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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Mar 16. 2023

꿈으로 향하는 한 걸음

첫째는 한 번 잠이 들면 밤새도록 깨어나지 않고 아침이 되어서야 안방으로 기어오곤 했다. 아기방에서 토닥토닥 재우고 나오면 밤시간은 그나마 수월한 편이었다. 그에 반해 둘째는 그야말로 잠과의 전쟁을 치루며 키워냈다. 태어나서부터 쭉 밤중수유를 하며 밤새도록 끌어안고 이쪽 저쪽 가슴을 내어주며 흡사 잠고문을 당하듯 키워냈다. 단유를 하고도 잠과의 전쟁은 이어졌는데 이번엔 무서운 꿈이 말썽이었다. 그렇게 무서운 꿈을 자주 꿨고 훌쩍거리면서 내 발 밑에 서 있곤 했다. 미국식 분리수면은 한 배에서 나온 아이 둘이라도 적용할 수도, 못 할수도 있다는걸 키워보며 알았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고 어릴 때부터 시작한 분리수면을 고수했다. 아이와 같이 누우면 나는 한숨을 제대로 못 자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벽 1~2시마다 울면서 찾아오는 시기도 몇 년을 이겨내며 보냈고 마침내 이불에 지도도 그리지 않고, 밤에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게 떡실신되어 아침에 늦잠까지 자는 잠꾸러기 초딩 둘로 성장했다. 그리고 나는 폭삭 늙었다.




학부모 총회에 다녀왔다. 평소의 등산가는 것 같은 패딩잠바, 대충 빗질만 쓱쓱 하고 온 것이 분명해보이는 머리는 숨겨두고 단정한 코트에 드라이한 머리, 더 단정한 표정으로 학교에 찾아갔다. 그동안 추레한 모습으로 학교에 찾아간 수많은 날, 설마 나를 못 알아보실거야 라고 생각했던 날은 어김없이 먼저 인사를 건네시던 옆반 선생님께서 멋내고 간 오늘, 나를 못 알아보고 내가 먼저 건넨 인사를 받고도 한참 곰곰히 생각을 하고나서 마침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시곤 당황한 표정으로 답례를 하셨다. 그렇게 많은 엄마들이 이번 학부모 총회를 위해 새로 장만한 것이 분명해보이는 새 옷, 혹은 새 구두, 새 가방을 매고 학교에 모인 날이다.


연년생 남매의 교실을 허둥대며 왔다갔다 했다. 코로나와 함께 학교에 입학했던 두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했었고, 학교 교실에는 얼씬도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총회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었던터라 남편과 함께 가서 각각의 교실로 갈라졌어야 했겠구나 하는건 당일 학교에 도착하고서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쌍둥이 엄마만큼 정신없이, 그렇게 연년생 엄마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선생님들의 교육 철학을 들어보겠다고 바쁘게 다녔다.


회사 옆에 살다보니 같은 직장의 동료들도 당연히 근처 아파트에 많이 살고, 그러다보니 그들의 자녀도 역시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반차를 쓰고 온 직원들을 학교에서 만나기도 한다. 회사 출입증은 가방속에 꼭꼭 숨겨두고 마치 각자의 첩보작전을 수행하러 왔다는듯 서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아이의 사물함 한 번을 더 열어보고 선생님과 짧은 대화라도 더 나누어본다. 그렇게 회사에서의 나와는 또 다른, 아이의 보호자로서의 내 모습을 살짝 흘리고 왔다.




끝나고 난 후 아이의 방과후 수업 교실 창 너머에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아이가 보였다.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아이의 방과후 교실에서의 모습을 조합해보다가 나와 다르지 않은, 어쩌면 그렇게도 나를 빼다 박은 걸까 싶은 아들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몸가짐을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단정하게 제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마지막 정리정돈까지 해내려는 모습을 봤다. 나도 하루를 그렇게 살고 집에가선 뻗어버리곤 하는데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내가 사회생활 해나가는 모습을 거의 비슷하게, 얼추 똑같이 해나가는 아들을 보며 차라리 아빠를 닮아 자유분방한 스타일로 살아가는 딸처럼 이따금 제멋대로라고 느껴져도 괜찮으니 ‘프리하게’ 살면 좋겠다는 소망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3월이지만 아직도 어설프게 추운 날씨에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선 피로가 몰려왔다. 반차를 내느라 회사에서도 출근과 동시에 바삐 일을 처리했고, 2시 정각에 사무실에서 나와 학교를 거쳐 집까지 오니 기진맥진하다는걸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긴장하고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내 몸이 그럴진데, 아이들은 꼭 이럴 때 불같이 전쟁을 시작한다. 남매는 손도 씻지 않은채 가방만 대충 던져두고 바로 불꽃이 튀었다. 아이 한 명씩 방 한 칸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축축한 빨래같은 몸을 이끌어 저녁 준비를 했다. 쟁반 하나씩에 1인분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각 방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하고나니 내 입맛이 있을리가 있나. 지친 몸으로 겨우 몇 숟가락을 먹고선 인터넷 세상을 구경했고, 유튜브 세상도 탐험했다.




