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뛰어난 스프레드시트를 이긴다 (주1)
제가 첫 책을 낼 때 많은 힘을 얻은 문장입니다.
모두 <타이탄의 도구들>에 나온 주옥같은 문장들이죠.
"당신이 돈을 마련하거나, 제품을 홍보하거나, 회사를 팔거나, 직원을 채용하는 등 그 어떤 일을 할 때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회계가 어떻고 MBA가 어떻고 하는 소리를 늘어놔도, 우리는 결국 여전히 감정에 좌우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늘 어떤 서사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방정식 때문에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 (주2)
제가 갖고 있는 책, 이야기를 팔고 홍보하기 위해 제가 내밀수 있는 숫자는 거의 전무했죠.
시장이 어떤지, 고객이 어떤지도 잘 몰랐고 제가 아는 건 제 책 속의 저와 같은 인물의 숫자 정도였습니다.
2024년 상반기 15∼54세 기혼여성고용률 66.0%,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사는 기혼여성 고용률 62.4%.
6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의 경력 단절 비율 33.5%, 경력 단절 사유, 육아 41.1%. (주3)
자, 그럼 제 서사는 무엇일까요?
저는 기혼여성 고용률 66%에 들어가 있고,
6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의 경력 유지 비율 66.5% 안에 들어가 있겠군요.
제 서사의 숫자는 66이네요.
생각보다 소수가 아닙니다.
다수에 속해 있네요.
그렇다면, 제 이야기는 다수의 이야기인가 봅니다.
소수의 이야기는 더 특별하고, 차별화되지만
다수의 이야기는 더 공감 가고, 공유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흔하다'라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이 66%의 워킹맘들이 흔하지 않다고 생각됐습니다.
다수이지만, 특별했죠.
왜냐고요?
편하지 않았거든요.
다수에겐 보통 기득권이 주어집니다.
다수에겐 보통 더 많은 힘과 권력이 주어지죠.
힘과 권력, 기득권은 비기득권보다 조금 더 편한 조건들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왜 불편했을까요?
우리는 다수지만, 침묵하는 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말할 필요가 없어서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말할 여력이 없어서 침묵하는 다수.
그 다수의 1인으로서 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66%의 다수야.
우리의 이야기가 흔하다고?
애 키우고 일하는 이야기가 뭐가 특별하냐고?
특별할 거야.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불편하니까.
불편한 건 여전히 특별하다는 말이거든"
이게 제 서사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책이 나오고 보니 서사가 보이네요)
그렇게 서사를 책으로 썼고, 서점에 나온 순간부터 새로운 서사들을 만들어야 했죠.
제가 최근 한 활동을 2가지 소개해보겠습니다.
01. 오디오북 제작 지원사업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선 고품질의 오디오북 콘텐츠를 확충하고, 오디오북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출판사에게 오디오북 제작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을 합니다.
1 책당 최대 500만 원의 실비를 지원합니다.
출간도서나 미출간 원고를 대상으로 말입니다.
올해 2차 신청을 받았고, 편집장님께서 책이 출간되기 전 신청을 해주셨죠.
사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오디오북 제작 지원사업 신청하실래요?"
"네!"
이게 끝이었습니다.
아마 관련 서류와 절차는 편집장님께서 모두 해주신 듯합니다.
얼마 전 결과가 나왔고, 총 470종의 책이 접수됐고 최종 149종이 선정 됐습니다.
1/3 정도의 책들만 선정됐으니 꽤 경쟁률이 높았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선정기준은 '작품 우수성'과 '기획성'입니다.
제 책이 오디오북이 된다면,
활자로 책을 읽기 힘든 독자들에게 제 책을 소개할 활로가 생기는 게 아닐까요?
물론 귀로 듣는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도요.
그렇다면 이건 특별한 서사가 아닐지?
같은 메시지도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요.
02. 교보문고 서평단
책이 나오고 서평단 모집을 해봤습니다.
제 미약한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말입니다. 참, 일이더군요.
재미는 있었지만 말입니다.
역시 숫자가 다는 아니지만 SNS는 역시 숫자가 다입니다.
그래서 숫자를 가진 곳으로 가봤습니다.
바로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의 카페입니다.
VORA라는 교보문고 네이버 카페에는 엄청난 숫자의 회원과 글들이 꽉 차 있습니다.
이곳에 어떻게 내 책이 노출될 수 있을까?
보라에선 매달 책을 3권씩 선정하여 서평단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북콘서트도 매월 열고요.
그래서 보라 카페 관리자에게 쪽지를 보내봤습니다.
그러자 VORA강연팀에서 쪽지가 왔습니다.
서평단 신청, 강연 신청 링크를 보내주셨고 신청하면 내부 검토 후 연락을 주겠다는 메시지.
냉큼 신청했고, 아마도 일주일쯤 후 연락이 온 것 같습니다.
"책이 흥미로울 것 같아서요. 7월 서평단 도서로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책소개, 디자인 파일, 서평단 책 10부, 에디터 2부 총 12부 정도를 보내주세요"
저는 출판사 편집장님께 말씀드렸고, 10권을 지원받아 서평단 도서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7월 교보문고 서평도서로 선정돼 서평단을 모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늘 어떤 서사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그게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시대, 우리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이유가 아닐까요?
'글을 써서 뭐 한데?'
'내가 무슨 책을 내?'
'누가 내 책을 읽겠어?'
'책 읽고 글 쓸 시간에 주식공부나 할까?'
우리는 종종 이런 고민을 하죠.
하지만 세상이 숫자로만 돌아가지 않기에, 오늘도 이런 고민을 하는 당신에게 제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주1 : 크리스 사카. 구글의 임원이자 트위터, 우버, 인스타그램 등 수십 개 기업의 초기투자자로 꽤 성공적인 벤처금융사를 운영한 인물.
주2 : 타이탄의 도구들, 팀페리스, 토네이도, 2017.
주3: ‘2024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기혼여성의 고용 현황’, 통계청,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