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밥 먹었어요.”
학생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이 내겐 어렵다. 거창하게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밥 한 번 먹는 것조차 스케줄이 되었다. 우리 셋이 밥을 먹은 것이 2018년인지, 2019년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밀양이었던 것 같다. 상주에 있던 송이 김이 있는 밀양으로 출장 갈 때, 경산에 들러 나를 태워갔었다. 김이 전주로 이직하자 그나마도 끊겼다.
우리는 대학 동기였다. 나는 술을 안 마셨고, 송과 김은 스타크래프트를 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친해져 있었다. 남들은 학교를 다녔지만 우리는 학교에 눌러 앉았으므로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여자 셋 없는 시트콤처럼 살았다. 새내기 시절, 선배들은 ‘북 들고 오락실 노래방에 간 엽기’로 우리를 기억했다.
나는 한결같이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모임을 주선하는 것은 사회생활에 착실한 송이나 사람 좋아하는 김이었다. 이번에는 송이었다. 모교에 갈 일이 생겼는데, 김은 이직 준비로 대구에서 빈둥댔고, 나는 연말 한가한 시즌이니 밥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버스로 한 시간 가량 가야 해서 귀찮았지만 정황상 외통수였다.
약속 당일, 김이 나를 태우러 왔다. 대구 서쪽 끝에서 대구 동쪽을 넘어 경산까지 온 것이었다. 미련한 호의에 고맙다는 인사는 생략하고 전날 치과 간 건 어땠느냐고 물었다. 김은 때운 게 떨어져 다시 때워야 하는 것과 별개로 장염 이야기를 잇댔다. 나는 질세라 구내염과 족저근막염으로 맞받아쳤다.
우리가 학교에 도착하고 5분도 안 되어 송이 볼 일을 마치고 나왔다. 김을 만났을 때처럼 역시나 반가움은 없었다. 어제 보고 오늘 보는 것 같은데 갑자기 낡아 있을 뿐이었다. 송의 첫 마디는 차 어디에 댔느냐는 것이었다. 김이 대답하는 동안 나는, 친구란 언제 만나든 인사가 불필요한 사이로 정의했다.
북문 앞으로 나갔다. 모교에서 사실상 정문 역할을 수행하며 인근에서 상권이 가장 넓었다. 우리에겐 학교가 집이었으므로 북문 앞은 우리 동네였다. 송과 나는 졸업 후에 2년가량 이쪽 고시원에서 지내며 도서관을 오갔었고, 김은 풀타임 석박사를 거치며 지박령으로 살았다. 오전 11시 조금 넘은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뭐 먹을래?”
“짬뽕, 국밥, 닭고기류,”
“그러면 저쪽,”
“빼고 다.”
늙은 자취생의 주요 외식 메뉴는 짬뽕과 국밥이었고, 치킨은 최근 2년 간 연평균 60.5마리를 먹은 사실상 가정식이었다. 혼자서 먹지 않을 음식이면 무엇이든 좋았다.
아무튼 저쪽 하며, 먹을 만한 거 찾자며 걷기 시작한 것이 추억 관광이 되었다. 졸업 후 처음은 아니었지만, 셋이서는 10여 년 만이었다. 송과 거주하던 고시원 1, 2층은 식당과 카페로 바뀌었다. 현재는 당시 여자 층으로 운영되던 3층만 운영 중이었다. 전국 뉴스에 올랐던 살인 사건이 났던 곳이 편의점인지 찜닭집인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고, 복할매집은 테이크아웃에 주력하는 카페로 바뀌었고, 오락실은 술집으로 바뀌었고, 경찰서 앞 놀이터는 지대가 높아졌고, 뒤풀이 메카였던 고깃집 골목은 코로나로 거의 전멸되어 있었다. 장소마다 일화들이 공유되었다. 일화 속에서 호, 혜, 제, 희, 철 등과 조우했다. 아마 그 시절 우리가 갔던 김밥천국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거기라도 갈 기세였다.