복직 후 처음으로 외부 강연 의뢰가 들어왔다. 이번엔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할지 그림을 그려보는 중이다. 강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들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계속 하고픈 일이다. 내 목소리를 내 눈빛으로 함께 표현할 수 있다는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들을만한 메시지, 가슴에 품을만한 메시지를 선별하는 중이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회사일과 주말의 소설수업에다가 강의 준비까지 동시에 하려니 마음이 달리기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자기들 방에 들어가서 알아서 잠을 청하던 둘은 이제 나란히 누워서 두런두런 자기들만의 세상에 대한 대화를 한참 나누다가 잠이 든다. 어릴 땐 목이 터져라 책을 읽어주고 아픈 허리임에도 함께 누워 꼼짝을 않고 양쪽 팔 하나씩을 빼앗긴채 한참을 쓰다듬고 옛날 이야기이며, 아기 때 이야기를 해줘가며 재웠는데, 이젠 문 닫힌 방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내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은 욕심을 내기 위해 서두르는 법이 없고, 놀 거 다 놀고 그 다음 해야 할 일을 한다. 엄마 입장에선 등교 시간엔 속 터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그들의 삶을 무척 부러워하고 있다. 노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삶, 온갖 종류의 상상으로 제 세상을 꽉 채우고 확장시키며 사는 삶, 놀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삶. 그렇게 건강한 두 생명이 나누는 대화를 방 밖에서 듣다보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을만큼 소리가 작아지고 이내 뚝 끊기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면 살며시 아이들 방의 문을 열어 그들의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누워있는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작은 소리를 낸다. 그건 세상이 낼 수 있는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소리이다. 숨을 쉬기 위해 살아있는 우리 모두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숨을 쉬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면서 사는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따라온다. 감정에 솔직하고 조건없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맑은 기운도 그들의 가슴에서 내 손을 타고 전해진다. 그때가 하루중 가장 행복하고 따뜻하고 마음이 아린 시간이다.


평소에 몹시 하고 싶던 주제로 강연 의뢰가 들어왔고, 하고 싶던 무대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바라던 바를 앞두고 마음이 두근거린다. 아직 강연 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속단은 금물이지만 차근히 준비해서 이런 강사도 세상에 있다는걸,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도 있다는걸 전하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또한 앞으로 잘 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한 달은 미모관리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한다. 짧은 단발로 쳐버린 머리도 예쁘게 자랐으면 좋겠고 좋은 음식을 잘 먹어서 살도 조금 쪘으면 좋겠다. 아직은 내가 하는 말의 알맹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우선은 첫인상으로 판가름 나는, 이 사람 말을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첫 단계를 통과해야 하기에 믿음직해 보이는 눈빛과 함께 단정한 옷과 겉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도 멋지게 관리하고 싶다.


마치 내게 지나간 계절이 있었느냐는듯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며 나에겐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막이 바뀌는 시기가 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변화를 맞고, 꿈이라고 말하던 것을 현실로 바꾸어가며 인생의 고난과 행운을 차곡차곡 받아안고, 또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러 나간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벅차다. 그래도 이 길을 잘 놀고 잘 먹는 아이 둘과 함께 갈 수 있어서 기쁘다. 새삼 아이들에게 고맙다. 두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 곳에서 찰방거리는 수준이었을까 싶다. 한 살씩 더 키워낼수록 나의 내면은 더 깊은 골에서도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중이다.


그렇게 어려운 길도, 험난한 물살도 헤치며 나는 또 걸음을 이어간다.

이번엔 강의다. 꿈에 그리던 그런 곳에서.

듣는 이의 마음에 작은 돌을 던져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강의를 준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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