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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Jun 30. 2016

정신적 왼손잡이#30.사회인 실격(2)

20160625.#30.사회인 실격(2)

#1. 실격의 이유


난 모든 불행의 이유를 스스로 이름 짓고 만들어왔다. 남 탓하고 살지 않는 것, 나를 낮추며 사는 것이 익숙해서 보통 그 이유는 내 부족함으로부터 지어졌다. 그녀의 질문 앞에 나는 지난 몇 주간의 끔찍한(물론 나는 괜찮지만 누가 보면 끔찍할) 식사와 기분, 사유를 기록한 일지를 다시 꺼내보았다.


상담을 하면서 나아진 점은, 조금은 사회와 타인의 '탓'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아직도 이게 '나아진 점'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녀는 내가 스스로 이름 짓고 짊어지는 불행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 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사회생활이 지치고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요. 스스로 그렇게 낙담하는 부분이 어떤 거예요?"




#실격 원인 1. 눈치, 센스 제로.


 가끔 대학생 시절이나 그 전의 유년기를 돌아보면, 내 말이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기억이 더욱 뚜렷하다. 형제와 분리되지 않았던 방, 나만 알고 싶은 일을 가족들이 모두 알길 원하는 상황, 고교시절의 따돌림과 차별의 경험, 그 후로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쉽게 주눅 드는 경향', 대학시절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꾹꾹 참아 왔던 감정들.


 어긋난 인내와 비틀린 좌절이 뭉쳐 지금의 우울증을 거들고 있다. 지금은 약물도 약물 나름이지만, 꽤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이 됐다. 말싸움은 못하지만 그래도 이상하다 싶은 건 입 밖으로 툭툭 내뱉고야 만다.


다른 사람의 업무를 제게 굳이 맡기시는 이유가 뭐죠? 혼자 밥 먹는 게 뭐가 이상한가요? 왜 이 일러스트엔 여자만 그려져 있어요? 이 원고에서 화자가 굳이 남자인 이유는 뭐죠?(이걸 인터넷에선 보통 '프로 불편러'라고도...) - 뭐 이런 식이다.


"면접 때 그런 이야기도 하고. 위잉씨 소신이 있는 건 좋은데, 그런 말 다 하면 취직 못해요."


자기 소신이 있는 건 멋있지만, 건방져 보일 수 있지 않겠냐고 나를 걱정했다. 순간 내가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게 왜 건방져? 당연한 거 아냐? 이게 왜 소신이야. 난 당연한 걸 물어본 건데.


근로자 입장에서 더 나은 직장을 찾는 건 당연하고, 그 회사가 나를 채용하기 전까지 난 그들의 예비 고객이다. 게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좋으니 물어보라고 했기 때문에 물어봤을 뿐이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사회인 생활의 70~80%를 보내는 직장을 아무렇게나 고를 순 없으니까. 그들이 날 면접 볼 때, 나도 그들을 면접을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도, 선배들도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 다 알면서도 참고 사는 거야, 그래야 먹고 사니까. 너 자꾸 그러면 굶는다? -


... 난 소신 같은 거 없다. 소신이 없으니까 비굴하게 당하고만 살아왔는걸. 이쯤 되면 내가 의심하는 예민함을 얻음과 동시에 눈치 빠른 융통성을 잃었다는 답이 나온다. 즉, '사회적 눈치'가 매우 부족하다.


이건 상식이자 법이잖아요. 맞는 얘길 하는 게 왜 눈치가 없는 거죠?


거 봐요. 지금도 눈치 없어요. 이런 데에서 정말 순진하구나, 위잉씨는.




#실격 원인 2. 까다로움 과잉


앞서 말한 '눈치가 없는 것'의 이유는 뭘까. 사교성이 떨어져서다. 사교성은 왜 떨어질까?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결코 일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아무도 일러스트의 인물이 모두 여자인 걸, 원고의 화자가 남자인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지적하고 묻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중엔 '에휴, 위잉씨가 전에 그러시길래~ 제가 남자 일러스트도 이번엔 그렸네요~'하고 팀원들로부터 피드백이 오기에 나의 까다로움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반문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냥 발행했다. 내가 걱정 및 생각 과잉이라는 걸 이때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작은 일이라도 조심해야 해! 내가 도와야지.'라는 생각은, '위잉씨가 대중매체를 잘 몰라. 아무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라는 진단에 금세 묻혔다.


까다로움의 조건이 늘어날수록 일반의 범주로부터 벗어난다. 조금씩 소수자가 된다. 맵고 짠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대체로 일반적이다. 여기서부터 하나하나 얹어가면 나는 자연스럽게 다수로부터 멀어진다(어쩌다 보니  우리 팀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지라, 미안해서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탄수화물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 일반 식당에서 1인분을 다 먹지 못하는 사람. 매일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 아메리카노 커피의 원두 맛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 식사 약속 잡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 사람 많은 장소에 가면 어지러워하는 사람. 길을 잘 못 찾는 사람. 주말에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 컴퓨터 게임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 영화를 잘 안 보는 사람. 여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


나는 편하지만, 다른 여럿을 불편하게 만드는 조건들이다. 그래서 다른 여럿이 불편하지 않게 나는 외로움이나 심심함을 감수하고라도 멀어지기를 택하기로 한다. 그럼 으레 '아웃사이더'라느니, '겉돈다'느니, 그런 소문이 사내에 쉬쉬 돌아다닌다. '사회생활이란 건 일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라는 소릴 한 차례 듣게 되고.


