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2 - 목요일 오전 9시의 취향 탄생

by 하루오

분했다. 기어이 내 돈 주고 사 먹고 말았다. 취향이란 사용가치를 왜곡한 교환가치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비합리적 선택이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그것도 치즈베이글과 크림치즈를 사 먹어서 나는 부자가 되고 말았다. ‘내가 부자라니!’라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명백한 부자의 기분으로 맞는 화요일 오전 9시다. 취향 고자의 위대한 걸음마다.


필요 없는 것을 소유하는 비효율을 참지 못했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빠르게 버렸다. 버리지 않기 위해 몇 번 사용하지 않을 만한 것은 사지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 비슷한 삶의 태도가 학습된 것은 이 지랄 맞은 효율성 원칙 때문인 셈이다. 효율의 세계는 교환가치를 천시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을 때는 인지부조화의 방어기제였을 수도 있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겼을 때도 변치 않았으니 천성이었다.


“선생님은 차 안 사요?”

“왜 힘들게 돈 벌어서 그런 데 돈을 써?”

“멋있잖아요.”

“이동이 목적이라면, 나는 지금 충분히 만족해. 지하철이든 버스든 늘 앉아서 가고. 앉아서 가는 동안 내 할 일 하고. 어디 나돌아 다니는 거 좋아하지도 않고.”

듣고 있던 여학생이 덧붙였다.

“그러니까 여친이 없지요.”


역시 내 학생이다. 정답이다. 연애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를 흥정한다. 사용가치가 각자의 주관에 따라 리비도로 왜곡된 교환가치를 형성해 상호 간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연애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내 교환가치를 측정하고 내가 원하는 교환가치를 설정해야 하지만, 사용가치에 매몰된 인간은 교환가치 문해력이 낮았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취한다.’는 사실이 일상에서조차 익숙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연애도 고자였다.


나는 그저 적당하고자 했다. 싫지 않은 것 중 적당한 것이 정당했다. 삶이 스트레스 없는 거대한 지루함으로 수렴해 갔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꺾은 이후부터 욕망을 소소하게 충족하는 취향이 필요해졌으나 풀리지 않았다. 치킨 먹는 스님 시절에 비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아직도 음식 값의 정당성을 국밥과 짬뽕에서 찾았다. 그런 내가 스타벅스의 문을 연 것은 개인사에 기록될 만한 이변이었다.


스타벅스는 선물 받은 쿠폰이 남긴 숙제였다. 갈 일이 드물어 밀리고 밀린 부담이 되었다. 사람을 만날 때 한 번씩 썼지만, 사람 만나는 일이 드물어 쿠폰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러나 그 ‘한 번씩’이 입맛을 바꿔 놓았다. 어느 날, 스타벅스보다는 못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저가 커피가 밋밋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불가피하게 마시는 4500원보다 비싼 아메리카노에 신맛이 가미되어 있으면 입에 안 맞았다. 가랑비 옷 젖듯 스타벅스에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불혹은 과연 흔들리지 않아, 볶은 콩가루 국물에 곧장 비용을 지불할 만큼 효율의 원칙은 공고했다. 여전히 기호품에 관대하지 못했다. 이제 겨우 식사 영역에서 내 취향의 영토를 구축해가는 중이어서 스타벅스에서 ‘된장’의 기운을 완전히 빼지 못했다.


불면 때문에 카페인을 끊어야 했지만, 졸음에 속수무책인 아침에는 카페인을 들이부어야 했다. 다이어트 중이므로 마트에서 1,000원짜리 달달한 커피를 마시기 싫었고, 밀린 숙제를 할 수 있게 된 명분은 스타벅스까지 몇 분 더 걸어야 하는 귀찮음을 무마했다. 그렇게 시작된 스타벅스 출근이었다. 아침 7시나 8시면 더 좋겠지만 우리동네 스타벅스는 9시에 개점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개점시간에 맞춰 스타벅스에 가는 중이다. 이 문장은 2022년 10월 18일 화요일 11시 정각에 쓰였다. ‘분했다’ 한 문장 써 넣고, 아메리카노에 치즈베이글을 먹으며 두 시간을 뒹굴뒹굴 된 셈이다.


