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게임의 성공법칙

<엄마의 유산 2> 프로젝트

by 카르멘

안녕, 아들.


아들이 맨날 엄마에게 "엄마 또 회사 가?" 했던 그 회사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해.

그 회사를 다니다 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네. 엄마는 회사에 고마워. 우리 아들이랑 아빠랑 함께 만들 추억의 자원을 만들어준 곳이니까. 그리고 엄마가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좋은 여건을 만들어준 곳이니까. 그런데 그 시간 속에 가슴 아픈 때도 있었지. 이를 테면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때야.


"우리 OO과장이 더 큰 일을 해야 되는데, 육아 때문에.."

"OO과장이 땡 하면 퇴근하니까, 일을 더 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소리가 들려요. 아니면 다른 직원들과 평가를 똑같이 받아도 되나? 하는..."


엄마가 회사에 고마웠던, 그러니까 너를 키우며 일을 할 수 있었던 여건을 만들었던 때 엄마가 바로 그 중심에 서있었단다. 지금 떠올려도 가슴 아픈 말들을 들었던 때이기도 하지만 엄마는 그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걸 배웠어. 그래서 오늘은 너에게 이때 엄마가 배운 두 가지를 이야기하려 해. 바로 ‘눈치’와 ‘주관’이야.


지금 네가 사는 시대엔 더 많이 늘어났을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의 비율이 2024년엔 62.4%를 기록했어(주 1). 그런데 현실의 통계와 달리 엄마가 너를 낳고 회사에 복직한 2023년도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어. 아무도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닌 적이 없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도움 없이 풀타임 노동자로 회사를 다닌 사람이 없었단다.


엄마가 복직 후 너의 등하원을 도와주는 세 번째 도우미 선생님이 그만두시면서 엄마는 선택을 해야 했지. 엄마에겐 선택권이 두 가지였어. 퇴사 또는 육아기 단축근무. 그런데 엄마의 진짜 선택권엔 퇴사는 없었어. 엄마는 지기 싫었거든. 사회에? 회사에 지기 싫었냐고? 아니, 엄마는 스스로에게 지기 싫었어. 정말 끝까지 노력해 보고 결정하는 선택엔 후회가 없겠지만, 다른 선택권이 하나 남아있었잖아? 해보지도 않고 지금 당장 힘들다고 선택권을 포기하는 건 스스로 용납이 안 됐거든.


그래서 엄마의 단축근무 생활이 그때부터 시작됐어. 그리도 동시에 단축근무 하는 1명의 직원과 단축근무하지 않는 99명의 직원 사이의 '눈치게임'이 시작된 거야. 35년 동안 너의 할머니 눈치 외엔 눈치 볼일 없었던 엄마가 갑자기 눈치 볼 대상이 99명이나 생겨버린 거야. 함께 일하는 팀원, 팀장은 물론이고 아이를 키워도 단축근무를 하지 않았던 타 부서의 여자선배, 아이를 손수 키워본 적 없는 간부급 직원들까지도 엄마의 눈치 레이더에 들어오기 시작했지.


그래서 먼저 이 '눈치'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지, 그건 부정적인 게 아니라 당연한 거야. 눈치는 사회적 지능의 일부거든. 오히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사회적 지능이 낮다고 볼 수 있어.


그런데 '눈치'가 뭘까?

눈치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주 2)이야. 여기서 엄마가 방점을 찍은 건 두 가지야. '그때그때'와 '미루어 알아내는'이라는 눈치의 의미. 그때그때라는 건 말 그대로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거지. 뭐가? 마음이. 미루어 알아낸다는 건 짐작한다는 것이지. 짐작한다는 건 어림잡아 헤아린다는 거야. 뭐를?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남의 마음을.

어때? 눈치라는 게 생각보다 꽤나 추상적이고 허술한 녀석이라는 게 느껴지니?


그런데 왜 눈치를 ‘사회적 지능’이라고 할까?

그저 어림잡아 미루어 헤아리는 부정확하고 불투명한 사고의 과정일 뿐인데 말이야. 미국의 심리학자 손다이크(Thorndike)가 정의한 사회적 지능은 '일상생활에서 자기 및 타인의 감정과 사고행동을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란 뜻이야.


감정과 사고행동을 이해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적절히 행동하는 능력. 바로 이게 사회적 능력이야. 여기서 눈치가 하는 역할은 전자야. 타인의 감정과 사고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지.