기세만 그랬을 뿐, 우리의 만남이 특별해져버렸다는 것은 결국 음식으로 증명되었다. 고기나 초밥으로 메뉴가 모아졌다. 한 바퀴 반을 돌아보고서야 짚신매운갈비찜 집에 들어갔다. 우리가 처음이자 유일한 손님이었다. 실내가 어둑해서 조촐하고 아늑했다. 송은 먼 곳의 우리를 불렀다며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어떤 음식을 먹든 맛있는 걸 선호해 어느 식당에 가든 비싼 것부터 시키는 김은 ‘앗싸 소다!’라며 흥분도를 높였지만 나는 돼지로 깎았다. 아직 소 맛을 모르겠다. 돼지갈비찜으로 3인분 주문했다.
매운 돼지갈비찜은 우리 테이블 가운데서 끓었다. 하나의 냄비에서 조리된 음식을 직접 나누어 먹는 일이 새삼스러웠다. 작년에 이런저런 사람들과 해물 볶음밥, 파스타, 스테이크, 냉면, 물회, 포케를 먹었을 때, 우리는 각자의 접시에 충실했었다. 타인과 관계하는 사회적 행위는 적당히 맛있었다. 그런데 송, 김과의 관계 행위는 보다 자아를 푸짐하게 만들었다.
같은 음식이 다른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서로 다른 몸들이 음식이라는 줄로 이어진 것 같았다. 이 줄을 당기면 우리 몸은 바싹 가까워져, 국물을 자주 홀짝대는 송의 얼굴과 육질을 음미하며 느리게 먹는 김의 얼굴이, 저 못생긴 것들이, 더 못난 내 얼굴에 비벼질 것 같았다. 마흔 넘은 아저씨들이 얼굴을 비벼대는 찜찜함이 찜 한 그릇에 담겼다. 고기, 만두, 야채가 각자의 육즙을 물에 풀어 그것에 몸을 담가 하나의 음식으로 명명되는 것처럼 개별 자아는 우정 속에서 푹 고아져 서로의 육즙에 몸을 섞어 하나의 자아로 확장되었다. 여기에 대화가 양념장으로 풀렸다. 이날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만큼 쓸데없는 말로 우리 사이를 채웠을 것이다. 공적 관계나 적당히 친한 사람들과도 잡담을 나눌 수 있지만, 그날 우리의 쓸데없는 것들은 입으로 방귀를 껴대는 무격식의 날 것이어서 더없이 신선했다. 나는 혼자 있을 때보다 자연스러웠다. 혼자일 때의 싱거움은 나의 자연체가 아닌 듯했다. 매운 돼지갈비찜의 살코기는 내 살보다 연했다.
음식을 기다리고 먹고 나오기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편의점에서 2+1하는 커피를 하나씩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송이 어딘가에서 받은 편의점 쿠폰을 빨리 써야 한댔고 송은 커피 취향이 없었다. 걸으며 마시는 것을 못하는 송은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홀짝거렸고, 커피 취향이 확고한 김은 손에 들고만 있었고, 손에 들린 건 해치워야 하는 나는 마스크 아래로 꽂아 넣은 빨대를 전투적으로 빨았다. 그리고 내일 또 만날 사람처럼 건성건성 헤어졌다.
집으로 와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아침, 점심, 저녁에 또 혼자를 먹으며 나는 매운 돼지갈비찜 위의 대화를 반추했다. 집에서 만나는 내 밥 친구 유재석, 강마에, 이도, 장그레, 김신, 토니 스타크, 최근에 친해진 쉘든도 말을 많이 했지만, 내게 들리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쓸데없음이 들리지 않는다. 무언가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나는 미생으로 지랄하고 자빠진 3000만큼의 똥덩어리 같다. 밥 상 위의 쓸데없는 멜로디를 듣고 싶다.
똑똑똑, 송. 똑똑똑, 김. 똑똑똑, 정.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