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무직입니다만 서른 살 백수. 시험용 글쓰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쓰고 싶어서 시작한 에세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분명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에 들 수 있을 만큼 며칠간 피로가 쌓인 날이었다. 하지만 몸이 피곤한데도 잠에 들 수 없었다. 결국 묵혀둔 책을 펴 들고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서야 새벽 네시쯤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사를 앞둔 전날 밤의 기억이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을 아무리 세어도 잠이 오질 않았다.
지난주에 내 마음의 고향, 노원을 떠났다. 네 살 때 이사를 가서 20년 넘게 뿌리내린 곳이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에 늘 “노원이요”라고 답했다. ‘못사는 동네’하면 상계동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동 대신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을 말하곤 했다.
네 살 때부터 서른 살까지 총 세 번의 이사를 경험했다. 하지만 3단지에서 1단지로, 1단지에서 2단지로의 이주여서 노원에 사는 내 정체성은 그대로였다. 노원에는 내가 다닌 초·중·고가 있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해질 때까지 놀던 놀이터가, 우리 세 자매의 이름을 불러주며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던 OO마트(문구점·서점·마트가 한 곳에 있었다)가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술을 마신 호프집도, 20대 중반 이후 새로 생긴 취미인 ‘디저트집 뿌시기’의 시작이 된 마카롱 단골집도 그곳에 있다. 노원을 떠난다는 것은 내 10대, 내 20대와의 결별이나 다름없었다.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다.
2020년은 내게 새로운 곳에서의 삶, 새로운 세대로서의 삶(이제 만으로 해도 30대라니!)의 시작을 의미했다. 마치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내 등을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떠미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과거와는 그만 결별하고 뭔가 새로이 시작해야만 하는 때라고.
내 삶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면 그 첫 번째 순서는 단연 취업이 돼야 한다. 2020년을 맞이하며 내가 준비하고 있는 시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백수로 지낼 건데, 언제까지 되지 않는 시험을 매달리고 있을 건데, 언제까지 ‘사람 구실’ 못하고 살 건데 등등의 책망부터 정말 다른 시험을 준비하든 ‘눈을 낮춰서’ 어느 곳이라도 들어가든 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 떨어진 건 정말 내가 자격이 없다는 뜻 아닐까 등등의 현실적 고민까지. 신을 믿지 않는데도 여러 변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이것은 이 시험을 이제 그만두라는 하늘의 뜻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불안에 잠식된 고민은 발전적 방향이 아닌 나를 갉아먹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는 내게 참 박한 사람이 됐다. 셀 수 없는 탈락과 실패를 겪으며 습관처럼 스스로를 깎아내린 탓이다. 내 장점들을 발견하고 키우기보다 내 부족한 점들을 크게 바라봤다. 왜 이것밖에 하지 못하느냐고 나를 들들 볶아댔다. 10여 명만 뽑혀서 ‘장원급제’라 불린 필기시험에 통과해도 최종 입사가 아니면 그전까지 내가 한 노력과 성과들은 모두 평가절하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주장의 글들을 쓰면서도 스스로에게만큼은 예외를 뒀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흠집 내고 괴롭혔다.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태도는 다른 지원자에 대한 열등감으로 번져갔다. 스터디를 같이 한 동료가 고차 전형에 올라가도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보다는 ‘나만 남으면 어쩌지’하는 초조함이 앞섰다. 그 사람의 장점을 배우려고 하기보다 그 사람과 나를 저울질하며 스스로를 불안의 절벽으로 내몰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왜 이렇게 못난 사람이 됐지, 하며 또 나를 미워하고. 불안과 자기혐오의 악순환에 빠졌다.
2020년 내가 결별해야 할 것들은 나의 어떤 꿈이나 내 무직 상태가 아니라 이런 못난 내 모습들일 것이다. 진짜 내게 필요한 새로운 삶은 무엇이 된 나의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는 나의 모습이 아닐까.
스터디원들에게내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있다면 이 시험을 시작한 것이라고, 취중진담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 말을 정정해야겠다. 나는 이 시험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내가 이 시험을 합격하진 못했지만 나는 이 시험을 시작하기 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깊게 대화하는 사람이 됐다. 뭐든 성실히 읽는 내가,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는 내가, 텍스트를 두고 신나게 떠드는 내가, 그렇지 않은 나보다 좋다. 덜 불편했던 과거보다 더 불편한 현재가 좋다. 무엇이 되지 못하더라도, 이름을 남기며 살지 않게 되더라도 전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
새해 다짐이나 계획으로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2020년 새해를 맞이하며, 또 고향을 떠나며, 내가 새롭게 가져야 할 태도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 더 사랑해주는 것이다. 내가 결별해야 할 것은 불안에 잠식된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다그쳐온 나,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다. 새해엔 조금 더 나를 아끼고 소중히 대해줘야지. 그리고 내 감정을 더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 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