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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Nov 11. 2020

직장인 4년 차에서,
나는 기다리는 것을 멈췄다.

나는 묵묵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그렇듯 바쁘고 힘든 것을 잘 티를 내지 않았다. 강도가 높은 직장생활을 하며 감내하는 성향이 몸에 짙게 베여서 그랬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좋은 내일, 그리고 더 나아가 더 좋은 삶이 다가올 때까지 내가 하는 일을, 내가 앉아있는 자리를 믿고 기다렸다. 직장생활 4년 차쯤, 감내하고 버티는 삶을 살면서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블랙 기업이라는 단어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금씩 드러났다. 강도 높은 업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꿈처럼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에 다니는 젊은 사람들 몇몇이 안타까운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고, 꿈을 연료 삼아 몸을 깎는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지금 당장 시작해라!”     


젊은 사업가,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미디어에 나와 많은 젊은이에게 자기 계발을 외치고 무언가를 자꾸 시작하라고 재촉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과감함, 자유로움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속해있는 업계에서는 그저 뜬 소리를 말하는 사기꾼으로 매도되었었다. 그때는 아는 것이 없어서, 그리고 생각하는 있는 힘이 부족해서 잘 몰랐지만, 한편으로는 그들도 미디어에 비추는 사람들만큼 열심히 하루하루를 만들어 오늘을 만들었지만, 사뭇 초라함을 느껴서 혹은 질투로 인하여 그런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나 역시 그들 틈에 끼어 바빠서, 지쳐서, 귀찮아서, 이러한 스스로의 핑계 뒤에 숨어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작은 사회 안에서 맴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때, 두꺼운 옷을 입고 물에 빠진 것처럼 일에 젖어 회사 밖 현실에서 허우적거릴 힘조차 못 낼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회사가 끝난 후 택시를 타고 새벽녘을 바라보며 안락함을 느끼고, 이렇게 열심히 하루를 보냈다는 성취감에 남들의 하루가 시작하는 시간에 나의 하루를 끝낸 적이 많았으니까. 사실 그때는 그런 열정이, 노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도,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차별 하나 없이 모두가 그렇게 밤을 지새웠고, 간간이 만나던 다른 회사의 사람들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어 하나의 풍경처럼 자연스럽고, 습관처럼 지속이 되어도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었다.     


좋은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나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닌 나의 목적이 회사가 되고, 일이 되어버렸다. 이름이 좋은 회사의 명함이 나를 표현하고, 남들보다 더 빠르고 완성도 있게 만드는 일들이 나의 능력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선을 점점 일이라는 굴레 안으로 몰아 밖을 보지 못하게 나를 가두고 가뒀다.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면서도 지치지 않고 다음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열정, 그리고 남들이 쉬는 날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 그 당시 멋지고 찬란했던 날들은 지금, 바라보지 않는 삶 그리고 원하지 않는 삶이 되었다. 나는 회사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그다지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일에 의해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진 나는 회사라는 굴레 안에서만 쓰임새가 좋았었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나는 어느 날 거울 안에서 참 초라해 보였다. 건강하지 못했고, 일을 넘어선 굴레의 세상을 잘 몰랐다. 내 모든 것처럼 보였던 목적들이, 그렇게 집착하고 열망했던 일들이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래서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프리랜서 3년차를 지나고 있는 나는 요즘 “무엇을”이라는 삶보다, “어떻게”라는 삶을 더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시작해볼 수 있는 시간과 용기와 건강을 위한 운동에 할애할 시간, 여유 있게 고민하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고 있다. 해본 적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느끼지만, 난이도의 문제보다 숙련도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열정적이었던 새벽이 낯설어졌고, 행복해졌다.

그리고 나는 나를 응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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