분무하거나 우유팩째로 벽이나 바닥에 내던져 터뜨렸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우유보다 우유팩이 중요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빈 우유팩은 공이 되었다. 농구공이 되어 우유 상자를 들락날락거렸고, 야구공이 되어 교실 앞뒤를 오갔고, 축구공이 되어 교실 뒤를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우유팩이 터져 남아 있던 우유가 사방으로 흩뿌려 졌을 때, 관련자들은 선생님께 얻어터졌다. 그래도 우유팩은 쉬는 시간마다 줄기차게 공이었다.


우유는 맛대가리 없었다. 먹으라 해서 먹었고, 속이 더부룩해지거나 설사를 해도 먹었다. 술을 마시다 보면 술이 늘 듯이 우유도 마시다 보면 우유도 는다고 했다. 유당불내증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더 이상 우유를 마시지 않아도 된 이후였다.


‘마일로’는 가짜 구원자였다. 우유에 타먹는 코코아 파우더라니, 산타 할아버지급 존재였지만, 산타 할아버지처럼 내겐 없었다. TV나 [어린이 문예], [보물섬], [만화왕국]의 컬러 광고를 보며 ‘와!’할 뿐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 집안 형편도 고만고만해서 내 주변 아이들도 마일로를 먹어 본 적 없었다. 덕분에 ‘어른이 되면’ 버킷리스트에 올려놓고 마음껏 우러러 봤다. 막상 어른이 되었을 때는 잊혔다. ‘제티’가 나왔을 때, ‘어? 어렸을 때도 비슷한 뭐 있었는데?’ 하며 잠깐 기억을 긁어볼 뿐이었다.


카스테라는 우유의 참사랑이었다. 퍽퍽한 카스테라는 우유 한 모금으로 폭신해졌고, 밍밍한 우유는 카스테라로 달달해졌다. 멋모르던 시절에도 우유와 카스테라를 먹을 때면 서로의 영혼을 북돋아 주는 상대와의 결합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웨딩드레스 색깔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의 궁합도 만만찮아 끼니 대용으로 먹던 빵과 우유는 자리를 잃어갔다. 아침에 우유 한 잔 점심에 패스트푸드를 먹던 도시인도 모닝커피를 마시거나 브런치에 커피를 곁들였다. 아침에 일어나 신을 신고 우유 한 잔으로 시작해도 생활에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력은 주지 못함을 안다. 우유는 라떼 속에서나 ‘나 때’를 회고할 뿐이다.


자취를 해보니 내 돈 주고 사야 하는 우유의 존재감이 만만찮았다. 먹지 않기 힘들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시리얼을 먹었다. 한 밤에 출출해졌을 때도 시리얼로 허기를 막았다. 우유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건강을 지키는 최후 방어선이었다. 바나나와 궁합도 좋았다. 마트에서는 갈변한 바나나를 헐값에 팔곤 했다. 情 아닌 초코파이들도 자주 할인했기에 박스 단위로 사서 우유와 함께 끼니를 대체하기도 했다. 그때는 유당불내증이 없어져 있어 냉장고에 우유 떨어질 날이 없었다.


우유 선택 기준은 가격이었다. 품질은 상향평준화 되어 있었다. A와 A++에 차이가 있다 한들, 내가 구분할 정도는 아니었다. 900ml 기준 20% 이상 비싼 빅3 회사 제품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멸치 몇 마리 안 될 칼슘을 더 먹자고 멸치 수십 마리 값을 내는 것도 부당했다. 그렇다고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된 기업의 할인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았다. 특별히 신념이 강한 것은 아니다. 빙그레, 푸르밀, 소와나무, 지역 우유 등 대체재가 충분했다.


바나나나 초코파이는 쟁여 두면 습관적으로 먹어 대서 이들과 거리를 둘쯤 우유가 상하기 시작했다. ‘우유 한 잔’을 음료처럼 마시지도 않다보니 시리얼이 아닌 한 우유를 마실 일은 없었다. 스케줄이 변하며 식단이 어그러질 때도 있어 유통기한을 의식해야 했다. 유통기한 하루이틀 넘겨도 문제없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믿었다가 급성 장염으로 응급실에 간 적 있었다. 두 번이었다. 콩자반에 곰팡이가 피면 곰팡이 부분만 걷어내고 대충 먹었지만, 우유는 유통 기한 하루 전에도 버렸다.


우유는 두유로 대체했다. 두유는 더 저렴하고 유통기한도 길었다. 직관적인 대응이었지만 알고 보니 두유가 유당불내증 환자들 때문에 만들어진 우유의 대체재라고 했다. 유당불내증 환자들은 라떼에 우유 대신 두유를 넣었다. 유당불내증과 무관해진 나는 시리얼에 우유 대신 두유를 넣었다. 애초에 무던한 입맛이라 두유는 선방했다. 두 번째 연인은 첫 번째 연인과 비교 당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현재 역시 과거를 쌓으며 먼 과거를 이기기 마련이다. 우유의 시절이 끝났다.


내가 우유를 떠난 것인지, 우유가 나를 떠난 것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다만 헤어지고 보니 우유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우유는 어린 시절부터 존재감 없이 내 일상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냉장고를 열면 늘 있었고, 없으면 채워질 거라 생각했다. 식구 중 누구도 우유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우유는 늘 유통 기한 전에 제 몫을 해냈다. 그렇다고 우리 식구들이 마셨던 브랜드가 기억나는 것도 아니다. 급식 시절 지역 우유였다가 다른 브랜드가 치고 들어왔던 것 같기도 아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우유는 내게 물도, 음료도 아닌 것이 ‘건강’에 매달린 퇴락한 구호가 되었다. 우유는 물만큼 갈증을 해소하지도 못하고 음료보다 ml당 가격은 높으면서 맛도 덜하다. 풍부한 영양소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다. 영양 과잉 시대다. 비싼 몸값 때문에 정작 우유가 꼭 필요한 계층은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 어중간한 7080 시절 미인이 지금도 젠체하니 구매를 설득하지 못한다. 오히려 유제품 원료로 쓸 지방을 빼면 몸값을 낮춰야 할 텐데 ‘저지방’을 프리미엄처럼 팔아대며 밉상 짓이다.


편의점에서도 흰 우유를 파는 것을 보면 과연 십인십색이구나 싶다. 저걸 왜 저 돈 주고 마시나? 오뚜기 3분 카레의 혜자로움을 생각하면, 우유, 너는 내게 상(上)창렬이었다. 어린 아이가 우유 한 잔 마시고 입가에 남은 하얀 엔젤링을 핥는 무구함은 가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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