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음, 위대함의 시작.

<엄마의 유산 2> 프로젝트

by 카르멘
인생의 절반은 귀찮음이고, 다른 절반은 귀찮음을 해결하는 것이다(주 1)


안녕, 아들.

엄마가 불편한 진실을 말해줄까?


그러고 보니,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내게 편한 일은 아니란다.

내 안의 진실을 꺼내야 하는 일이거든. 그리고 때때로 진실은 마주하기 불편한 것들이지.

그래서 엄마가 꺼내는 불편한 진실은, 엄마가 너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한 말에 관한 거야.

혹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입속에 담고 있던 말. 그게 뭔지 아니?

"귀찮아"


충격적이니? 쓰고 보니 꼭 나쁜 엄마가 된 거 같네.

그런데 엄마를 너무 미워하진 말아 줘.

귀찮음은 엄마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그림자거든.

내가 엄마가 됐든, 안 됐든 간에 늘 따라다녔던 그림자지. 다만 엄마라는 역할에 따른 또 다른 귀찮음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야.


너는 새벽에 뜨는 샛별 같은 아이였어.

지금에야 너의 샛별 같은 기상능력을 '무엇이든 해낼 큰 기질'로 생각하지만

네가 새벽 4시, 5시에 일어났을 때 엄마는 '일어나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이었다.

일어나서 너를 안고 침대에서 나가, 기저귀를 갈아주고, 이유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것들이 기상과 동시에 떠올랐거든.


그런데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을 때 무엇이 귀찮았는지 아니?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거는 게 귀찮았어. 그땐 엄마 몸 하나만 일으켜 세워 세수하고 옷 입고 나가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야.


하나 더 놀라운 사실이 뭔지 아니?

너를 낳고 엄마가 회사에 복직해 출근 시동을 거는 순간, 엄마는 귀찮음을 느끼지 못했다는 거야.

오히려 감사했지.

너를 어린이집에 무사히 맡기고, 차 시동을 걸고 회사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거기엔 귀찮음 대신 감사함이란 마음이 자리 잡았단다.


똑같은 행위가 결국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 변하는 거야.


귀찮은 것은, 귀찮은 문제를 무서워하는 일종의 공포다 (주 2)

귀찮음의 본질이 뭔지 아니?

그건 '공포'야.


엄마가 회사에 가는 게 귀찮았던 건 회사에 가서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지.

그건 갑자기 덮쳐오는 거대한 파도 같은 공포가 아니야.

그냥 언제나 바다에 존재하는 물결 같은 공포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업무를 맡아야 하는 공포, 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공포,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공포 등등.

물결의 출렁임 없는 바다가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의 일상도 이런 일상의 공포들이 늘 존재하고 있지. 엄마는 이 일상의 공포를 귀찮음으로 인식했던 거야.


엄마로서의 귀찮음은 어땠을까?

너무 일찍 일어나서 발생하는 수면시간 부족의 공포.

피로로 인해 엄마가 하루의 일과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공포.

혹시 우리 아이만 이 깜깜한 새벽에 깨어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육아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미지의 공포.


바로 이런 사소한 공포들이 귀찮음으로 느껴졌던 거지. 엄마의 몸을 양지가 아닌 음지에 머물게 하는 그림자 같은 녀석이지.

일상의 사소한 공포들은 바로 우리의 손과 발을 묶어버리는 귀찮음이란 그림자가 된단다.


태양이 떴음을 알지만, 그늘에 머물게 하는 그림자.

손과 발을 움직여야 하지만, 손과 발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그림자.

무언가 새로 시작해야 하지만, 시작을 머뭇거리게 하는 그림자.


근데, 알고 있지?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단다.

살아있는 존재에겐 반드시 그림자가 존재해.

바로 이 귀찮음이란 그림자도 마찬가지지.

결국 우리는 이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해.


바로 이거야.

'귀찮음'이란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우리는 그림자를 없애버릴 순 없어.

그건 우리 존재를 없애버리는 일이니까.

귀찮음을 없애버릴 순 없지.

그건 우리의 공포를 없애버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우리가 귀찮음의 본질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귀찮음을 다룰 수 있게 된단다.


귀찮은 건 당연해.

귀찮다면, 무언가 시작되고 있다는 거야.


무언가 한다는 건 언제나 사소한 공포를 수반해.

하지만 그 공포를 받아들이는 순간, 너는 귀찮음이란 그림자도 다룰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게 네 머릿속이나 마음속의 일이라고 생각이 되니?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고?


엄마는 마음과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너의 손과 발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거야.


귀찮음을 의식하고, 마주하고, 극복하는 일련의 과정은 '행동'의 영역이야.


알람이 울려서 일어나려고 할 때,

다섯까지만 세고 일어나자고 한다면 어느새 너는 다시 열까지만 세고 일어나자고 하게 될 거야.

자기 자신과의 타협만큼 손쉬운 건 없거든.


그럴 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1,2,3,4,5... 하고 세지 말고

5,4,3,2,1,0. 일어나! 하는 거야.


끝이 아닌 시작을 기점으로 하는 거야.

너의 행동의 기점은 수의 끝이 아닌 시작에 있어.

