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잉위잉 Sep 27. 2016

정신적 왼손잡이 #32.낙하

20160717-20160905.#32.낙하

#1. 먼저 결론은


8월 초에 작은 회사에 입사해서, 알 수 없는 일을 하다가 그만 뒀다.

명절에 일상을 한 번 흔들고, 9월이 다 가도록 다시 쉬고 있다.

SNS의 지인과 만나서 맛 본 케이크. 그는 적극적이라 내가 사는 먼 동네까지 발걸음을 해 주었다. '새로운 맛이다'라는 걸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끝을 잘라도 계속 올이 풀려 나가는 번거로운 직물처럼 애매한 시간이 계속 되어서 아직까지 파트 타임 일자리도 구하지 않고 있다. 소소하게 사람을 만나고, 늦잠을 자고, 때때로 술을 마시고 병원을 갔다.


딱 작년의 이맘때같이 힘없는 날들의 연속. 그때보다는 그런대로 내게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있어 다행이지만, 한 번 빠져봤던 무력함의 깊은 늪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그녀는 그래도 작년보다는 나아졌다는 얘길 했다. 음주가 줄었고, 흡연과 문제 행동 또한 거의 사라졌다. 취미생활과 나름의 인간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했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무력하고 괴로워요. 행복하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거고요. 변함없이 매일 죽고 싶고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밥 먹는 것보다 많이 하고 있는데.


말했듯이 이 사회는 최선을 다해서 더욱 열심히, 나를 죽이려고 한다니까요..."


#2. 놀랍지 않아도 놀라운


고등학생인 사촌동생이 자기 소개서를 썼다고 한다. 한 번 읽어봐 줄 수 있겠냐는 말에 초고만 슬쩍 훑어 보았는데, 디테일보다는 '절 뽑아 주세요'라는 절실함이 더 앞서 있어서 그만 웃고 말았다.  제 인생 이야기이니 제 스스로가 더 잘 쓸 것이라 믿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고등학생 때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정말 가고 싶은 회사를 만나면 잔뜩 흥분해 아무 이야기들을 늘어놓게 된다. 이름 있는 몇몇 미디어 회사에 낙방했다. 회사 내 인력 풀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낙방했다. 모 취업 포털에 이력서를 올려 뒀더니 회사의 대표인 것 같은 남성이 "밤 11시"에 '우리 회사에 오라'며 게걸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기에 바로 이력서를 지웠다.


여름에 잠깐 했던 헤나. 스페인어로 "느려도 꾸준히, 다만 멈추지 마라'라는 뜻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떨어진 이후 다시 내 자기 소개서를 읽어보면 정말 한심하다. 쓸 땐 그렇게 격양된 감정으로, 신이 나서 써 놓고선 말이다.


날고 싶어하는 이상,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건 알겠는데. 과연 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알바트로스는 한번 날기 위해 절벽에서 몇 천 번을 퍼덕거리고 뜀박질을 해야 한다. 하지만 상승 기류에 맞춰 날개를 펼치면 활공만으로 수 천 킬로미터를 난다. 펭귄은 전혀 날지 못하지만 바다 속이라면 얘기가 달리진다. 같은 조류여도 비행의 개념은 다르다. 펭귄이 날지 못한다고 해서 나쁘거나 하등한 조류인가. 그럼 알바트로스는 위대한 조류인가. 활공에 특화된 알바트로스의 길고 좁은 날개는 이착륙이 어렵다. 그래서 날렵한 다른 조류들과 달리, 착륙 시 바닥에 몸을 처박기도 한다.


"좀 더 노력해서, 더 도전해 봐. 공채 100개를 써야 겨우 하나 붙는다잖아. 너 100개는 썼어?"


모 기업 회장의 '해봤어?'가 떠올랐다. 모든 게 내 노력과 시간과 정성의 부족이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므로, 나는 더 이상 탈락의 허탈함을 주변에 털어놓지 않았다.


시간이 있어도 집을 도저히 치울 기력이 없어 집은 계속 지저분하다. 카페에 나와 커피 한 잔을 놓고 종일 창 밖을 쳐다보면서 나의 우스움과 부족함을, 알 수 없는 부조리와 묵직한 귀찮음을 비웃었다.


X발....이라면서.


#3. 초과근무수당은 없습니다.