만약 눈치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

타인의 감정과 사고행동을 이해하는 도구를 잃게 되지. 그건 네가 살아가며 겪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게 될 확률을 높이는 일이지. 타인의 감정을 모르면, 너의 감정을 타인에게 오롯이 전달하기 힘드니까. 타인이 화가 난 상태에서 너의 좋은 감정이나 신난 마음만을 전달하면 타인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니?

마찬가지로 타인의 사고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너의 사고행동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해.

우리는 종종 차량 뒤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은 차를 볼 수 있어.

왜일까? 교통사고 등 유사시의 상황에 아기를 먼저 찾아 구조해 달라는 뜻이지. 차주인은 그런 사고의 과정을 통해 스티커를 붙이는 행동을 한 거야. 그걸 이해해야만 너는 아이를 먼저 구조할 수 있는 거야. 물론 이건 조금 단순화한 상황의 예시지만, 타인의 의도가 담긴 사고를 읽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관계에서 기대되는 행동을 해내지 못해. 그런 경우가 쌓이면 그 관계는 결국 깨지고 말지. 그건 너의 일부를 깨뜨리는 일이기도 해. 관계 역시 너의 일부니까.


어때? 이제 '눈치가 필요하다'는 것까진 이해가 됐지?

그래서 엄마가 너보고 '눈치 좀 보고 살라'는 말을 하는 거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눈치를 보되 어떻게 봐야 할지’를 엄마는 말하고 싶거든. 엄마는 너에게 사회적 지능 중 전자의 역할이 눈치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어. 그럼 후자는 뭘까? 눈치를 통해 획득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야.


이 후자의 능력을 엄마는 '주관'이라고 부르고 싶어.

엄마가 이 편지에서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주관'을 갖고 '눈치'를 보라는 거야.

이건 결국 '타인의 눈치'뿐 아닌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일이기도 한데, 이건 조금 더 뒤에 나올 엄마의 사례로 이야기해 볼게.


자, 그럼 '주관'을 시작해 볼까?

주관(主觀). 임금 주 / 볼 관의 한자 어지. 단순히 풀이하자면, 내가 임금이 되어 본다는 거야. 사전적 의미로는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 또는 외부세계나 현실을 인식하고 체험하고 평가하는 의식과 의지를 가진 존재란 뜻이야(주 3)


외부세계나 현실을 조금 좁혀 '인간관계'라고 생각해 볼까? 그 세계를 인식하는 건 누구야? 체험하는 건 누구지? 평가하는 건? 나야.


인식하고 체험하고 평가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지? 의식과 의지가 필요해.


'의식'은 열려있는 사고야. 외부에 있는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내부에 있든 무엇이든 뱉어낼 수 있는 사고지. 그러니까 가만히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닌, 계속해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상태의 사고. 바로 이 열려있고 살아있는 의식이란 녀석이 필요해. 선택을 한정 짓지 않게 되는 사고.


'의지'는 왜 필요할까?

네가 너의 의식의 방향을 결정하는, 즉 선택의 주체이기 때문이야. 몇 날 며칠을 굶었더라도 썩은 고기는 먹지 않겠다는 선택, 내가 아무리 외롭고 괴로워도 도둑놈 하고는 친구 하지 않겠다는 선택. 그게 바로 너의 의지가 하는 일이지.


눈치로 다시 초점을 맞춰보자.


네가 겪게 되는 타인과의 관계와 상황이 있을 거야. 그때 눈치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타인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돼. 그리고 타인과 너의 관계와 상황을 의식해. 마지막으로 너의 행동이나 말의 방향을 결정하겠지? 바로 이 방향을 결정짓는 최종열쇠, 이게 바로 ‘주관’이야.


너의 의식과 의지가 작동하는 '방향'의 주인이 바로 주관이야. 그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직진이든, 후진이든 방향은 결정돼야 하거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나의 행동을 결정해야겠다!'는 주관이 눈치의 종착점이 되는 셈이야.


이쯤에서 쇼펜하우어의 말을 하나 소개해줄게.


