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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Mar 03. 2020

11. 선을 넘는 부부

짐바브웨-보츠와나-남아공


 카사네에서 초베 국립공원을 둘러본 여행자들이 향하는 곳은 대게 두 방향으로 나눠진다. 남쪽으로 내려가서 오카방고 델타 지역으로 향하거나, 아니면 동쪽인 짐바브웨로 향한다. 오카방고 델타는 남아프리카를 달리던 오카방고 강이 넓은 대지를 만나 펼쳐진 거대한 삼각주이다. 일반적인 삼각주가 바다에 접하는 강의 하구에 형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보기 드문 내륙 삼각주로 수많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많은 여행자들이 카사네 다음으로 향하는 루트이다. 또 다른 방향은 카사네에서 국경을 통과 후에 짐바브웨로 입국하여 동쪽을 향해 달려 잠비아의 국경도시인 리빙스톤을 거쳐서 탄자니아로 향하는 아프리카 종단 코스이다. 그 코스 위에는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에 세계 3대 폭포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다. 카사네에서 빅토리아 폭포까지는 80km 정도의 거리라서 우리는 카사네에서 당일 치기로 빅토리아 폭포를 다녀오기로 했다.


카사네는 남아프리카의 네 나라가 만나는 곳이다.


 가까운 거리라서 당일치기 여정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국경을 넘어갔다가 와야 하는 코스라서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사전에 국경을 넘는 과정과 빅토리아 폭포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도시락을 싸고 주유까지 완벽히 하고서 국경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국경 사무소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장통을 이루고 있었다.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고 차량 관련 서류를 들고 국경 사무소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가자 마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들어온 듯이 다들 한순간에 우릴 쳐다봤다. 아마도 가이드 없이 직접 국경을 넘는 동양인 여행자는 흔하지 않은가 보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는 익숙해진 시선이었다. 하지만 짐바브웨 국경에서 만난 그들은 단지 구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 중의 하나가 나를 가운데 두고 출입국 사무관과 그들의 언어로 여러 마디를 주고받더니 나의 팔을 이끌고 구석으로 향했다. 갑자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차를 가지고 국경을 지나가려면 통행세와 보험 비용을 추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미리 조사한 바로는 전혀 그런 비용이 없었는데, 부패한 공무원과 함께 순진한 여행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어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을 만난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몇 번이나 확인을 하고 이유를 물어도 막무가내로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처음 겪은 일도 아니었지만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국경 사기단이 기다리고 있던 짐바브웨 국경 사무소


 여행 중에 이런 불합리한 상황은 수시로 맞닥뜨리게 된다. 불친절한 숙소 주인, 인종 차별적인 공무원, 어처구니 없는 요금을 요구하는 택시기사 등. 나는 그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매번 화를 내고 감정을 소비하면서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끔씩은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대충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확한 사실 관계를 따지며 불합리한 차별이나 바가지에 강경하게 대처했다. 단지 우리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향후에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짐바브웨 국경에서도 대충 넘어가려는 나를 물러세우고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일단 국경 사무소 담당자의 이름을 묻고 사진을 찍고는 너네들 우리 대사관에 물어봐서 거짓말이면 혼내 주겠다고 나서니 그제야 그들은 슬금슬금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사실 낯선 땅에서 감정적인 문제를 일으키면 곤란해지는 것은 항상 여행자들의 몫이기에 조심스러웠지만, 너네들 수법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과 단호한 말투에 그들은 대상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 덕분에 이른바 호구가 되지 않고 국경을 지날 수 있었다.


MOSI-OA-TUNTA 가 빅토리아 폭포의 원래 이름이다.


하늘에서 본 빅토리아 폭포. (출처 : www.victoriafalls-guide.net)


