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책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이유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이란 걸 들어보셨나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범정부적으로 발표한 계획으로 무려 4차 계획입니다. 심지어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하는 의무 정책이죠.
왜 이런 어마무시한 법과 정책이 필요하냐고요?
수요즉공(需要則供)
필요로 하기에 공급됩니다.
1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는 성인은 10명 중 4명 정도입니다. 절반 이상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거죠.
또한 1인당 연간 종이책의 평균 구입량은 딱 1권입니다. (주 1)
반면 출판업계의 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지난해 발행 도서의 평균 가격은 19,526원으로 전년 대비 약 5% 증가했습니다. (주 2)
종이 용짓값과 인건비 상승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수치를 들이밀지 않아도, 우리는 사실 압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걸요. 게다가 점점 비싸지는 책을요.
제 주변만 봐도 남편? 직장동료? 중 책을 읽는 이는 희귀종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제 아들이 매일 읽는 편이네요.
무독(無讀)의 시대, 책을 써서 돈을 벌겠다니요?
물론 버는 이들도 있지만, 지고 있는 시장에 유명인도 아닌 일반이 신흥주자로 뛰어들어서 돈을 벌 확률은 높지 않겠죠.
보통 초보작가의 인세는 5~10% 안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경우 15%를 받기도 하네요.
한강작가 기준 가격이 1만 5천 원 책이 100만 부 팔릴 경우 15억을 벌 수 있죠.
그런데, 제 경우를 보자면.
제 책의 정가는 17,000원입니다.
온라인 구입 정가 10% 할인 시 15,300원이 되고 그래야만 배송비가 무료로 적용됩니다.
도서정가의 10%를 인세로 받는다면, 책 1권에 1,700원을 받는 셈입니다.
10권을 팔면, 17,000원
100권을 팔면 17만 원이 되겠네요.
그렇다면 제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어떻게 알까요?
감사히도 저는 출판사 편집장님이
한국도서출판정보센터에 가입하라고 알려주셨고, 대형서점 판매내역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ISBN을 등록하면 저자에게 일주일마다 판매수량 문자가 옵니다.
현재까지 3주 동안 총 96권이 팔렸군요.
그러면 약 16만 원 정도가 제게 들어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 남편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그래서 형편이 좀 나아지겠어?"
물론 저 같은 초보작가가 인세를 받아 형편이 나아지는 일은 별로 없을 겁니다.
작가로의 전업은 꿈도 못 꾸고요.
그런데, 왜 했고 또 하고 있을까요?
(네, 현재 저는 지담 작가님 기획 '엄마의 유산' 프로젝트를 참여하며 7월 공저 책을 출간 준비 중입니다)
자아실현?
자기만족?
물론 둘 다 포함됩니다.
02. 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이유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책을 안 쓸 이유가 있나?
출간이 큰 수혜주는 아니어도 손해주도 아닙니다.
제가 책을 내는데 쓴 비용은 제 몸과 마음뿐이니, 실제로 금전적으로 손해 볼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 약간의 스트레스 해소 비용이 들어갔을진 모르겠으나.. 우리 삶의 그런 비용이 한둘이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수익이 0은 아닙니다.
인세 16만 원을 벌었습니다.
세상에 어느 이가 그냥 그 돈을 제 손에 쥐어주겠습니까, 안 뺏어가면 다행이죠.
책은 종잣돈입니다.
저는 출간작업이 파종작업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내 경험과 사고를 응집하고, 단어와 문장을 착즙 하고, 의지를 결집시켜 책이라는 씨앗을 세상에 심습니다.
그러면 그 작은 씨앗이 햇빛도 받고 빗물도 받고 바람도 맞아가며 나무로 자라나 꽃을 피울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있겠죠.
꽃도 열매도 아니라면 작은 그늘을 만들어줄 수도, 중간에 잘려나갈지라도 남아있는 그루터기에 기대앉을 수는 있을 겁니다.
제가 낸 첫 출간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출간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가끔 풍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였죠.
그런데 브런치 지인 작가님(실배)을 통해 '오마이뉴스'라는 매체를 알게 됩니다.
알아봤더니, '시민기자'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누구나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곳에 '사는 이야기' 코너에 기사를 쓸 수 있고 편집국의 판단 하에 정식기사로 채택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식으로 채택되면 등급이 매겨지는데 그 등급에 따라 소정의 원고료도 받을 수 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저도 시민기자로 회원 가입 후 문의를 남겨놨습니다.
다른 매체에 쓴 글을 재가공하여 오마이뉴스에 써도 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갑자기 문자가 옵니다.