지인의 지인을 건너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내 이력서를 보고는 '동종업계 유경험자이니 수습기간을 빼고, 바로 연봉 2400부터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쁘지는 않았다.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나는 - 매번 느끼는 것이고 이젠 인정하게 되었는데, 일을 마주하면 굉장히 까다롭고 거만하고 건방진 사람이 된다. 내 커리어와 능력에 자신이 있고, 이만한 일을 해낼 사람은 별로 없을거란 확신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적어도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회사가 내 능력 이상의 대접을 해준다면, 나 역시도 그 이상의 일을 할 것이다.


사실 회사의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다만 연봉 2000만원대를 계약해본 적이 없어서, 그 액수를 믿어보기로 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월급이 들어온 통장을 보면 미소짓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것도 참 우습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유수의 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이 분야만을 꾸준히 파고 스펙도 이 계열로만 쌓아왔는데 대체 뭐가 모자라고 뭐가 과잉되어서 채용이 안 되는 걸까. 세전 2400만원이라는 건, 말이 매달 200만원이지 세금을 떼면 그것에서 꽤 모자란다.


장난 삼아 만들었던 스티커다. 집 현관에 붙어 있는데 이젠 별 감흥이 없다.

나는 세전 2000만원에 성과급과 초과근무수당 없이 '뭐, 이 분야는 야근이 생활이죠'라고 웃던 모 기업의 면접관을 떠올렸다. 그 기업은 내게 면접에 합격했으니 출근하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역시 이 곳도 초과 근무 수당과 특근 수당은 없다. 아르바이트도 10시가 넘으면 야간 근무수당을 주는데, 어째서 그 이상의 직급이라 사료되는 회사 직원에게 초과근무수당과 특근 수당은 없지?


사실 지금까지 초과근무수당과 특근 수당은 단 한번도 받아본 적 없다. 그건 이름만 있지 영원히 볼 순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인가보다, 하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4. 축하하지 말아 줘


일자리를 소개해준 사람에겐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만두고 난 지금도 그렇다. 나에겐 맞지 않는 곳이었을지라도 그에겐 좋은 회사이니까.


그래서 여간해선 그 회사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싶었다. 아무리 익명의 공간이라 해도 이야기가 흘러가다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서럽고 갑갑한 건 어쩔 수 없다. 참아야지, 하면서 그저 한달의 근무 기억을 잊는데에 온 힘을 쏟았다.


다만 기억에 남는 건, 취업했다는 사실을 딱히 어딘가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했던 이전 직장의 동료들에게도, 대학 친구들에게도 딱히. 가족들의 축하도 거절했다.

머리카락을 잘랐기 때문에 다시 달라지는 삽화. 펜이 바뀌면 그림도 자꾸 바뀐다. 그림은 여전히 미숙하다.

축하할 일이 아니다. 축하받을 필요도 없고 나는 아무것도 기쁘지 않다. 당사자가 기쁘지 않은데 왜 주변에서 시끄럽게 난리들이냐. 기대치를 맘대로 높이지 말라며 되려 밀어냈다. 아르바이트만큼이나 입퇴사가 간단한, 한없이 엉덩이가 가벼운 계약직 인생인데 뭐가 얼마나 축하할 일인가 싶었다. 내가 긍정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월급 하나 믿고 간다고 해도 사실 난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난 더 능력이 있어. 난 너희들보다 똑똑하고 잘났어. 난 더 받아야 한단 말이야."


내 안에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 '나'의 목소리가 커진다.

오만하고 까다로워서 회사의 업무 시스템은 물론 책상과 화장실 설비, 주고 받는 인사말까지 신경쓰는 사람. 나보다 잘난 사람이 나타나면, 웃으며 다가가 번개같이 그의 목을 물어 뜯는 맹수. 그의 피 속에 녹아있을 지식과 경험과 생명력을 모조리 빨아 마셔 버리겠다는 야망이 들끓는 짐승. 진득한 물욕과 결핍된 인정에 끝없이 시달리는 약쟁이. (이 역시도 다른 형태로 괴물 같아서 무시무시하다.)


올 여름은 참 무더웠다.

올해도 괴물과의 동침은 계속 됐다.


날씨도, 삶도, 머리도, 생각도, 새하얗게 전소된 뒤에 돌아보니 9월이었다.




정신적 왼손잡이.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적 왼손잡이#31.쉬어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