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 노총각, 늙은 자취생. 무엇이 되었든 실패한 인생이다. 나는 꿈을 이루지도 못했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남은 생이 맛없는 끼니를 꾸역꾸역 먹어대는 숙제로 잇대지다가 고독사로 마무리될 것을 안다. 무연고 시신이 어찌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내가 무연고 시신으로 변질되어 가는 시간을 생(生)이랍시고 견디는 일은 지겹다. 자살도 열정이 있을 때나 한다. 매일 밤, 내일 아침 눈 뜨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미지근하다.
대수롭지 않은 우울이다. 심리 검사를 하면 정상 범주에 들지 않겠지만, 정상인을 연기할 마음의 힘은 남아 있다. 다만 20여 년째 연말마다 정기적으로 반복되니 지친다. 매년 대부분의 공모전에서 떨어졌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신춘문예 낙방을 무소식으로 들음으로써 그 한 해도 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었음을 인증 받았다. 세상은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근하신년으로 달려가는데, 나는 매년 제자리에서 병신년이다.
무능하기도 넌더리난다. 나는 꽤 열심히 무능했다. 자기혐오와 우울이 나를 갉아먹게 내버려 두는 것은 나를 망친 나를 향한 유일한 응징이다. 통쾌해지는 자학을 말리는 선에서 그럭저럭 나를 지킨다. 이 글도 우울의 배설인지 나를 향한 칼끝인지 모르겠다. 우울이 이 정도로 난폭해진 것은 진달래 분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진달래 분식은 인근 대학가 상권에 걸쳐진 우리 동네 분식집이자 그냥 분식집이다. 분식집보다 ‘그냥’이 잘 어울리는 식당은 없다. 대수롭지 않고, 보편적이고, 저렴해서 부담도 없다. 중국집도 이 범주에서는 외곽을 기웃거릴 뿐이다. 짜장, 짬뽕은 집에서 따라 하기 힘든 외식이지만 라면, 잔치국수, 김치 볶음밥, 만둣국 등은 가정식에 가까웠다. 외식과 가정식 사이에 자리 잡은 가장 만만한 한 끼, 분식이었다.
분식의 미덕은 만만함에 있다. 한가로울 때 주인이 동네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있거나 홀 구석에 주인 딸내미가 숙제 중이어도 이물감이 없다. 주인부터 영업장 내에서 공사를 구분하지 않으므로 나도 굳이 공적인 외양을 갖추지 않는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삼선 슬리퍼를 끌고 가서 마음껏 방심한 채로 식사를 해도 괜찮다. 일요일 점심 무렵에 일어나 동네 분식집에 가서 주인 내외가 보고 있던 전국 노래자랑을 보며 ‘저게 아직도 하고 있네?’하고 객지에서 고향 친구를 만나 익숙해서 반갑지 않은 반가움과 악수하는 것도 잠깐, 늘어진 문장처럼 멍하게 tv를 보면서 떡만둣국으로 느긋하게 해장해도 상관없다.
진달래 분식은 상호명과 달리 화사하지 않았다. 간판부터 ‘진다ㄹㅣ’였고, 양각으로 붙은 활자마다 흘러내린 녹물을 매달고 있었고, 넓은 홀에는 북적북적했을 옛 영광만 가득 차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고, 손 때로 끈끈해진 수저통에는 인삼무늬가 새겨진 쇠 수저가 가지런했고, 화장실로 가는 길목에 음료나 식품 상자가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고, 카운터 옆 테이블은 주인의 약봉지와 쇼핑몰 카탈로그로 어수선했다. 전반적으로 물이 빠진 색감에 먼지로 간을 한 풍경으로 기억했다. 벽면에 걸린 대형 액자 속 비슬산 진달래의 진분홍빛만 명징해 오히려 어색했다.