 국경을 넘어 짐바브웨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초베 국립공원의 영지 안이었다.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없는 밀림 사리로 난 길을 따라 혹시라도 야생동물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1시간가량을 달리자 짐바브웨와 잠비아 사이의 국경도시 빅토리아 폴스(Victoria Falls)에 도착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은 동네는 오직 빅토리아 폭포 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폭포 관광을 위한 모든 것이 녹아있었다. 빅토리아 폭포는 유명한 탐험가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모시 오아 툰야'라는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이 있었다. 그 의미는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연기'라는데 빅토리아 폭포를 보는 순간 그 이름이 얼마나 적절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도시에 도착할 무렵부터 저 멀리 물안개가 보이기 시작했고, 차를 세우고 내리자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 남부를 가로지르는 잠베지 강이 깊이가 100m 넘는 좁은 협곡을 만나 쏟아져 내리는 곳이다. 그 폭이 1.6km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폭포이다. 마침 내가 도착한 시점은 우기로 수량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좁은 협곡으로 쏟아져 내린 물줄기는 절벽에 부딪히고 물보라가 되어 수십~수백 미터를 솟아올라 다시 장대비처럼 내려왔다. 이 모습이 마치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연기와 같았다. 온몸을 폭포수로 흠뻑 적시며 우레 같은 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씻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빅토리아 폭포에 대한 감상은 웅장하다 장엄하다 따위의 묘사를 뛰어넘는 것이기에 나의 언어로는 더 이상의 표현이 힘들다. 직접 보는 것 말고는 빅토리아 폭포의 위용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사진 속의 대단한 기세의 폭포가 사실은 빅토리아 폭포의 일부일 뿐이다.


맑은 날인데도 폭포 근처에는 튀어오르는 폭포수로 장대비가 내린다.


  빅토리아 폭포는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을 가르는 잠베지 강에 자리 잡고 있고, 짐바브웨의 도시인 빅토리아 폴스와 잠비아의 리빙스턴이 폭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두 도시는 1904년에 완공된 거대한 다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빅토리아 폭포 다리는 잠베지 강을 향해 110여 미터를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로도 유명한 곳이다. 다리 위에서 강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뛰어내려 보고 싶다는 용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다리를 따라 걸어서 잠비아의 땅에 발도장을 찍어 보기로 했다. 실제로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선은 빅토리아 폭포 다리의 한가운데에 그어져 있다. 양쪽에 발을 걸치고 선을 왔다 갔다 하는 순간 나라와 나라를 건너 다니는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경험은 항상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아마도 육로가 막혀있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선을 넘는다는 표현이 한계를 넘어 새로운 영역을 찾아 나선다는 의미보다는 가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는 일탈이라는 의미가 더 익숙한 우리에게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도 남북한 경계 사이에 다리를 걸치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오길 기대해본다.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잇는 빅토리아 폭포 다리


 다시 보츠와나의 카사네로 돌아오는 길은 다행히도 순탄했다. 오전에 만났던 국경 사기단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고 퇴근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자리에 앉아 있던 무뚝뚝한 직원의 안내로 절차에 따라 국경을 넘어 카사네의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다시 초베 국립공원의 귀퉁이 캠핑장에서 야생의 밤을 보내고 다음날 일찍 카사네를 떠났다. 이번에는 다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카사네에서 남아공 국경까지는 800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라서 도저히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일몰 이후에 국경을 건널 수도 없었기에 도중에 프랜시스타운이라는 도시에서 하루 머물고 가기로 했다. 카사네에서 프랜시스타운까지 이어지는 A33 도로는 야생 보호구역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한참을 달려도 마주오는 차를 만나기 힘든 그 길에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아내가 창 밖을 보며 '길 가에 큰 개가 있네' 하고 창문을 내리자 커다란 하이에나가 썩은 내를 풍기며 노려보고 있던 순간도 있었고, 코끼리 가족이 길을 건너는 바람에 차를 세우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역시 보츠와나는 야생동물의 천국임이 틀림없었다.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동물원 구경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보츠와나


도로에서 만나는 코끼리는 공포의 대상이다.


 해가 지평선에서 두 뼘 정도 남았을 때쯤에 프랜시스타운(Francistown)에 도착했다. 보츠와나의 제2의 도시라지만 우리나라의 군소 도시의 규모보다도 작은 도시였다. 여행을 꽤나 좋아하는 나에게도 생소한 이름의 도시에는 역시나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를 찾기 어려웠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는 놀랐던 점 중에 하나가 어딜 가도 캠핑장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프랜시스타운은 예외였다. 여행자들에게는 관광 포인트가 딱히 없어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도시인 모양이었다. 한참을 헤매던 중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발견했다. 어느 도시든지 강을 따라서 호텔이나 캠핑장이 있기 마련이기에 얼른 강을 따라 이동했다. 역시나 도시 외곽에서 강가에 조성된 리조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꽤 고급 리조트처럼 보였지만 손님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리셉션을 찾아가서 텐트를 칠 만한 곳이 있냐고 물었더니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라면을 주문한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 돌아왔다. 친절한 직원은 잠시 당황하더니 이곳저곳에 물어보고서는 리조트 구석에 있는 바베큐 지역에 텐트를 쳐도 좋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역시 고급 리조트답게 두터운 잔디와 적당한 조명까지 있는 최적의 텐트 사이트였다. 사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곳이라 무섭기도 했지만 야생동물의 소리에 잠을 깨던 카사네에 비하면 훌륭한 잠자리였다.


