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혼술은 10년 전이었다. 학원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함께 하자는 전화를 받고 기뻐하는 내가 비참해서 공원 벤치에서 맥주 한 캔을 깠다. 서른이 넘어 간신히 그런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과 앞으로도 먹물 막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이 무참했다. 술을 마시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매체를 통해 슬픔의 아류들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술이 학습된 탓이었다. 그러나 역시, 술은 기분만 더럽혔다.
나는 비주류(非酒流)여서 비주류(非主流)여야 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위해서 주류(酒流)를 위장해야 했다. 원치 않는 술자리에서 주류(主流)의 들러리라도 서야 ‘우리’ 안에 들 수 있으므로 꿔 놓은 보릿자루를 버텼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 인간에게 술은 강간이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큰한 쾌락을 누리는 동안,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은 두통과 속 울렁거림에 몸을 내주며 술자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무력감의 역사를 모아서, 술은 정신력이라고 외치는 인간들에게 이제야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다. 왜 그 따위 불량식품을 인내하고 정신력을 낭비해야 했나?
많은 문필가들이 술을 찬양했다. 술은 낭만이자, 인간관계이자, 인생이었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선배들은 맥주컵이나 대접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며 ‘선배를 사랑하는 만큼’ 마시라고 했다. 그것이 당대의 낭만이자, 수직의 우리를 응집하는 관계의 방식이자,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생이었다. 소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켜면 주위에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시시껄렁한 일체감에서 배척당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나도 미숙했다.
술의 연대 효과는 인정한다. 아무리 재미없고 힘든 술자리라도 다음 날, 전날 밤의 흐물흐물한 기억과 당장에 지끈거리는 숙취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전우애가 생겼다. 전투도 자기 파괴적 행위이니 자기 몸을 혹사시키는 술자리에서 같은 정서의 매커니즘이 발동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어제의 술폭탄 사이에서 살아남은 전우와의 재회가 반갑지 않기 힘들었다.
나는 어제의 부상병이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총알을 향해 뛰어드는 총알받이어야 했다. 술을 마시면 정신은 전혀 흐려지지 않는데 머리만 아팠고, 급기야 토했다. 두 번, 세 번 토했다. 토하고 한 시간쯤 있으면 속이 편해졌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진이 빠졌다. 그쯤 되면 다른 사람들도 술에 최선을 다한 나를 인정해줬다. ‘우리’에서 밀려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술자리를 뜨거나 구석에 처박혀 잤다. 회식이 잡힐 때마다 과연 몇 번이나 토하게 될지 두려웠다. 나의 환영회와 송별회에 내가 괴로워야 하는 모순은 술 못 마시는 내 책임이었다.
내가 4인 이상 무리 속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면 그 자리에 있기 싫을 확률은 99%에 수렴한다. 혹시 몰라 1%를 뺐을 뿐, 술은 그 자체가 싫다. 맛없는 두통 유발제를 왜 마시나 모를 일이다. 술은 못 마셔도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그런 예능형 인간도 아니다. 1:1 대화에서 나는 청자가 되어 언제든지 발언권을 갖고 말의 핑퐁이 이뤄진다. 그러나 다수 속에서 나는 청중이 되어 다른 사람의 말을 배려하는 사이에 그 자리의 병풍으로 전락한다.
가장 좋은 술자리는 친구 한둘과의 술자리다. 그 규모 속에서 나는 청자였고, 녀석들과 자리할 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았다. 콜라를 들어도 당당했다. 간혹 맥주 한 캔 정도는 마셨다. 맥주 첫모금의 “캬!”는 내가 유일하게 공감하는 술맛이다. 캔에 남은 맥주는 맥주를 딴 책임감에 비워낸다. 자발적으로 딴 만큼 그럭저럭 마실 만하다. 그게 내가 불쾌해지지 않는 주량이다.
내가 술을 잘 마셨다면 인생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크게는, 부모님 우려대로 학생 운동에 깊숙이 관여했을 것이다. 스무 살, 사회에 잔뜩 날이 서 있던 때였다. 가입한 동아리 특성상 단대 학생회와 친밀하게 지냈다. 학생회 선배들은 내 시야를 넓혀줬다. 깃대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도, 점거한 행정실에서 신문지 깔고 자는 것도, 불온 유인물(?)을 주택가에 붙이는 것도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행사마다 매달린 뒷풀이에는 술이 끼었다. 술로 연대하는 으쌰으쌰 감성과는 도무지 타협되지 않았다.