KakaoTalk_20221027_095427117_03.jpg


대학가 스타벅스의 오전은 한산했다. 오전에 수업인 학생은 학교에 있었고, 오후에 수업인 학생은 학교에 오지 않아서 대부분의 카페가 학생들의 여집합으로 존재했다. 여백의 중심은 한가로웠다. 인근 자취생들이 나처럼 스터디카페처럼 이용했다. 테이블 하나, 창가 두 자리를 독차지 하고 자기 공부들을 했다. 넉넉한 공간감이 시간에 여유를 충전했다. 창밖을 보다가 타이핑하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타이핑했다.


처음에는 아메리카노뿐이었다. 테이크아웃해서 공원에서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던 일이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로 출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가 베이글+아메리카노 선물을 받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브런치 삼자 싶어서 내 돈으로 베이글을, 포켓몬스터빵보다 왜 두 배 이상 비싼지 납득되지 않는 부당함을, 결제해버렸다. 앱을 깔고 닉네임도 정했다. 스타벅스에게 나는 ‘주’님이다. 쿠폰을 모두 소진해도 아메리카노 정도는 취향으로 남을 기적을 확신한다.


취향은 나와 세계의 상관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카공족’이 내 세계에 입성했다. 그동안 카공족을 무시해 왔다. 집중력이 낮은 것을 공부 방법의 다양성으로 포장한다고 생각했다. 매장 음악의 소란 속에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태가 납득되지 않았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성적과 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성적을 평균 낸다면 전자가 우위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공부 흉내들이 인스나그램틱한 허영으로 현현될 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소음 수준의 데시벨 속에서 고개를 까딱대며 문장을 잇대고 있다. 내 집중력이 예전만 못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순간은 지금 내 집중력 수준의 최선이었다. 아마, 그들도 성능이 어찌되었든 자신에게 맞는 최선 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쇼핑몰에서 매달 두 장씩 받는 스타벅스 사이즈업 쿠폰에 사용가치가 생겼다. 언제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비로소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不), 비(非)의 것들이 내 몸에 부비부비 하며 세계가 확대되었다. 세계와 몸정이 든다. 아메리카노 맛이다.


KakaoTalk_20221027_095427117.jpg


단 12시~12시 30분까지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늘어났다. 창밖의 북적거림은 풍경도 지저분하고, 실내의 소란함은 이제 갓 카공족을 이해한 내가 받아들이기 부담스럽고, 손님은 많아지는데 가방까지 창가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미안했다. 그 시간에 나와 점심을 먹으면 하루치 혼자를 충전한 셈이어서 나머지 시간의 노동과 시간 낭비를 뿌듯하게 소화해 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취향이다’는 거짓이다. 여전히 커피는 카페인 충전제이고, 스타벅스 수준의 카페에서 파는 아메리카노의 교환가치는 부당하다. 나는 어디까지나 평일 오전 스타벅스의 시간을 소비할 뿐이다. 우리 동네 기준 짬뽕의 시간 당 공간 점유 비용은 20,000원이 넘지만, 스타벅스는 1,500원 수준이다. 내 노트북만 들고 가면 꽤 맛있는 커피가 무료인 PC방인 셈이다. 나는 쾌적한 PC방에 가는 것이므로 테이크아웃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가성비로 승인된 취향임이 증명되고 말았지만, 아무튼 일상에 새로운 것이 덧입혀졌다.


10월 27일 목요일에는 초코라떼를 마시려 했다. 그저 ‘목요일에는 코코아를’을 읽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타벅스에 초코라떼가 없어서 다시 아메리카노다. 상관없다. 2층 창가 귀퉁이에서 책을 읽다가 다음에 써야 할 것을 끄적대다가 점심은 뭘 먹을까…… 스타벅스 2층, 알바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한 익명의 여유로움에 반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