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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Sep 20. 2024

의지 펌핑기, 스마트 워치

갤럭시핏3를 샀다. - 이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내 학생들뿐이다. 내 소비사에 없던 문법이다. 내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샤오미다.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튼튼하게 잘 구동되어 다음 스마트폰과 태블릿도 중국산일 가능성이 높다. 보급형 수준의 IT 기기는 선풍기처럼 보편 기술이 되어 브랜드 가치가 불필요했다. 개인정보는 이미 공공재이므로 알 바 아니라 여겼다. 단, 생체 정보가 중국에 넘어가는 데는 저항감이 있어 이번에는 삼성이었다. 삼성이라고 안전하겠느냐만은 미워도 시진핑보다는 재용핑이다.


일주일 사용하고 보니, 초보 운동가, 혹은 다이어터에게 꼭 권한다. 이 제품이 아니라도 거리, 속력, 걸음수, 심박 등으로 내 활동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으면 뭐든지 좋다. 숫자는 내 상태와 앞으로 의무를 정확하게 제시한다. 숫자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확실한 자극제가 되어줄 것이다. 십진수 세계에서 18.7은 1.3을 참을 수 없다. 측정된 숫자 그 자체가 몇 초, 몇 걸음 더, 더, 더더, 더더더, 다음을 요청하는 PT선생이다. 숫자는 성적과 연봉으로 경쟁해온 한국인이에게 실패할 수 없는 자기 자극 방식인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 한다. 힘들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김연아/박지성은 발이 되도록 달리진 않는다. 인간의 노력은 비동물적이다. 최선, 집념, 극한의 이름으로 된 속력은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성을 무시한다. 상시적 고속주행에 길들여진 인간중심주의는 보편 인간을 부정하므로 내 저속주행이야말로 인간적이라고 변명한다. 어차피 이제는 최선을 다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과민성 대장, 과민성 방광, 불면, 고혈압, 스트레스와 직결되는 신체 반응을 모두 갖춰버렸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습성은 자기보호 본능이다.


성실하되 최선을 다하진 않았다. 2022년 다이어트도 한 달에 2kg 안팎을 빼는 느린 전략이었다. 열 달 간 18kg 감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이어트 해야겠다 생각하고 10주 넘도록 지연된 죄책감 탓일까, 조급했다. 한 달에 5kg은 전에 없던 충동이었다. 명절이 끼어 엄마가 튀김, 과일, 식혜를 갖고 오는 바람에 계획이 박살났지만, 운동량은 확실히 늘었다. 예상대로, 나는 숫자에 과민했다. 나도 1등, 우승, 승리, 압살을 추종하던 때가 있었다. 갤럭시핏3는 나를 쉬지 않게 만들었다.


다이어트 하기로 마음먹어진 후 꾸준히 하는 운동은 주2회 도보 퇴근이다. 11.5km를 걷는 데 2시간 20분~2시간 30분쯤 걸렸다. 운동 시간 따로 내는 것은 아깝고, 이 운동량이면 확실하게 0.1kg이 감량되었고, 걷는 것은 좋아해서 내게 최적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숫자가 더해지니 과격해졌다.


갤럭시핏3 착용 후 웅동 모드 첫 1km에 진동이 왔다. 10분 8초. 2km 구간에서는 20분 18초. 이쯤 되니 슬슬 10분 단위 뒤에 달린 혹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속력을 조금 올렸고, 오르막 구간에서는 뛰기도 했다. 횡단보도는 파란불에 맞추기 위해 멀리서부터 속도를 조절했다. 보통은 한 시간쯤 후에 편의점에 들러 이온음료를 마셨지만만, 기록을 망칠 수 없어 쉬지 않았다. 2km 정도를 남겨 두고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를 맞다가 가방에 든 태블릿과 스마트폰 때문에 우산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속도 6km를 끊어냈다. 걸은 시간은 1시간 55분, 대략 30분쯤 앞 당긴 것이었다. 이게 되네? 이 맛에 숫자와 놀았다.


10km 마라톤 뛰는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기록이겠지만, 운동 부족 중년 아저씨한테는 희망의 숫자였다. 내가 아직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 ‘할 수 있다’는 꽤 오랜만에 받는 칭찬이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가방이 조금 더 가벼웠다면, 신발이 미끄럽지 않았다면, 날이 조금 더 시원해진다면, 시간 단축 여지가 남아 있어 다음이 기대되었다. 다음 도보퇴근 때는 중간에 점심을 먹고, 도서관도 들리느라 기록과 무관해 힘을 주진 않았다. 이날 시속 5.5km도 평소 시속 4.96km에 비하면 빠른 편이었다. 숫자의 힘이다.


일상이 객관화 되었다. 지하철로 출퇴근만 해도 하루 4,500보 이상 걸었다. 지하철에서도 본래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하지 않아 지하철은 의외로 도보 확보에 용이했다. 도서관에 갈 때도 그 정도는 걸었다. 식사 때문에 움직이면 7,000보도 금방이었다. 숫자들은 000으로 맞춰야 마음이 편했기에 괜히 길을 돌아 기어이 10,000보를 채우기도 했다. 퇴근길에 120칼로리 안팎의 아이스크림 먹던 습관이 180칼로리 안팎을 걷는 습관으로 승화된 것이다.


실내 자전거 탈 때도 착용했다. 연동된 앱에 내 체중을 입력하면, 소모 칼로리가 자전거보다 정확하게 표시되었다. 일주일 누적량도 기록되었다. 7700칼로리가 1kg이므로 매주 3650칼로리 이상은 운동으로 태우려는 계산이 섰다. 하루 한 시간 실내 자전거를 세게 밟아주면 된다. 추석 당일, 3시간 17분 1,389칼로리를 태웠다. 족저근막염 기미 때문에 발을 사렸다. (글쓰기 지치고, 일하기 귀찮은 만큼 몸 쓰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최근 도보 퇴근은 시속 6.7km를 기록했다. 걷다 보니, 제자리에서 페달만 굴리다 보니, 달리고 싶어졌다. 간혹 저수지를 돌다가 더 간혹 달릴 때가 있었다. 길게 달려봐야 400미터였다. 꾸준히 달리던 게 아니라 페이스 조절을 못했다. 발 컨디션만 좋아지면, 느리더라도 저수지 한 바퀴 달려 보고 싶다. 숫자가 있는 한, 어쩌면 어쩌면 20여 년 만에 1km 이상을 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소염제 먹고,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숫자는 가장 확실한 칭찬이다. 비만이 뛴다.


다이어트 4주차 : 전주 대비 -0.6kg (누적 -4.1kg)

  - 엄마가 명절 음식 투하하고 갔음에도 선방했음

  - 뛰어 보려고 조깅벨트까지 주문해 뒀는데 왜 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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