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질 - 미운 나를 향한

by 하루오

나는 틀렸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희망은 구질구질했다. 이미 엎질러진 인생이었다. 내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노래는 사랑 없는 일상을 확인 사살했다. 현실은 아이돌의 어여쁜 응원처럼 희망차지 않았다. 내 낡은 서랍 어딘가에 로드 파일이라도 숨겨져 있으면 좋겠다. 이 오답을 되돌리고 싶었다. 나는 이런 내가 되고 싶은 적 없었다.


꿈을 좇는 데 용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먹고 사는 수레바퀴에서 도망친 곳이 꿈이었고, 글이었다. 나는 무능했고, 무능함을 알면서도 꿈속에 머물러 비겁했다. 꿈의 수레바퀴 아래도 만만찮았다. 20대는 자살 앞에서 머뭇댔고, 30대는 죽음도 삶도 실패한 어중간한 교집합에 타협했고, 40대는 그 교집합조차 비워내는 삶이 시시했다. 이제는 노화까지 더해져 더 보잘 것 없어진 시시 덩이를 위해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사태에 달관했다. 의욕을 연기할 정도의 의욕은 남아 있지만 굳이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힘을 써 봤자 내가 되고 싶은 적 없는 것밖에 되지 못하는 데 힘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사실은 애쓰고 있어서 내가 혐오스러웠다.


문득, 3분이 훨씬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5분을 넘겼을지도 몰랐다. 치약 거품이 입가로 흘러내리고서야 양치치를 멈췄다. 어쩌면 한숨도 쉬었을 것이다. ‘멍한 양치’는 자기 부정의 바로미터였다. 평소에도 오답 인생에서 흘러내린 우울감으로 축축한 상태이지만, 멍한 양치는 상태가 좀 더 나빠진 징후였다. 약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조만간 아침에 눈 떠지는 게 귀찮고 서운해질 것을 예감했다.


입은 안이자 밖이다. 닫았을 때 안이고 열었을 때 밖이다. 입을 열었을 때 입 안의 치아는 사찰 입구에 세워진 사천왕처럼 무엇이든 찢어발길 준비가 되었다. 나는 나를 물어뜯고 싶지만 차마 혀를 으깨지 못한다. 입을 닫고 혀로 치아를 쓰다듬으면 치아는 은밀하게 만져지는 온순한 뼈가 되었다. 멍한 양치는 나의 뼈를 닦음으로써 자해를 차단했다. 자기혐오를 정화하는 무의식(無意識)적 의식(儀式)인 셈이었다.


최근에는 일이 잘 풀렸다. 2~3년 후에는 다음 단계로 올라설 것을 예감할 정도로 밥벌이에 확신이 섰다. 나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설프게나마 경영을 하고 있었다. 공부방 홍보 전략을 짜서 수행하고, 학부모 상담을 이어갔다. 하필 명절을 포함해 사적인 약속도 몇 개 잡혔다. 내게 사람은 스트레스였다. 평균의 반의반도 안 될 인간관계를 나는 감당하지 못했다. 안면 신경 마비가 왔다. 현실 면역력이 약한 내 기준에서는 현실 과잉이었던 것이다. 왼쪽으로 입이 돌아가 눈도 제대로 감기지 않는 거울 속 얼굴이 애쓰는 나를 비웃는 듯했다.


긴 상담 이후 학생을 붙잡지 못했을 때는 실연당한 기분까지 더해졌다. 정작 상실감이 있어야 마땅할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글로 이루고 싶은 것을 팽개친 채 돈만 좇고 있는데도 무감했다. 돈이 살찌는 것은 돈의 본성이므로 나는 돈의 의지를 수행하는 대리인이었다. 알고도 모른 척했다. 잡문도 남기지 않는 죄의식마저 돈으로 뭉갰다. 양치 시간이 길어졌다.


양치는 책상 앞에서 이뤄졌다. 칫솔을 입에 문 채 책상 위 노트북을 봤다. 화장실에서 내 책상 앞까지 두세 걸음이면 충분한 방이었다. [무한도전]이든, 그 주의 예능이나 드라마든, 유튜브 영상이든, 쓸데없는 것을 보며 이를 닦았다. 그러다 보면 또 양치 시간이 늘어지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양치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양치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지겨웠다.


