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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댓글이 작가를 성장시킨다

by 카르멘

댓글창을 열 때마다 복불복 게임을 하는 기분입니다.

오늘은 뭐가 나올까.

응원? 공감? 아니면 따끔한 한 방?

사실 예전엔 댓글 수만 세다가 닫았습니다.

'오, 3개네!' 하고 뿌듯해하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댓글 하나하나를 진짜로 읽습니다.

재밌거든요.


담금질? 나도 담금질 중인데요


브런치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카르멘 님 글을 보고 권태기에 빠졌던 저를 담금질합니다."

'담금질'이라니, 표현 좀 쓰시네요.

뭔가 대장간 느낌 나는 단어 아닙니까.

근데 웃긴 건, 그날 저도 권태기였다는 겁니다.

'오늘은 그냥 넷플릭스나 볼까' 하던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댓글 보고 다시 컴퓨터 켰습니다.

생각했죠. '아, 나도 담금질당하네.'

독자가 작가를 담금질하고,

작가가 독자를 담금질하고.

이게 뭐 서로 불에 달구는 관계입니까.



대변? 그냥 내 얘기했을 뿐인데


"워킹맘으로 힘든 이야기를 대변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 댓글 보고 잠깐 멈칫했습니다.

대변이라니, 저 그냥 제 하소연 쓴 건데요.

출근 전에 아이 밥 먹이다 지각할 뻔한 이야기,

회사에서 육아휴직 눈치 보이던 이야기.

그냥 제 일기장 같은 글이었거든요.

근데 누군가는 그걸 '우리 이야기'로 읽고 있더라고요.

신기하죠.

내가 쓴 '나'가 어느새 '우리'가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좀 더 당당하게 씁니다.

사적인 이야기라고 주눅 들 필요 없더라고요.

어차피 사적인 게 제일 보편적이니까.


이건 좀 아프던데요


오마이뉴스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맞벌이부부 위기 기사를 봤는데, 위기가 없지 않나요? 애를 안 낳으니."

오, 이건 제법 날카롭던데요?

맞벌이 부부의 육아 위기를 쓴 기사였는데,

댓글은 '애 안 낳으면 위기 없음'이라는 팩트 폭격.

처음엔 좀 뜨끔했습니다.

'내 글 제대로 읽은 거 맞아?' 싶기도 하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더라고요.

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한테는 또 다른 위기가 있겠죠.

출산 압박이라든지, 노후 불안이라든지.

그런데 제 기사는 그쪽은 전혀 안 다뤘던 겁니다.

결국 그 댓글이 제게 알려준 거죠.

'야, 너 시야 좁아.'

날 선 댓글도 결국 성장통입니다.

아프지만, 필요한 거.


공감합니다 (다섯 글자의 위력)


"공감합니다."

고작 다섯 글자.

그런데 이게 의외로 오래갑니다.

'좋아요' 100개보다,

'공감합니다' 댓글 하나가 더 힘이 세요.

왜냐면 '좋아요'는 그냥 엄지만 움직이면 되지만,

댓글은 키보드를 쳐야 하거든요.

손가락을 다섯 번 움직여서

'공감합니다'를 남긴다는 건,

'나도 그랬어, 너 혼자 아니야'를 온전히 전하는 거니까요.

이 네 글자가 다음 글을 쓰게 만듭니다.


댓글창은 2라운드


결국 깨달았습니다.

글 쓰는 건 1라운드고,

댓글 읽는 건 2라운드더라고요.

응원받으면 날개 달고,

까이면 땅 더 단단히 밟고.

어느 쪽이든 다음 글은 더 나아집니다.

댓글은 단순한 반응이 아닙니다.

그건 편집자이고, 동료이고, 때론 코치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요.

혼자 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함께 쓰고 있었다고.

독자가 댓글로 문장을 더하고,

저는 그 문장을 읽고 다음 글을 씁니다.

그렇게 글은 계속 자라나죠.

오늘도 누군가 댓글을 남길 겁니다.

담금질이든, 따끔한 지적이든, 짧은 공감이든.

다 받습니다.

그리고 다 씁니다.

독자 댓글이 나를 성장시키니까요.

그러니까, 계속 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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