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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각시 Mar 16. 2020

운칠기삼

[서른, 무직입니다만 08]

서른 무직입니다만
서른 살 백수. 시험용 글쓰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쓰고 싶어서 시작한 에세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될 운명이라고 했다. 작명소를 운영하는 한 역학자의 말이었다. 그는 내 이름이 내 사주와 맞지 않는, 좋지 않은 이름이라며 개명을 권했다. 초등학생 고학년 때인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시기도 흐릿한 어느 날, 아빠가 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역학자에게 문의한 뒤 가져온 결과였다.


적당한 결과였으면 그냥저냥 살았을 텐데 ‘파란만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부모님에겐 꽤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표현이었나 보다. 서너 개의 ‘좋은 이름’을 받았다. 그중 다수의 의견을 모아 ‘지원’이라는 이름을 택하게 됐다. 10년 넘게 불리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명찰을 달게 되는 것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난 내 이름을 좋아했다. 전에도 글에서 언급했지만 엄마 아빠 언니 둘 도합 넷이서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여러 후보들 중 고르고 고른 이름이니까.


어쨌건 부모님 뜻에 따라 개명이 결정됐다. 당시엔 이름을 바꾸는 절차가 지금보다 복잡했다. 집에서 먼저 원래 이름과 지원이라는 이름을 섞어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명은 엎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빠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내 개명도 없는 일이 되었다.


백수 기간 내내 이때의 기억이 소환됐다. 탈락 소식을 받아들일 때마다 이름 탓인가, 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합격 소식을 보면 정말 오랜 기간 갈고닦은 결과 합격을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번 써봤는데 얼결에 붙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들에겐 허락된 운이 왜 내게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지, 운이란 놈은 어쩜 이렇게 귀신같이 나를 비켜갈 수 있는지 원망스러웠다. 그러고는 이것은 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될 운명의 이름 때문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그때 개명을 했으면, 지원이라는 이름의 삶을 살았더라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경로를 걷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무 의미 없는 가정을 하기도 했다.



운칠기삼. 운이 7할 노력이 3할이라는 말로, 어떤 일이나 결과가 노력보다는 운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다수의 지원자들과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현재의 취업시장에서는 운이 7을 넘어 9할은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실력은 충분한데 운이 따라주지 않아 떨어지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당장 한 달 계획은커녕 장기적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운세에 점점 더 매달리게 됐다. 도대체 내 삶은 어떻게 흐르게 될까 마음이 답답해 큰 맘먹고 거금을 들여 신점을 보러 가고,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태어난 년도의 운세는 제공되지 않아 보지 않던 신문에 나는 '오늘의 운세'를 매일매일 챙겨보게 됐다. 5000원부터 30000원까지, 타로는 틈날 때마다(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본다. 별자리나 띠 등 챙겨보는 운세의 유형도 다양해졌다.


점이란 점은 다 섭렵하며 돗자리를 깔아야 되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가까운 지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닳고 닳은 이야기다. 2년 전 K사 공채에서 전형을 거칠 때마다 꿈을 꿨다. 최종면접을 치르고 난 뒤 꾼 꿈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날 만큼 생생했다. 이 꿈에는 당시 면접을 앞두고 꾸렸던 스터디의 동료들도 나왔다.


꿈속에서 A와 나는 여러 미션들을 통과하고 있었다. 땀에 젖어 꿈에서 깨어날 정도로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미션들이었다. 그 미션들 끝에는 어떤 봉고차에 타야 했는데, 나와 A가 겨우겨우 미션을 마치고 도착한 그 순간! 봉고차 문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그 안에는 여럿이 타고 있었는데 실루엣만 보였다. 내가 얼굴을 본 유일한 사람은 B였다. 다다음날 최종 결과가 발표됐다. A와 나는 떨어졌고, B는 붙었다. 소오름. 필기시험과 1차면접 때 꿨던 꿈은 길몽 중 길몽으로 유명한 똥꿈이었다.

 

지난해 Y사 공채를 치를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필기시험과 1차면접 때에는 길몽으로 분류되는 꿈들을 꿨고 최종면접 이후에는 흉몽을 꿨다. 2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 이번에는 그 꿈을 애인에게 1000원에 팔아버렸다. (애인 미안..) 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또 떨어졌다. 지금에서는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만 해도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정신적 내상을 입히는 괴로운 일이었다. 길몽이건 흉몽이건 꿈에 의해 내 기분과 정신이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운세만 아주 가끔 본다. 내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애정, 재물, 직장, 학업·시험운과 종합운세까지 무료로 볼 수 있다. 나만 보는 줄 알았는데 주변 취준생들한테 조심스레 저 요새 이거 봐요, 하고 얘기하면 다들 보고 있었다. 역시 사는 건 다들 똑같아. 아무튼 원래는 거의 매일 챙겨봤는데, 한 번 최종결과 기다릴 때 발표 날 운세가 너무 좋아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가 배신당한 뒤로는 잘 보지 않게 됐다.  



이렇게 나왔는데 기대 안 할 수가 있겠냐고요...


이런 것들은 다 미신이고 어차피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이란 멋들어진 말은, 내게 전혀 와 닿지 않는 그야말로 말뿐인 말이다.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자그마한 희망에 기댈 수밖에 없는, 스스로 무언가를 설계하고 감행해나갈 여력이 없어 타인의 말에 자신의 미래를 내맡기게 되는 그런 상태일 때 주로 운세를 봤으니까.


애인이 언젠가 내게 요상한 사업 아이템을 말한 적이 있다. 타인의 운세를 봐주는 프로그램인데 무조건 그 사람이 원하는 말만 해주는 게 핵심이었다. 운세를 보는 사람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모두가 거짓이라는 걸 아는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지는 판타지 월드를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걸 누가 이용하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한 번 받아보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서 대책 없는 낙관을, 조건 없는 희망의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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