"인간은 객관과 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세계는 '주관'이 겉으로 드러난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객관'이다. 모든 것을 인식하면서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인식되지 않는 것이 '주관'이다. '주관'은 세계, 그러니까 객관의 담당자이며 모든 현상과 객관에 널리 관통하는 전제조건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관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주 3). "


결국 "인간의 인식은 주체와 객체가 만나야만 성립" 하며 "세계는 내 표상"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눈치를 통해 객체를 이해하고, 주관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거지. 너의 인식은 바로 이 주체와 객체가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주관을 갖고 눈치를 봐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세계를 표상으로서만 인식할 수 있지만, 자기 몸에서 직접 느끼는 의지를 통해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라고 말했지.


엄마의 예를 들어볼까?

엄마는 1대 99의 눈치를 보는 상황을 이렇게 의식하기 시작했어.

'내 뒤에서 하는 말은 그 사람들의 자유다'

엄마가 남의 자유를 탓하거나,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건 그 사람들 고유의 자유인데. 엄마가 단축근무를 선택한 자유처럼, 그 사람들은 엄마의 행동에 대해 느끼는 바를 표현할 자유가 있는 거야.


단, 엄마는 이런 의지를 가졌어.

'남의 눈치 보다, 내 눈치를 먼저 보겠다'


여기서 말하는 내 눈치는 나 스스로에게 떳떳한가를 의미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주어진 업무시간 안에 업무를 마쳐 최대한 남아있는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 내가 근무시간을 단축했으니, 8시간 근무하며 8가지 일을 하던 걸 6시간 근무하며 8가지 일을 마칠 수 있는 태도를 갖는 것. 결국 내 선택에 떳떳할 만큼 내가 책임지는 것.

그게 엄마 스스로의 눈치를 보는 일이었어. 그래서 누군가 엄마 앞에서 엄마에게 어떤 가시 박힌 말을 내뱉더라도 상처받지 않는 것. 아니 상처받더라도 스스로 박힌 가시를 빼낼 만큼 근거 있는 힘을 길러내는 것.


그게 엄마의 눈치가 하는 역할이었어.


이 의식과 의지의 결합이 바로 엄마의 주관이야. 상황을 의식하는 방향, 의지를 결정하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 그 방향성이 바로 주관이지.


눈치를 부정의 방향으로, 수동적인 방향으로 쓰면 그건 수동적 주관의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눈치를 긍정의 방향으로, 능동적인 방향으로 쓰면 그건 능동적 주관의 키를 쥐고 있다는 방증이지. 그리고 그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선 무엇이 너에게 정말 긍정인지, 무엇이 정말 너를 움직이게 하는 능동인지를 알아야 해. 엄마가 처음편지에서 말했던 ‘너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인생의 전부’라고 했던 말 기억하니? 너 자신을 알아야만, 타인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야.


우리 모두가 주관을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단다. 오히려 자신의 의견이나 관점을 갖는 게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은 과거에 돈을 지불하고 화석을 샀어. 여기서 말하는 화석은 타인의 낡은 의견이지. 그리고 돈을 주고 산 타인의 의견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곤 했지(주 4) 이건 현대에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매일 두드리는 검색창이나 유튜브의 영상들 , 그건 누구의 의견이니? 분명한 건 너의 의견과 관점은 아니라는 거야. 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네가 주관을 갖고 눈치를 보는 건 너의 이로움을 위해서인데, 만약 주관이 없이 눈치만 본다면 너의 이로움은 타인의 머릿속과 타인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뜻이 돼. 더 나아가 너의 행복은 타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거지.


어때?

너는 어떤 주관의 방향키를 쥐고 있니?

엄마는 부디 네가, 눈치를 긍정과 능동의 방향으로 쓸 수 있는 주관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그건 네가 세상을 어떻게 '의식' 하고 너에게 어떤 '의지'를 심어주느냐에 달려있음을 잊지 마. 그건 결국 너를 아주 솔직히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하지만 이 방향은 고정 값은 아니야.


엄마가 너를 키우며 키웠던 주관도 너로 인해 더욱 긍정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변해왔단다. 그건 참 너에게 고마운 일이야.


엄마가 너에게 쓰는 이 편지 엄마 자신의 눈치 엄~청 봤다?

진짜 엄마의 마음인 건지, 거짓은 없는지, 편견은 없는지..... 여전히 자신의 눈치를 보며 쓰고 있어.


아들,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



주 1 : 통계청, 상반기 기혼 여성의 고용현황(2024)

주 2 : 네이버 어학사전

주 3 : 네이버 어학사전

주 4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주 5 : 시라토리 하루히코, 니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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