0이 된 순간 더 이상 셀 수는 없지.

너의 행동만이 남게 돼.


끝을 생각하면 그 끝의 결과물의 그림자인 공포가 반드시 따라온단다.

내가 이걸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오늘도 어제랑 똑같이 미루면 어떡하지?

나는 변하지 못하는 인간인 걸까? 등등 너를 음지로 밀어 넣는 공포의 그림자가 따른다.


끝이 아닌, 시작을 생각해 봐.

시작엔 공포가 끼어들 틈이 없어.

넌 0에서 시작할 뿐, 그 어떤 것도 완성돼 있지 않은 상태거든.


네가 귀찮음이란 그림자를 너의 앞이 아닌 뒤에 있게 할 방법은 그저 '시작'을 행하는 일뿐이란다.


꾸물 거리는 사람들은 보통 너무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야.

시작의 끝, 시작의 완성 단계를 미리 생각하기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

그리고 그게 바로 핑계가 된단다, 시작하지 못하는.

난 잘하고 싶기 때문에, 난 꼭 성공하고 싶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결과의 공포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저 '귀찮음'이란 그림자 속에 숨게 되지.


물론 살다 보면, 시작의 공포가 너를 압도하는 순간이 있을 거야.

엄마도 그런 순간을 겪었단다.

그럴 땐 뭘 하면 좋을까?


하던 걸 하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에, 하던 걸 해.


엄마는 산책을 했지.

엄마는 책을 읽었다.

엄마는 늘 하던 대로 글을 썼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생각했던 공포가 현실이 되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닫지.

그리고 '한번 해볼까?' 싶어서 어떤 일을 하면 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내 머릿속의 공포가 세상에 존재하는 실제의 공포보다 가장 컸다는 걸 깨닫게 될 뿐이지.


엄마가 회사에서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어.

한 번은 언론홍보 업무를 하다가, 신문 지면광고 시안을 잘못 내보낸 거야.

이미 신문에 났지 그 광고는.

엄마는 그날 출근하기 전 그 어떤 때보다 귀찮음을 크게 느꼈어.

그건 공포 때문이지.

하지만 그냥 출근을 했고, 팀장님이 그 사건에 대해 물으셨을 때 대답했단다.


"네, 제가 잘못 보냈네요. 죄송합니다."


그냥 엄마 잘못을 무덤덤하게 시인했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일은 어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어떻게 됐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단다.

우리 팀장님의 인품이 훌륭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세상은 네가 잘못을 바로 시인할 때 더 이상 그 잘못에 대해 오래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건 이미 네가 사건을 종결시켰기 때문이야 네 손으로.


한 번은 또 이런 일도 있었어.

엄마가 직원들의 평가점수를 관리하던 때인데 실수로 한 직원의 평가결과를 바꿔버린 거야.

사장보고까지 갈 만큼 큰일이었지.

그 사실을 안 다음날, 엄마는 또다시 공포를 느꼈지.

하지만 그냥 출근했어. 그리고 말했지.


"제가 잘못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대안은 총 3가지인데요..."


그리고 결국 대안 3번이 채택되어 그날 오전 바로 그 사건은 종결됐단다.


이 모든 과정이 엄마도 귀찮았어.

새로운 문제를 겪고 싶지 않고, 그로 인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 싶지도 않았지.

하지만 엄마는 이게 엄마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공포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 공포의 환상을 깨는 건 그저 행위를 '시작' 하는 일뿐이라는 것도.


네가 만약 일상을 살아가면서 '귀찮음'을 느낀다면 그건 네가 무언가 시작하려는 신호라는 걸 기억하렴.

그리고 시작은 시작의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도 잊지 마.

시작에게 끝의 역할을 부여하는 순간, 공포가 발생하고 그 공포는 귀찮음이란 그림자가 되어 너를 뒤덮을 거야.


그림자는 너의 뒤에 있어야 해.

너 스스로가 그림자가 되어선 안된다는 걸 꼭 기억하렴.


귀찮아도 산책을 나갈 때, 산책길은 너에게 여유를 선사할 거야.

귀찮아도 집밥을 해 먹을 때, 집밥은 너에게 따뜻함을 선물할 거야.

귀찮아도 하루 10분 책을 꺼내 읽을 때, 책은 너에게 새로움을 내어줄 거야.

귀찮아도 글을 쓸 때, 글은 너에게 때론 소화제가 때론 영혼의 영양제가 되어줄 거야.


어떻게 아냐고?


엄마가 수십 년간 해본 경험의 데이터를 통해 도출한 결론이거든.


그냥 해.

그냥 한번 해봐.


마음이 흐릴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 네가 의지할 건 너의 손과 발이다.

그냥 손과 발이 움직이도록 놔둬.

너의 손이 글을 쓰고, 너의 발이 산책을 나가도록.


생각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마음은 자연스레 귀찮음이란 그림자에서 멀어질 거야.


오늘도 엄마의 편지를 읽어줘서 고마워.

귀찮았을 텐데 말이야.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무엇을 알고 있느냐?
무엇을 믿고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행동으로 실천하느냐다.(존 러스킨)




*주 1, 주 2 : 마오더슝, <귀찮으면 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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