작게는 척박한 연애사에 소소한 획이 그어질지도 몰랐다. 그다지 왕래 없던 후배 하나가 자기 자취방에서 실내 자전거를 조립해 달라하고, 밤에 월드컵 경기를 같이 보자고 했다. 이 멍청하고 얼빠진 나란 놈은 그것과 기타 등등의 일들이 그린라이트라는 걸 7-8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자정이 넘어 단둘이 술을 마시며 그럭저럭 화기애매한 후에도 나는 ‘다음에 또 한잔’ 같은 여운도 남기지 않았다. 나는 후배에게 철벽을 친 셈이었다. 후배가 내게 관심이 있었다면 차라리 도서관에 같이 다니며 자판기 커피를 쌓아 나가야 했다. 몇 년 후 소개팅에서도 상대는 보고 싶은 영화 이야기로 애프터의 여지를 남겼지만, 그녀가 술을 좋아해서 애프터는 없었다. 후배는 그녀 동기 중에 가장 예뻤고, 소개팅 상대는 모델이었다. 주당 수지가 와서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라고 해봐라, 내가 마시나.
이런 내가 혼술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술의 본질은 사람이다.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사람을 이어주는 효율적 수단일 뿐, 목적적 가치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술을 위해 술을 마시다니, 보는 나와 보이는 나의 경계를 허묾으로써 외로움을 상쇄하는 정신적 자위라도 하고 싶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재떨이 국물 같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과 같은 변태 취향일 것 같기도 하고, 이성을 억압해야 할 만큼 똑바로 생각하는 게 버거운가 싶기도 하다. 뭐가 되었든 내 입장에서 혼술은 인류가 쌓아 올린 이성을 부정하는 퇴행이자 자해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통증이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겪는 기분 좋은 망실이 은근히 부러웠다. 마지막 혼술의 밤에 예상한 만큼의 인간이 되었고, 그런 인간의 삶은 예상보다 지겨웠다. 앞으로도 같은 인생이 반복될 텐데, 노화를 본격적으로 체험해야 하니 인생은 더 시시해질 것이 자명했다. 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살고 싶지도 않았다. 외로움에 중독된 탓은 아니었다. 본래 외로움을 타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혼자가 오래되다 보니 그런 감정에는 무뎠다. 다만 반복되는 지겨움과 시시함에 지쳤다. 삶과 죽음 사이의 휴식처, 그게 ‘취한다’가 아닐까 싶었다. 삶을 쉬고 싶었다.
내 인생은 실패 중이었다. 간직할 만한 기억이랄 게 없었다. 학생 운동과 풍부한 연애사는 그 결과가 어찌 되었을망정 술을 마시지 않고 살았던 실제 내 인생보다 더 서사적이었을 것이다. 술을 마셔야만 했던 20대와 술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30대를 비교해 보면 20대가 훨씬 다채로웠다. 30대 10년을 통틀어 술을 마신 날은 스무 번이 되지 않았다. 그 스무 번도 안 되는 에피소드들에 연관된 사람들은 내 기억의 조각을 차지했지만 술이 없는 시간의 기억은 숱이 적었다. 그래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들은 사람의 기회를 누리며 인생을 살찌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술을 잘 마셨다면 나는 치킨 중독자가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라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잔 할까?’하며 헤실대던 대학 친구 김이 떠올랐다. 김은 밤이면 종종 기숙사 앞까지 찾아왔다. 우리 단대 건물은 기숙사와 수직선상 극에 위치했고, 김의 기숙사는 다시 그만큼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김은 늦은 밤에 찾아와 한잔을 청했다. 우리는 편의점 앞이나 캠퍼스 아무 계단에 앉아 술을 나눴다. 말술의 김은 맥주 큰 캔을 마셨고, 나는 맥주 작은 캔을 마시거나 콜라를 마셨다. 30분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나는 마흔을 앞두고 회의감에 절여져 있었다. 인생 후반전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먹기 달렸다느니, 일상의 소소한 행복부터 찾으라니 하는 해맑은 오지랖에 오줌이라도 싸갈기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창을 열고 한숨만 짓고 있다가 한숨을 짓다 못해 담배라도 피우는 건가 싶을 때, 별안간 달빛과 김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창밖에 살이 차오르는 하현이 15년여 전 자취방으로 돌아가던 김의 뒷모습을 비추는 듯했다. 고작 30여 분의 한잔 때문에 왕복 30여 분을 걸은 김의 수고가 찡하게 맑았다. 이제는 1년에 한두 번 볼 뿐인 김의 자리에 든 달빛, 그 시절 김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은 기분, 그것이 혼술인가 싶었다.
나는 여전히 혼술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지나쳐서 완료될 수 없는 기다림 근처에, 나를 위해 마시는 한잔이 있음을 어렴풋이 안다. 그것은 퇴행이 아니라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잊지 않는 허약한 안간힘이다. 2년째 혼술의 대체제를 찾지 못했다. 취하지 못해 달빛을 담지 못하는 내 문장은 내 인생만큼 지겹고 시시하다. 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