<오마이뉴스입니다. 연락 바랍니다.>
놀라서 퇴근 후 전화를 해보니, 제 문의에 대한 아주 친절하고 상세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결론은 "안된다"였고, 저도 안될걸 예상하고 확인차 물어본 거라 곧바로 수긍하고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그런데, 워킹맘 책을 얼마 전 내셨던데 워킹맘 시리즈물을 연재해 보시는 건 어때요? 기획안을 보내주시면 편집국에서 검토 후 최종 의견 드릴게요"
회원가입할 때 이력에 책을 한 줄 넣었습니다.
딱 한 줄. 아시겠지만, 이력서에 줄 하나 추가하는 게 힘듭니다. 심지어 '유/무' 단어 하나도 지원 조건이 결정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기자님의 마지막 한마디에,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늘 회원가입을 했는데, 갑자기 연재를?
워킹맘 이야기에 대해 더 쓸 게 있을까?
책에 탈탈 털어 넣은 거 같은데?
정기적으로 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많은 의문들이 제 머리에 휘몰아쳤습니다.
어떻게 대화가 끝났는지 모르겠는데, 기자님이 말미를 주셨고 기획안을 보내보라고 하시며 통화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약 일주일 후 기획안과 샘플기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아마도 며칠 후 다시 문자가 왔던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입니다. 연락 바랍니다.>
기자님의 답변은 시리즈 연재가 최종 결정 됐으니, 기타 자세한 조건을 설정해야 한다는 거였죠. '격주 수요일'기사를 발행, 때문에 격주 일요일까지 기사를 마감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기사 발행 일주일 전 다시 문자가 옵니다.
<오마이뉴스입니다. 연락 바랍니다.>
"기자님, 제가 하나 놓친 게 있는데. 공공기관 직원이시잖아요? 오마이뉴스에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들이 많은데 혹시나 해서요. '겸직' 신청해야 하는지 확인해 보시겠어요? 가끔 보수적인 조직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요"
갑자기 목덜미가 뻣뻣해지더군요.
그때부터 두통이 시작됩니다.
팀장급 이상만 대외활동 할 때 신청한다던 그 겸직?
인사과장-팀장-본부장-사장 결재라인 통과해야 하는 그 겸직?
남편에게 말했더니 또 한마디 합니다.
"그렇게 까지 해서 얼마 받는데?"
네, 제 편은 촌철살인 경제적 질문을 날리며 제 현실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사 등급 중 잉걸에 채택되면 2천 원, 제일 높은 오름은 6만 원.. 뭐가 될진 모르는데...
"2천 원?"
남편의 마지막 질문으로 저희의 대화는 끝이 납니다.
그때부터 고민, 고심, 고뇌에 들어갑니다.
외부강의 신고부터 겸직신청까지 규정집을 밤새 읽고 감사팀 지인에게 확인도 했습니다.
"그냥, 하자"로 마음을 먹고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인사과장님과 팀장님께 사실을 알리고 검토보고를 부탁드렸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금요일 아침, 마침내 길고 긴 결재가 났습니다.
마음의 부담이 천근이었던 결재를 올리고, 만근처럼 무거운 몸으로 출근을 한 3일.
관념, 관습, 관행에 둘러싸인 저 자신을 발견하는 3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장 나부랭이가 웬 겸직이냐는 관념
보통 팀장급 이상만 겸직한다는 관습
직무 관련 위원직 위촉 시에만 겸직해 온 관행 등.
어쩌면 스스로 가둬둔 틀을 하나 깨고 나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뿌린 씨앗이 새로운 토양을 견디고 떡잎이 되어 고개를 쑥 내밀었습니다.
제 바람은, 부가가치를 스스로 생산해 내는 작가가 되는 거지요.
비비안 작가님의 뒤를 이어 워킹맘 특집 유퀴즈에도 나가고,
여성가족부와 공공기관의 '일가정양립 특강'도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와 TED도요!
어쩌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시민위원이 될지도요(그런 자리가 있는지도 모릅니다만)
아 참, 스케줄 조정은 남편에게 맡길 겁니다.
"작가, 돈 되거든!" 호탕하게 말하면서 말입니다.
누구나 나비가 되어 날 수 있다. 단, 먼저 번데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여기서 번데기란 당신이 서 있는 세계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당신에게 강요되는 사회규범들이다.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는 번데기를 안전한 은신처로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벗어나게는 해주지 못한다.
타이탄들은 말한다.
"당신이 지금껏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창조할 수 없다. 그건 신의 영역이다. 대신 우리는 현실을 새롭게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주3)
(주 1)2023년 국민 독서실태, 문화체육관광부, 2024.
(주 2) 2024년 한국 출판생산 통계, 대한출판문화협회, 2024.
(주 3) 타이탄의 도구들, 팀패리스, 토네이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