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마지막으로 한 일을 알고 있다. 신이 의도한 인간은 생존으로 닫힌 존재가 아니라 삶으로 열린 존재다. 그래서 인간의 형상을 완성한 후, 숨겨둔 갈색 병을 꺼내 형상의 정수리에 성수 몇 방울 뿌렸다. 성수에서는 고소한 향이 났다. 참기름이었다. 이왕 무에서 유가 될 바에는 없어도 그만인 것보다 있으면 좋은 것들을 아락바락 움켜쥐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참기름은 한식의 신묘한 마침표다. 다른 나라에서 잘 먹지도 않는 풀떼기들이 참기름을 빌어 나물이 되었다. 기근이 만든 서글픈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옛날 옛적 기근은 만국 공통이므로 민족의 창의적 발명으로 봐야겠다. 고작 몇 방울의 힘으로 데친 잡초 한 접시가 식욕을 유발한다.
단, 성수답게 워낙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이라 적당량을 써야 한다. 일정량을 넘기면 쓰고 느끼해진다.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한 방울, 한 푼이 아쉬운 자취생에게는 미덕이다.
그럼에도 자취생 중에서 참기름을 구매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자취생에게는 내 입에 들어갈 것이 ‘굳이’ 고소하지 않아도 괜찮아야 하는 소탈함이야말로 최고선이다.
자취를 시작할 때 엄마는 당신 기준에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챙겨 주셨다. 500g짜리 고추장 통을 채운 소금, 900ml짜리 간장은 14년째 다 못 쓰고 있다. 소금은 칫솔 소독할 때 썼고, 간장은 간장계란밥용으로 가끔 먹었다. 참기름 160ml짜리를 다 쓰는데 6-7년쯤 걸렸었다. 참기름을 간장계란밥에 꼬박꼬박 넣는 것은 아니었다.
자취생의 식단은 한식이라기보다는 한식의 흔적으로 조합된 간편식이기 때문에 참기름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참치의 올리브기름, 구운 스팸의 조미된 돼지기름, 라면의 화학적 고추기름이 참기름을 대신했다. 1년에 두세 번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끓인다 한들 참기름을 쓸 일은 없었다.
참기름과의 인연은 160ml로 끝이었다. 간장계란밥이 인생에서 사라져도 인생은 멀쩡했고, 멀쩡하므로 아쉬울 게 없었다. 엄마가 새로 짠 참기름을 보내주겠다고 했을 때도 거절했다. 없으면 안 쓸 테고, 있다고 해도 몇 번 쓰지도 않을 것이 간장처럼 내 공간을 차지하는 비효율이 껄끄러웠다.
요즘은 참기름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꼬박꼬박 참기름을 넣어 먹고 있다. 친구 김 때문이었다. 김은 뜬금없이 내게 1인 7만 원짜리 한정식을 사줬다. 대체 7만 원짜리 밥상은 어떻게 생겨먹었나 궁금하다는 이유였고, 나는 왜 그런 게 궁금한지 궁금했다.
지난 1월에 김과 함께 전주에 갔었다. 대구에서 전주를 오가며 주말 부부로 생활하던 김이 이직으로 전주 숙소를 정리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한정식 집에 가기 전에 우리는 10억짜리 로또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김은 수성구에 아파트를 사려 했다가 내가 10억으로는 어림없다고 하니 짤막하게 욕하고는 그냥 변두리에 30평대 아파트를 사고 차를 바꾸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10억에 당첨되어도 7만 원짜리 밥 먹을 일을 없을 거라고 했다.
음식은 적당량씩 코스로 나왔다. 우리 방에 CCTV라도 달렸는지 새 음식을 들이는 타이밍이 정확했다. 모든 음식이 소담하고 정갈했다. 직원분의 서비스도 담백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이 밥상이 우리 동네 맛집 짬뽕 10그릇의 값어치와 비교해댔지만, 나의 산수는 내가 소중해지는 기분에 시나브로 희미해졌다. 코스 요리의 본질은 매 음식마다 대접 받는 느낌을 껴입으며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가 푸짐해지는 자기 확신을 음미하는 것에 있는 듯했다. 평소 허영의 극치로 폄하하던 플레이팅조차 음식의 일부라는 것을 자아의 포만감으로 납득해버렸다. 그날 내가 먹은 것은 음식이 아니라 ‘나의 소중함’이었다.
당시 내 끼니는 귀찮음의 끝에 놓인 상태였다. 네 달 간 이런저런 잔병으로 병원 투어하면서부터는 인스턴트식품을 줄이고 채소 섭취량을 늘렸다. 단, 채소는 손이 많이 가서 골치였다. 대체로 씻어 포장된 채소를 샀다. 밥할 때 쌀과 함께 무, 양배추, 콩나물, 느타리버섯, 시래기, 시금치를 그때그때 조합해 넣었다. 취사 완료 후 밥보다 채소 부피가 더 많을 정도여서 여물에 밥알이 섞인 모양새였다. 여기에 참치나 계란 프라이고 넣어 약간의 간을 쳐서 비벼 먹으면 한 끼 500칼로리 안팎의 건강식이 되었다.
영양분의 산수가 맛있을 리 없었다. 물 조절도 잘 못 하거니와 무와 콩나물에서 물이 빠지는 타이밍과 쌀이 익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 밥은 고슬고슬한데 물기는 많은 슈뢰딩거의 밥이 되기 일쑤였다. 맛없지만 건강한 식사였고, 건강은 내 목적에 부합했으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이 사준 한정식을 먹으면서 참기름을 떠올려버렸다. 내 밥은 엄마의 정성은커녕, 손님을 위한 금전적 친절도 없는 사료였다.
전주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내 인생을 자취 속에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취는 이래도 된다.’, ‘내 연봉에 이 정도면 적당하다’, ‘탐욕을 지양해야 한다’들이 ‘굳이’로 종합되어 내 인생을 삶의 최소한으로 축소시켜 놓았다. 밥벌이를 제외한 모든 영역, 의식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최솟값으로 정리한 인생은 삶이라기보다는 생존에 가까웠다.
시간을 생존에서 삶으로 구원하는 참맛은 ‘굳이 필요 없는 것들’에 있었다. 기능성과 무관한 브랜드, 반짝이는 것 외에 쓸모없는 보석, 어차피 전화/유튜브/메신저 기능을 할 뿐인데도 바꿔야 하는 신상 스마트폰, 연봉이 늘었다고 사고 싶어지는 더 비싼 승용차들처럼 자본주의의 노예적 속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최소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나는 부처나 예수도 아닌데 금욕을 미덕인양 밥상에서부터 삶을 학대해왔을까. 그냥 맛있는 것 좀 먹는 게 그다지도 어려웠을까.
지난 내 인생으로부터 고소당해도 할 말 없는 밥상으로 잇대진 일상을 반복해 왔다. 이제부터라도 고소해져야겠다. 밥은 일상의 최빈값이고 맛있는 것은 즉각적인 행복이다. 어설픈 금욕주의와 확고한 귀차니즘이 복합된 슈뢰딩거의 비빔밥은 체중감량을 완료할 때까지 계속되겠지만 이제 참기름이라도 넣어 먹고 있다. 참기름, 굳이 필요 없기에 내 인생에 들이는 신의 최소한이다. 나는 나의 가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