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매미를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by 하루오

너는 짝짓기에 성공했을까. 바닥에 떨어진 말매미를 보니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존재감 없이 방구석에서 조용히 지낼 때, 말매미는 천적을 부르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한 방울까지 쥐어짰을 것이다. 말매미를 걷어차려다가 달라붙은 개미떼를 보고 그냥 지나쳤다. 너는 죽어서까지 쓸모 있었다.


말매미가 땅 속에서 유충으로 보내는 기간은 4~7년, 출처마다 달랐다. 땅 밖에서 보내는 기간은 어떤 백과사전에서는 2주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백과사전에서는 언급이 없어 신뢰할 수 없었다. 다만 매미의 모습으로 존재한 시간이 매미 생에 아주 짧은 기간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생의 1%도 안 되는 모습이 본질로 규정되는 모순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여름 땡볕과 한판 붙으며 생의 99%가 넘는 시간 동안 묵힌 침묵을 한 풀이 하듯 토하는 우렁찬 낭만, 말매미는 으뜸이었다. - 나는 지금 땅 속일까, 땅 밖일까.


어렸을 때는 말매미를 왕매미라 불렀다. 다른 매미에 비해 덩치도, 소리도 압도적인 매미를 ‘왕’으로 수식하는 것은 직관적이었다. 백과사전에서 왕매미의 본명이 말매미인 것을 알고는 실망했다. 왕이 주는 어휘의 위압감을 어른들에게 빼앗긴 기분이었다. ‘말-’이 ‘큰’을 의미하는 접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말매미에게 관심을 잃은 다음이었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왕’만 못했다.


말매미는 왕만큼 존귀했다. 여름 방학이면 매미를 잡으러 돌아 다녔지만, 말매미는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고, 잠자리채 범위 밖에서 울어서 내가 직접 잡은 적은 없었다. 나무 탈 줄 아는 친구가 말매미를 잡은 날은 동네 초등학생의 경사였다. 연두색 플라스틱 채집통을 중심으로 작은 몸들이 동심원으로 모였다. 누가 잡든 ‘우리’의 영물이었다. 보통 매미들은 채집통을 흔들어 뒤죽박죽된 비명을 한 번 듣고 놓아줬지만, 말매미는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놓아줬다.


그 때 그 아이가 내 아들이어도 어색하지 않을 지금, 말매미는 호랑말코 같은 것이 되었다. 매미가 되기 위해 땅속에 사는 세월의 깜깜함은 이제 내 알 바 아니다.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럽다. 털매미, 애매미, 참매미는 소리에 리듬감이라도 있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여름 소리의 협업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말매미 소리는 톱니 돌아가는 공업이었다. 공업은 도시 속에서 자동차와 어울리며 우세종으로 살아남았다. 이제는 잡아도 별 감흥 없던 매미들이 귀해져 가고 있었다.


방에서 창을 열면 길 건너가 숲이었다. 유독 말매미가 많았다. 멀리 있어도 굉음인 소리가 5-6미터 앞에서 부부젤라 떼로 울면 내 방은 여름의 사자후(獅子吼) 안쪽이었다. 선풍기로 충분한 초여름에도 말매미 때문에 창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야 했다. 엄마도 ‘귀청 나가겠다.’며 깜작 놀라며 보증하셨으니 내가 예민한 게 아니다. 열대야 중에는 자정에도 울어댔다. 내가 이 방구석에 머무는 유일한 이유, 조용함을 무너뜨리는 자연재해, 말매미였다. 단언컨대 모기나 바퀴벌레보다 더 싫었다. 우리 동네 참새, 종다리, 직박구리, 까치, 까마귀들은 더 힘내야 했다.


여름이면 외출할 때 가로지르는 공원 길바닥에 치우지 않은 개똥처럼 말매미가 발에 차였다. 그야말로 우상의 몰락이었다. 통쾌하고, 허탈했다. 저걸 주워 30년 전의 내게 줬다면, 나는 레어템 획득에 설레어 잠을 설쳤을 것이다. 그러나 말매미 때문에 잠을 설친 날은 힘껏 걷어차기도 했다. 발끝에 감기는 가벼움은 황당했지만, 무시했다. 가벼움을 인정하면 내 무거움이 더 비참해질 것 같았다.


끝내 사실은 사실이었다. 말매미가 비정상적으로 가볍다고 인정한 다음부터는 함부로 걷어찰 수 없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때문이었다. 말매미는 그야말로 자신에게 필사적으로 뜨거웠던 위대한 개츠비였다. 사체의 가벼움은 현생에 남은 미련의 무게 같았다. 남길 미련 없는 생을 살고 간 마침표는 깔끔했다.


말매미 사체는 두 번째 허물 같기도 했다. 땅에서 나와 한 번, 영혼이 되기 위해 또 한 번 벗어 놓은 것이다. 소리에도 무게가 있다면, 매미가 살아생전 생산한 소리의 합은 매미의 체중보다 육중할 듯했다. 말매미는 사는 동안 99%가 넘는 침묵을 제 몸 밖으로 빼내는 최후의 탈피를 수행한 것이다. 기어이 침묵으로 돌아간 말매미의 영광을 나 같은 게 알 리 없다.


나는 밥은 먹고 다녔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생각 없이 방구석에서 안온하다. 탈피하지 않고 땅 속에서 100년 묵은 굼벵이는 매미일까? 언젠가 내 고독사가 남길 시신은 질척댈 것이다. 그 시신에게 이름은 거창해 보인다.


오늘도 나는 얌전히 살이 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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