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 전원주택 5개월 차가 전하는 온라인 집들이
내 인생은 뇌종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대한민국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았다. 매일매일 회사 업무에 휘둘리면서도 매달 꽂히는 월급에 중독되어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살았다. 일과 가정의 균형은 먼 나라 이야기로 알던 내게 어느 날 찾아온 뇌종양. 어쩌면 암 덕분에 내 인생은 180도 넘어 360+180도만큼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10개가 있어도 이런저런 핑계로 1~2개 할까 말까 였지만 뇌종양 이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 10 개 중 실제로 내지른(?) 일이 7~8개 될 정도로 바뀌었다. 집 짓기도 그중 하나다.
할머니와 엄마, 아빠 그리고 세 아이를 만족할 수 있을까?
집 설계 시 가장 큰 미션이었다. 줄곧 아파트에만 살다가 내 인생에 첫 집 짓기를 하게 되다니. 부지는 한정돼있고 돈은 없는데 욕심은 한도 끝도 없이 점점 커졌다. 홀어머니와 외아들, 13년 차 시어머니와 며느리, 운동을 좋아하는 큰 아들과 책을 좋아하는 둘째 아들, 기존에 아들 키우는 것과 다른 느낌을 준 막내딸. 어른 셋과 아이 셋, 오씨 넷과 非오씨 둘, 70대 40대 10대 이하. 우리 식구는 이처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조합이다. 이왕 집 짓는데 3대 6인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건축사-재귀당> 박현근 소장과 온 가족이 장시간 아이디어 회의 끝에 탄생한 "따로가치"
6인 가족 구성원들이 독립적인 공간으로 각각 따로(Separately) 살 수도 있고, 함께 어우러져서 같이(together) 살 수 있는 집(家) 이란 뜻으로 '같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가치'에 한자 집 '가'를 대체하여 탄생한 우리 집 네이밍이다. 그렇게 따로가치 역사는 시작되었다.
1층은 여인들의 공간이다.
어머니께는 조용하고 독립된 공간을 제공드리고 싶었다. 소음에 예민하시고 다리도 불편하시기에 1층으로 방을 만들고 현관-방-화장실 동선을 최소화하였다. 아파트와 달리 좁은 느낌을 최소화하기 위해 천장도 높게 하고 가구, 화장대, 돌침대 모두 붙박이 장으로 짜서 공간 활용을 최대로 하였다. 어머니 혼자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방이지만 저녁 때면 할머니방 TV 앞에 손주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
예전 아파트 주방은 벽을 바라보게 되어있어서 주부들의 우울증에 기여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아내도 막바지까지 고심하고 고심한 곳이 주방이다. 메인 주방은 폴딩도어로 되어있어서 놀이터에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다. 폴딩도어 바깥에는 보조 테이들이 있어서 놀이터에서 놀다 지친 아이들이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거나 할머니표 파전에 음료수를 마실 수 있다. 6인용 목조 식탁은 있어 빌러티 하게 웅장하고 간지가 좔좔 흐른다. 무엇보다 우리 집 주방 깊숙이 들어오는 햇볕이 기분 좋게 한다.
잔디가 넓으면 남자가 주말마다 고생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은지라 마당에 절반을 테크로 설치했다. 나머지 절반을 장독대도 놓고 텃밭에 상추, 토마토, 고추, 블루베리 등도 심고 감나무, 잔디, 꽃, 소나무도 심어서 아파트에서 할 수 없는 단독주택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2층은 가족 개개인의 개성공간이다.
아파트는 일방적으로 정해진 구조에 가족 구성원이나 가구들을 끼워 맞춰야 한다. 단독주택의 장점은 건축주의 요청사항대로 지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옆에서 건축사가 전문적인 설계와 감리도 함께 하지만 대부분 건축주가 아는 만큼 지을 수 있는 것이 단독주택이다. 우리는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보통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자는 날이 많다. 그래서 부부방은 침대 하나, 옷장만 들어갈 수 있게끔 최소화했다.