그러면 억지로 식사 1인분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야 하는 날도 오고, '참 입이 고급이시네요'같은 빈정거림을 참아야 하는 날도 온다. '여자가 무슨 게임이에요?', '위잉씨 설마 OO한 만화도 봐요?', '젊을 때 여행 안 다니고 뭐 했어요?'등 난데없이 후려침 당하는 날도 온다. 당연히 나는 괴로워한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일수록 나는 다름보다는 틀림에 가까워진다. 교정이 필요한 사람이 된다.  


일하라고 저 뽑았잖아요. 제가 다르게 폐 끼친 것도 없는데 왜들 그러세요. 일만 잘 하면 안 되나요?


(... 당신이 그렇게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게 기분 나빠.)


자, 여기서 또 1패.




# 실격 원인 3. 자존감 없고 자존심만 있음.


기묘하게 자존감이 없고 자존심만 있으면 딱 나 같은 상태가 된다.  즉 '난 쓰레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날 쓰레기라고 하는 건 참을 수 없어' 같은 이상한 상태.


이건 기복의 문제가 있다. 어떤 날엔 '다 꺼져. 뭐라는 거야. 여기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 있어?'라고 하늘을 찌르는 오만함이 튀어나왔다가, 그다음 날엔 그만큼 반대로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중간선을 적당히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아프기 시작한 이후 열의 아홉은 아래로 파고 들어간다. 그래서 작은 일 하나에도 금세 시무룩해지고 홀로 고민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화를 낸다. 넌 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또 그러냐. 그렇게 자꾸 기죽어서 나중에 부하 직원이라도 생겼을 때 얕보이면 어떡하냐. 그리고 실제로 얕본다. 나이로 줄을 세우고 사람을 모욕 주는 일은 꼰대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별 하잘것없는 이유로 무시당하고도 이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 섬기기엔 아직 내 그릇이 크지가 못하다.


집에 되돌아가면 살풀이가 시작된다, 벽에 대고.


네가 왜 날 무시해? 넌 이런 거 할 수 있어? 네가 잘 나면 얼마나 잘났어. 말이면 다인 줄 알아? 대학 나왔다는 애가 말을 그 따게밖에 못해? 그리고 당신은 왜 날 자꾸 가로막아? 그럴 거면 혼자 일 다 하든지 날 왜 뽑았어? 내가 고작 이런 일이나 하려고 대학 졸업한 줄 알아?...


이런 하소연은 들어줄 사람도 주변에 없다. 글로 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말을 하려다가도 말고, 글을 더 쓰려다가도 말줄임표를 찍는다. 늘 말하지만, 표현이 귀찮아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무기력함이다.


[자존심을 짓밟힐만한 언행이 습관이다.]
[그래서 짓밟힌다.]

[그건 정말 싫다.]

[이내 '내가 못나서 그렇다'고 삽질을 한다.]

[날 괴롭힌 사람에게 일언반구도 못하고 참는다.]

> 반복된다.



#2. 사회, 가능할까


사회생활이라고 해봤자 길게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다른 회사에 비하면 아주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했다. 앞으로도 그런 직장을 찾으려 노력할 예정이다. 그걸 서두르지는 않는다. 그게 편안함이 아닌 절망과 체념에서 오는 것임을 그녀는 바로 알았다. 내가 작년 여름의 재림을 두려워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조금 다른 사람이지, 나쁘거나 틀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요. 단, 직장생활이라는 건 아무래도 평범의 범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부분인데 그 사이클의 진행이 어려울 만큼 기분 기복이 심한 게 고통스러운 일이죠."


아, 회사를 다니지 않고 그냥 혼자 어떻게라도 살면 안 될까. 아니면 제발 이런 나를 나쁘게 보지 않는 사회는 없는 걸까. 나 정말 일만 하고 조용하게 살 자신 있는데. 나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 아무리 정신과를 다닌다고 해도 사람을 해친 적은 없다고요. 일도 잘하는데.

"감정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 - 장국영의 유서-

"분명 어떤 삶을 택해도, 사람과 떨어질 순 없어요. 좀 더 위잉씨에게 맞는 일과 사람을 찾으면서, 위잉씨도 자신을 더 아끼는 삶을 사는 게 최선이에요."


...... 대체 나를 어떻게 하면 아낄 수 있을까. 난 내가 너무 싫은데. 남에게 미움받는 내가 싫고, 그런 미움에 화낼 줄 모르는, 혹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지 못하는 나는 더 싫다.


"다음 주엔 약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을 때의 기분이나 감정, 신체 변화나 생각들을 기록해보세요. 약물이 어디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저도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먼산을 보고 말하는 것이 최근의 습관이다. 회사에서는 모니터를 보고 일하고, 친구도 가족도 거의 만나지 않는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은 어렵고 생경하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창문으로 보이는 신형 아파트의 어느 창문 칸에 시선을 꽂아두고 있었다. 진한 썬팅이 된 창문엔 여름의 질척한 햇살이 일렁거린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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