평소에도 양치는 진심인 편이다. 유년기 때 치과에서 겪었던 공포와 청년기 때 자기 부정의 무의식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결합된 듯했다. 하루 세 번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아침과 자기 직전에는 꼭 챙겼다. 어금니 위와 안팎 닦기를 네 방위에서 반복하고, 앞니도 앞뒤를 아래위로 쓸어줘야 하니 3분은 금방이었다. 특히 오른쪽 위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고기나 섬유질이 잘 끼기 때문에 신경 썼다. 이쑤시개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어 양치할 수 없는 상황이면 종일 신경 쓰였다. 양치할 때는 혓바닥도 박박 쓸어야 개운했다. 초기에는 구역질이 났지만 이제는 편안한 혀 위치를 조정할 줄 알았다.


칫솔에는 취향이 있었다. 내가 애용하는 칫솔은 칫솔모가 단단하고, 잇몸을 마사지 해주는 날개도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칫솔 뒤통수에 혀클리너로 사용할 수 있는 돌기도 있었다. 특히 교차로 배열된 칫솔모 덕분에 칫솔질 할 때 역류와 순류가 포개져 꼼꼼히 닦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힘주어 박박 문지르지는 않았다. 덕분에 교체 주기라라는 3개월이 되어도 칫솔모는 비교적 올곧았다. 마음 내킬 때 칫솔을 교체했다.


요즘은 칫솔 두 개를 번갈아 가며 사용한다. 메인 칫솔 두 번에 서브 칫솔 한 번 쓰는 식이다. 우연히 얻은 칫솔은 미세모에 머리가 작았다. 미세모는 쓸어주는 힘이 약해 메인 칫솔보다 개운한 맛이 덜했지만, 내가 느끼지 못하는 어금니 틈을 쓸어줄 것을 기대했다. 작은 머리는 메인 칫솔로 닿기 힘든 어금니 뒤편을 공략할 수도 있었다.


전동칫솔에는 무관심했다. 비용이 아니라 리듬의 문제였다. 양치에는 손목을 까딱대고 손을 움직이는 고유 리듬이 있었다. 리듬에는 온 몸이 실렸다. 섬세하지만 건성건성 해도 괜찮아서 몸에 낀 촉박함도 쓸어내는 듯했다. 입 안의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를 내 마음대로 연주했다. 전동칫솔에는 내 손의 리듬은 사라지고 ‘윙-’만 남았다. 물론 내가 전동칫솔을 움직이긴 하겠지만, 그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윙-’을 맞춰주는 보조였다. 나는 내 리듬으로 나를 씻어낸다, 이런 사실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치약은 아무 거나 썼다. 본래 알갱이가 있는 제품만 썼었다. 햇볕에 잘 마른 수건의 까끌까끌한 느낌으로 이를 닦아내는 것 같아서 개운했다. 그러나 치약은 화장실 수납장에서 자생하는 것처럼 어디선가 자꾸 생겨났다. 새로 살 기회를 잃는 동안 치약 취향을 잃었다. 치약의 중요도가 떨어지며 양치는 화학 작용이라기보다는 물리 작용이 되어갔다. 손목 리듬이 더 중요해졌다.


치실은 사용하지 않았다. 몇 번 써봤지만 번거로우면서 이 사이를 벌려 놓기만 했다. 그래도 건강검진 때마다 치아는 별 이상 없는 것으로 나왔다. 스케일링도 자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의료보험이 적용된 이후 처음 스케일링을 했을 때, 의사는 그다지 긁어낼 치석이 없다고 했다. 그 이후 한 번 정도 더 받았을 때도 엇비슷한 말을 들었다. 오복 중 하나는 챙긴 셈이니 박복하지만은 않은 듯했다. 그래서 더 양치에 신경 썼다. 오답 중에 숨은 복 하나 정도는 붙들고 싶었다.


아침보다는 밤 양치에 더 공을 들이는 편이다. 종일 먼지처럼 뒤집어 쓴 현실을 닦아내는 의식이었다. 나는 내가 되고자 한 사람이 아니므로 나 스스로 나의 이물질이었다. 현실에 진심이었던 이물질을 닦아낸다. 닦아내고 남은 것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중년 사내지만, 아직 완전히 고장 난 것은 아니다. 사천왕이 나를 지킨다.


양치는 결국 마음의 뼈를 닦는 일이다.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더 나빠지고 싶지는 않다. 치석처럼 쌓일 오답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싶다. 치키치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차카차카, 내가 아닌 것들을 꼼꼼히 닦아내자고, 초코초코, 나는 어쩌면 괜찮은 복을 받고 있다고, 치, 친다. 그렇게, 청결한 착각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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