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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Jan 27. 2024

어른이 되었다는 감각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지나는 시간의 풍경을 아름답게


어젯밤,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던 황현산 선생의 말글을 보았습니다. 준비만 하다가 늙어버렸다는 말이 문득 오래된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게는 형이 있고, 여동생이 있습니다. 형과는 두 살, 제 동생과는 열한 살 터울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요. 인천 예전 우리 집 앞에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학교입니다. 기억나는 것은 제 동생 희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입니다. 벌써 10년은 된 기억이에요. 늘 집앞에 있던 우리 학교를 마지막으로 들어가본 것은 그로부터 또 10년 전. 그러니까 희지의 졸업식 날은 졸업 이후로 10년만에 처음 우리 학교로 갔던 날 같기도 해요. (몇 번 찾아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기억에는 없는)



내가 나온 학교는 내게는 작았습니다. 복도도, 책상도, 모든것이 그랬습니다. 학교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는 그때보다 20cm 가까이 커졌고, 어른의 기대를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단 한 번도.



마침 찾아간 동생의 교실은 제가 지내던 6학년 1반 교실이었어요. 학교 맨 윗층 맨 끝에 있던 그 교실. 신00 군과 싸웠었던 복도 앞과, 윤00 군과 대화하고, 김00 양이 내 옆자리에 앉았던 그곳 말이에요. 그 교실 맨뒤에 서서 졸업식의 말들을 들었어요. 티비에서는 방송이 나오고 교가를 부르고(또 나는 그 교가를 부를 수 있고) 교장 선생님의 말씀과 마지막으로는 여러분의 미래를 응원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 끝으로 귀찮게 찾아오지 말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


그런데 이상하게요. 눈물이 나는 거예요. 참을 수 없을 만큼 정말 많이요. 그 눈물의 의미는 그때도, 아직도 잘 모릅니다. 상실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 지나는 시간에 대한 후회였는지, 그리움이었는지. 다만 황현산 선생님의 말처럼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10년전에도 나는 가져본 적이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것만은 알 것 같아요.



또다시 10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사랑하는 문돌이가 떠났고, 제가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우리 할머니의 생도 오래 남으시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그래도 7년간 창업을 함께한 동지들을 이따금씩 보고, 바다를 보고, 오늘도 내가 자라온 동네를 산책을 할 수 있어서. 지나는 시간의 풍경은 그런대로 좋았던 것 같아요.


아무튼 나는, 우리 나이 서른다섯인데, 여전히 어른이 되었다는 감각을 가져본 적이 없고, 여전히 꿈을 꾼다는 것이 참 이상해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 또 이상합니다.


하지만, 어른다워지려 준비하는

살아볼만한 생, 살아볼만한 오늘. 그런 주말입니다.

 

나와 여러분

지나는 시간의 풍경 속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가 가득하길



p.s

선생은 (어른이 될) 준비만 하다가 늙어버렸다고 썼지만,

선생의 글은 늘 어른이었다고 말하고 쓰렵니다.

선생의 글을 더는 보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https://brunch.co.kr/@moonlover/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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