고급 리조트가 5분 만에 내 집 정원이 되었다.


 다음날, 다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기도 하고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텐트를 정리하고 도시락을 싸서 출발했다. 왠지 아침부터 일진이 안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날이 있다. 그게 바로 그날이었다. 남아공으로 넘어가는 국경을 향해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렸을 무렵,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대형 트럭이 우리를 스쳐가면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튀기고 지나갔다. 비록 콩알만큼 작은 돌이었지만 빠른 속도로 달리던 차의 앞유리에 흠집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순식간에 앞유리에는 500원짜리 크기 정도의 X자 모양 흠집이 생겨버렸다. 케이프타운에서 차를 렌트하면서 "설마 앞유리가 깨지는 일이 일어나겠어?" 하는 생각에 별로 비싸지도 않은 앞유리 보험을 들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리에 흠을 낸 작은 돌멩이는 그날 불운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이후에도 길을 잘못 들어서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고 점심 식사를 준비하면서 손을 다치기도 했다. 그 보다 더 짜증 났던 일을 국경 근처의 주유소에서 생긴 카드 결제 오류였다.


작은 흠집이었지만 운전하는 내내 눈에 거슬렸다.


 남아공 국경에 도착하기 직전, 지도에 의하면 국경 전 마지막 주유소가 있는 곳이었기에 그곳에서 남은 보츠와나 지폐를 다 사용하여 주유를 하기로 했다.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현금만큼만 주유하려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의사소통의 실수로 원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기름을 주유하면서 카드 결제를 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외진 곳 특히나 국경 근처에서는 혹시라도 카드 결제 시 문제가 발생하면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딱 맞춰서 가지고 있던 현금이 떨어져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카드 결제 오류가 발생했다. 아무리 시도해도 결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여행자 한 명 지나지 않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동양인이 쩔쩔매고 있자 여기저기서 검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에 둘러 쌓이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모든 상황이 의심스러웠지만 더 곤란한 상황으로 번지기 전에 일단 가지고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하여 시도한 끝에 간신히 지불했다. 기분이 몹시도 찝찝했다. 정말 되는 일이 없는 날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주유소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보일 때마다 가득 채워야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남아공 국경에서 발생했다. 보츠와나 출국 수속을 받은 과정까지는 순탄했다. 여느 출국 심사가 그렇듯이 그냥 얼굴 한 번 쳐다보고 무심한 표정으로 찍어주는 출국 도장을 받아서 나오는 것으로 출국 절차는 끝이었다. 하지만 보츠와나와 남아공의 국경을 가르는 림포포강을 건너서 도착한 남아공 입국 사무소에서는 복잡한 절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꽤 잘 사는 나라라서 인지 입국 심사가 까다로웠다. 차량으로 국경을 넘기에 차량에 관한 서류와 각종 도로 관련 세금을 납부해야 했고 아프리카 지역에 성행하는 풍토병을 옮겨온 게 아니라는 신체검사도 받아야 했다. 차 트렁크와 배낭 등을 열어 보여주며 짐 검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입국 심사대에 설 수 있었다. 남아공에서 출발해서 나미비아와 짐바브웨, 보츠와나를 거쳐 다시 남아공으로 재입국하는 것이기에 쉽게 통과될 줄 알았는데 꽤 여러 가지를 묻더니 마침내 입국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권을 자세히 보니 나와 아내의 체류 만료 일자가 다르게 찍혀있었다. 각자 여권에 찍힌 기한에 의하면 나는 한 달간 더 머물 수 있고, 아내는 일주일 안에 남아공을 떠나야 했다. 이미 찍혀버린 도장을 지울 수도 없고, 심사원에게 아무리 사정해도 막무가내로 그냥 나가라고만 했다. 


보츠와나와 남아공의 국경


 남아공 국경에서 갑자기 여행 일정이 일주일로 리셋되어 버렸다. 이대로 일정을 정리하고 떠나려고 해도 렌터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를 타러 케이프타운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이 넘게 걸릴 것 같았다. 항공권 일정은 변경이 가능할까? 렌터카 비용은 환불 받을 수 있을까? 아, 맞다. 앞유리에 금이 갔지... 갑자기 여행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기분이 들었다. 막막한 심경으로 국경 사무소를 떠나 남아공의 도로로 들어섰다.

 이제 어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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