그 어색함을 무마하는 것은 노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주인 내외였다. 20-30년 전이라고 해도 상호명 ‘진달래’는 투박했다. 동네 이름, 아니면 자식이름이나 엄마, 이모가 들어가는 것이 전통적 작법이었고, 영어를 쓰는 것이 유행인 시절도 있었다. 진달래를 간판으로 거는 투박하고 우직한 취향대로 주인 내외는 친절을 과장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동생 농장에서 따온 거라며 자두 두 알을 챙겨주는 식이었다. 솔직한 세월이 빚은 친절에서는 자두향이 났다. 주인 내외의 잔향과 진달래 빛깔은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갔다. 주로 쫄면이나 잔치국수를 먹었다.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내 손맛은 어처구니없어서 별 수 없었다. 쫄면은 라면처럼 잘 포장되어 판매되었지만 진달래 분식의 압도적인 가성비에 무릎 꿇어야만 했다. 진달래 분식은 손님의 티끌만 한 허기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사명의 수호자처럼 막 퍼줬다. 음식을 시키며 내가 먼저 좀 줄여 달라고 요청할 지경이었다. 면뿐만 아니라 쫄면에는 야채를 아끼지 않았고, 잔치국수에는 계란 고명이 넉넉했다. 맛집으로 꼽힐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 쫄면이나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 할 때 이곳에 데려갔을 때 욕먹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연말 우울기에는 만둣국이나 김치볶음밥을 주로 먹었다. 둘 다 특별한 음식도 아니고, 내게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진달래 분식만의 비법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구나의 기억 속에 있을 아무 분식점에서 아무렇게나 먹는 그냥 만둣국과 그냥 김치볶음밥이었다. 나는 그냥을 꼭꼭 씹어 먹었고, 그냥은 그냥저냥 맛있었고, 나는 그냥에 값을 치렀다. 내게는 그 ‘그냥’이 필요했다. 평범해도 실패가 아니라는 위로 말이다. 물론, 진달래 분식이 사라지고 나서야 알았다.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위로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결과를 누린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한 농락이다. 이제는 고등학생, 아무리 늦어도 취업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20대 중후반도 자신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안다. 초등학교 때 배운 자기 성찰의 실존 형태는 고작 그랬다. 대기업/공기업 일자리 비중은 전체 일자리의 10%도 안 된다. 물론, 전문직, 자기 사업하는 사람들은 잘 된 범주에 속하겠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잘 된 것은 20%가 되지 않을 듯하다. 대다수가 잘 되지 못한 시대, 나 혼자 사는 tv나 유튜브에서 잘 된 사람을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듯 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잘 되지 않아도 괜찮아.’다.
시장은 평범한 것들을 도태시켜 왔다. 전통적 의미의 분식집은 사실상 씨가 말랐다. 특출 나게 맛있지 않는 이상 인테리어가 예쁘지 않으면 선택 받지 못하는데, 분식은 애초에 특출 나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분식집은 김밥천국에게 뼈를 내주고, 떡볶이 프렌차이즈에 살을 내주었다. 김치필라프가 되지 못한 김치볶음밥은 멸종 위기다. 김치볶음밥도 충분히 맛있는데, 왜. 이유를 찾다보면 동병상련으로 침몰하고 만다.
내 무능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연말의 우울은 권선징악이자 인과응보였다. 그러나 진달래 분식에서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으면 내가 왜 꼭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따져 볼 오기가 생겼다. 최선은 자본주의가 노동 효율을 올리기 위해 발명한 교리다. 최선을 향한 질주 속에서 삶은 저녁이 없는 최악을 닮아 갔다. 사실 그냥 적당히도 충분하다. 나는 내가 먹는 김치볶음밥의 값어치 정도는 하고 있으니 내가 그리 무능한 것도 아니다. 남은 생의 끼니를 김치볶음밥 수준의 분식으로 채워야 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도 같다. 그런데 진달래 분식이 없다.
연말을 버티고 나면, 나는 또 최선 비슷한 생활양식을 반복하며 그 해의 무능을 준비해 나갈 것이다. 10년 전의 내가 그랬듯, 10년 후의 나도 그럴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괜찮지 않다. 그래서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다. 계란 반숙이 올라간. 깨 살짝 뿌려 주면 고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