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썼습니다.
(네, 사실 요새는 여기저기 하도 써대서 잘 모르겠어요)
생각은 그래도 또렷합니다.
원고를 쓰고, 뿌리는 건 일종의 '파종작업'과 같다고.
어느 출판사에서 물을 줄지, 어떤 미디어에서 햇살을 내리쬐어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씨앗이 있어야 물을 주든, 햇살을 주든 할거 아닙니까?
씨앗을 땅에 심고, 이곳에 심었노라! 알려야 그곳이 텃밭인지 알 거 아닙니까?
나 혼자 마음속에, 머릿속에 심고 있는 생각을, 나 혼자 남몰래 씨앗을 심어놓고 흙을 덮어두고 있는 원고를,
누가 알 수가 있으려나요.
제 친구가 결혼정보회사 듀 o의 문을 두드렸을 때, 컨설턴트 분이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미선님이 너무 좋은 신붓감이네요. 그런데, 미선님이 거기 있는지 누가 어떻게 알죠?"
저는 이게 출판업 시스템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원고도 내 컴퓨터 - 내 폴더 안에만 저장돼 있으면, 누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투고'라는 작업을 합니다.
원고라는 씨앗을 세상에 뿌리는, 일종의 파종작업인 셈이죠.
미리 말씀드리자면, 경험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합니다.
그냥 망망대해에 씨를 뿌리는 기분이 듭니다.
처음엔 마치 오늘 당장 연락이 올 것 같다가,
하루 이틀 지나다가, 영영 연락이 안 오는 건 아닌가 좌절모드로 넘어갑니다.
그러다 스스로도 잊게 되죠.
내가 씨앗을 뿌렸다는 것 자체를.
저도 그랬습니다.
일단 이점을 기억해 두고 시작합니다.
우선, 최대한 '내 책과 유사한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를 모아봐야겠죠.
네이버, 다음, 구글 등에 제가 쓰는 글의 주제와 비슷한 책들을 먼저 찾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출간한 출판사이름을 찾습니다.
출판사 이름을 엑셀에 넣고, 그 출판사에서 내놓은 책의 이름을 복붙 합니다.
이제 그 출판사들을 들여다봅니다.
홈페이지가 있는 출판사도 있고, 없는 출판사도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투고하기 기능이 있는 출판사도 있고, 없는 출판사도 있습니다.
그러니, 있는 건 있는 대로 엑셀에 붙여두고, 없는 건 다시 한번 구글링을 해봅니다.
그래서 출판사 대표 메일이 있는 경우 그걸 적어두고, 없으면 공란으로 둡니다.
온라인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자료수집이 끝나면 이제 오프라인으로 나갑니다.
가급적 큰 서점을 찾아가는 거죠.
저는 교보문고를 찾아갔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가 가장 클 거 같은데, 위치상 너무 멀어서 제가 사는 지역 내 가장 큰 교보문고를 갔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 책과 비슷한 주제의 책 혹은 개인 에세이 분야 책들을 골라잡습니다.
책의 서문과 저자소개, 그리고 출판사 정보를 매의 눈으로 서치 해 투고메일 주소를 찾아냅니다.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 정리해서 일전에 정리해 둔 엑셀파일에 추가합니다.
이게 제가 한 수작업 투고활동 준비였습니다.
요새는 근데 투고할 출판사 메일링을 파는 곳도 있더군요.
근데 내가 내고자 하는 책과 유사한 책을 내는 출판사인지 잘 모르겠고, 해봐야 100군데 정도 낼 목표로 시작해서 그냥 저는 시장조사 겸 수작업을 했습니다.
이돈이라도 아껴서, 나중에 책을 내면 홍보하는데 쓰는 게 낫기도 하겠고요.
참고로 홍보를 할 때 인스타그램 광고도구를 쓰면 큰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게시물을 광고할 때 광고기간, 광고예산, 광고타깃들을 소소하게 개인이 설정할 수 있거든요.
이건 또 다음 편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정성 가득한 투고리스트가 마련되면, 메일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출판사 이름, 출판사의 출간 책 이름, 메일주소 등을 잘못 쓰면 '괘씸죄'가 적용될 테니까요.
아시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서운 죄가 괘씸죄인 거...
예를 들어 <창비 출판사 편집장님께>라고 메일 서문을 열어놓고,
창비 출판사가 아닌 <문학사>에서 출간한 책이름을 언급하며 친한 척하면 안 되잖아요...
저는 그나마 친한 척 좀 해보려고,
그 출판사에서 낸 책을 언급하며 서문을 열었는데 이때 그래서 두 번, 세 번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내는 이유 1~2줄, 연락처, 기획안, 원고(pdf) 등을 첨부해 메일을 보냈습니다.
50군데 보냈을 때쯤 1~2군데, 80군데 보냈을 때쯤 1~2군데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자비 출판' 또는 '반자비 출판'을 제안했습니다.
작가가 일부 출판금액 또는 도서판매금액을 책임지는 시스템입니다.
알고 보니, 그런 출판만 지향하는 출판사들이 있습니다.
그제야 그 출판사 책들이 유독 서점에 많이 꽂혀있었던 이유도 알게 되죠.
그래서 이 출판사들에서 낸 책은 '자비' 또는 '반자비 출판'으로 출간된 책임을 깨닫습니다.
약간의 고민을 했지만, 역시나 혼자 글 쓰고 책 쓴다며 가뜩이나 약간의 눈칫밥을 먹고 있는데
내 돈 들여 책을 낸다 하면 제 편(남편)이 비웃을게 분명하므로 과감히 패스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도, 출판사에서 출간을 결정하기도 힘든 책을 내봤자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이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자비, 반자비 출판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를 얻으신 작가님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의 선택, 개인의 판단일 뿐입니다.
결국 단 한 곳, 기획출판을 제안해 준 출판사 편집장님을 지난가을 만나게 됩니다.
회사 근처에서 미팅을 가졌고, 계약서를 검토했고, 계약에 마침내 도장을 찍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두근두근합니다.
회사 점심시간에 출간계약을 하러 가다니, 너무 멋지지 않나요?
투고작업을 한 지난 7~9월의 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글을 쓸 때보다 더 지난하고, 하염없이 노트북 앞에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과연 이 엑셀파일을 활용할 날이 올까,
누군가에게 성공한 투고파일이라며 공유해 줄 날이 올까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했다면 오늘이 없었겠죠.
생각은 생각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했습니다.
생각은 머무를지언정, 행동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보내기 , 보내기, 보내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수신자가 읽든가 말든가, 회신을 하든가 말든가 그건 제 소관이 아니니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냥 송신자의 역할을 할 뿐이죠.
그리고 마침내 10월 출간계약을 합니다.
이건 제 이야기입니다.
혹시 지금도 노트북 앞에서 보내기 버튼을 망설이신다면,
글은 썼지만 여전히 내 컴퓨터 내 폴더 안에만 저장돼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