부부방 옆은 아빠를 위해 히노키 욕조를 마련했다. 일주일에 최소 2번 이상 반신욕 하려 하는데 요즘엔 아이들도 히노키 욕조를 탐내고 있어서 엄마와 딸, 아빠와 둘째 아들 조합으로 이용하고 있다. 성별이 다른 아이 구성을 고려해 막내딸은 인생 5년 만에 자기 방을 갖게 되었다. 엄마, 할머니, 오빠들도 평생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빠들과 싸우거나 아빠한테 삐지거나하면 방문 닫고 혼자 방안에서 씩씩댄다. 그걸 문밖에서 듣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형제간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한방을 쓰게 된 오씨 1호와 2호. 학년이 올라갈수록 체격이 커진 덕분에 잠자리가 비좁다며 아침마다 투덜대기 일쑤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게임할 때나 장난감 놀이할 때는 세상 둘도 없는 형제 모습이다. 외동으로 자란 아빠가 너희들을 부러워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매일 시시각각 형제애가 변한다.
2층 형제 방에는 계단이 있는데 그곳을 올라가면 큰 아들의 독립적인 공간이다. 아빠보다 깔끔한 성격에 정리정돈을 잘하는 큰 아들은 장난감 수납, 이불과 베개, 잠옷이 칼같이 정리되어있다. 누가 보면 군대 갔다 온 줄 알겠다만 내성적인 아이고 곧 사춘기인 만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큰 아들방과 다락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계단이 있는데 다락에는 <시공사-맑은 주택>에서 특별 제작한 미끄럼틀이 있다. 웬만한 어른들도 짧은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데 우리 집 방문 어린이 손님들 필수코스다.
다락은 지식과 체력 충전소다.
다락에는 아빠의 집필실 겸 작업실 겸 홈오피스 겸 간이침대 겸 음악감상실이 있다. 대략 세 평 남짓 공간이지만 따로가치에 방문한 남자 아빠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간이다. 집중이 필요할 때 또는 홀로 벼락치기 업무를 할 때 이 곳에서 방문 닫고 있으면 가족들 모두 아빠가 바쁜 줄 알고 배려해준다.
아빠 작업실 바로 문 앞에는 막내딸 작업실이다. 혼자 스케치북에 그림도 그리고 색종이 접기도 하고 아빠와 함께 숫자 공부도 하는 곳이다. 마음에 드는 본인 작품을 벽에 붙일 수도 있다. 본인 방도 있고 작업실도 있고.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만 막내딸이 따로가치 가장 큰 수혜자임에 틀림이 없다.
집 곳곳에는 책장이 있어 언제 어디서든 책을 가까이하게 했다. 덕분에 둘째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책을 보고 있다. 밥 먹을 때도. 학교 갈 아침 시간에도. 수업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가방 던져놓고 책을 읽는다. 지난주 둘째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다른 친구들과 달리 발표를 잘 하고 어휘 선정에도 책 많이 읽은 아이 티가 난다고 한다. (지금처럼만 꾸준히 자라다오.)
아하! 이 놀이터도 우리 땅이었네?
지난겨울에 깨달은 사실이다. 밤새 내린 눈으로 발자국 하나 없는 집 앞 놀이터에서 아침 일찍부터 세 아이가 무장하고 뒹굴고 눈싸움하고 깔깔대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단독주택만의 혜택을 누리고 절로 행복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단독주택 생활 5개월밖에 안 됐지만, 따로가치 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
우리 가족 모두 만족하는 집을 갖기까지 아내의 공이 컸다. 어머니는 조용하고 자연친화적인 주변 동네에 만족하신다. 큰 아들은 이런 집이면 TV없이도 살 수 있을것 같다고 했다. 다른 건축주들은 남편이 한다던데 우리 집은 아내가 거의 모든 것을 맡아서 진행했다. 건축사와 집 구성 방향을 협의하고 수정하고 제안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설계 도면을 이해하고 현장에서 설명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한여름에 고생하시는 분들 방해될까 봐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얼음물과 먹거리를 냉장고에 매일매일 채워놓았다. 이러한 아내의 정성 덕분에 현장에 계신 분들도 하나라도 더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따로가치를 완성해주셨다. 준공 허가만 떨어지면 끝인 줄 알았는데 내부 인테리어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따로가치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찾아 해외직구 사이트를 샅샅이 검색해서 구입한 실링팬, 후드, 수전. 그 외 가구와 인테리어 용품들. 따로가치의 격을 세 단계 업그레이드해준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게 다 자기 덕분이야"
따로가치 숨은 아이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