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브 정 Jun 08. 2020

어쩌다 그림 - 상처를 칠하다

물감이 마데카솔이었어.

첫 아크릴 페인팅 작품

“정선생님, 처음 하시는 것 치곤 감각이 있으신데요? 허허.”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하.”

“연필 스케치는 어느 정도 하시는 것 같으니, 색채 작업을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잘 한다는 칭찬을 들으니 갑자기 얼굴이 달아 올랐다. 웃고 있는 얼굴 양 볼이 붉어졌다. 나는 속으로, ‘칭찬 들으니 기분은 좋은데 얼굴이 왜 빨개지지? 이런 느낌을 받아 본지가 언제 인지 기억이 나질 않네, 참 내.’ 라고 생각했다.

학생 시절에 나는 쑥스럽거나 멋 적을 때 얼굴이 빨개지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정말 세상경험 꽤 해 봤다고 생각하는 이 나이에 얼굴이 붉어지다니. 조금 당황스럽다가도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아마도 예상치도 못한 말을 갑자기 들어서, 혹은 칭찬이란 것을 받아본 지가 오래 되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 


대전에 내려가기 2년 전, 사업에 실패한 후 내 자존감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한 순간에 은행, 사채업자, 부모, 처가로부터 빚쟁이 신세가 되어 버렸고 회사를 위해 헌신하던 직원들 퇴직금도 못 주고 집으로 돌려 보내야 했다. 우리 회사에 납품하던 거래처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다시는 보기도 싫은 인물이 되어 버렸다. 나라는 존재감,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능력, 자신감, 열정, 신념 같은 것들은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구해와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너는 예의 바르고 한번 한 약속은 지키는 놈이니 어딜 가나 환영 받을 거야.’, ‘너는 어쩜 기획을 그렇게 잘 하니? 타고 났나봐.’, ‘유학 겨우 2년 다녀왔는데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구사하니?’ 이런 칭찬을 마다 않던 사람들이 차차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로부터 더 이상 얻어갈 것이 없다고 판단 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서서히 할 줄 아는게 별로 없는, 이 사회에서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아내마저 나를 능력 없는 남편으로 낙인 찍을 까봐 조바심이 났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끝까지 붙잡으려고 ‘노력’ 하였다. 


그 동안 나는 잘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아왔었다. 석사 학위가 두 개나 있으니까,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을 해 봤으니까, 해외 유학도 다녀 왔으니까, 소위 이런 스펙으로 채워진 경력을 배경으로 ‘나는 우수한 인재다.’라고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던 것 같다. 이런 자신감으로 사업의 ‘사’자도 모르는 내가 덜컥 사업에 뛰어들었었다. 자신감 하나로 말이다. 시쳇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세상은 이런 나를 무너뜨리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냉혹했다. 그 동안 나를 치장하고 있던 것들이 다 벗겨지고 알몸만 남았을 때, 그런 나를 내가 정면으로 바라 볼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 너 사업 자신만만하게 시작 하더니 결국 실패했네. 하기야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빚도 꽤 많이 졌네. 신용도 거의 바닥이고. 이렇게 된 마당에 하는 수 없지. 자,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래? 다시 도전 해 볼래? 넌 앞으로 뭘 할 수 있니? 뭘 잘하니? 뭘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창피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난 딱부러지게 잘하는게 하나도 없었다. 이거라면 자신 있어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가진 능력이라고는 전부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이런 나를 붙잡고 방황을 하며 2년을 보냈다.


그러던 나에게 ‘소질이 있으시네요.’, 잘 하시는데요?’ 하는 말 한마디가 귀에 꽂히니, 오랫동안 내 심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무언가를 부상시켜 피와 함께 온 몸에 퍼지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혈색이 돌고 얼굴이 상기되지 않았을까.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어처구니 없는 해석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 해보면 그 ‘무언가’란 바로 ‘나도 잘할 수 있는게 있구나.’ 였다. 그래 나도 잘 하는 게 있다. 할 줄 아는 것이 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 아닌, 나에게도 잘할 수 있는 것이 발견 되었다. 이걸로 뭔가 대단한걸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내 마음에 한두 방울 단비가 내린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자존감은 관계속에서 형성 되며, 인정받을 때 생겨난다.




“색채 작업은 수채화나 유화 같은 페인팅을 말씀 하시는 거죠? 유화는 학교 미술시간에 한번 해보긴 했어요.”

“아 그러세요? 초보자시니까 아크릴 페인팅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크릴이 유화보다 다루기가 더 쉬워요. 기름대신 물을 사용하고 수채화와 유화 느낌을 둘 다 표현 하는게 가능해요.”

“아 그렇군요?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하하”

나는 신바람이 나서 아크릴 페인팅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물감, 붓, 캔버스, 젯소 등등. 원장님으로부터 사진을 한 장 받아 그럴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그려가나 보려고 그러셨는지 그냥 한번 해 보라고만 하셨다. 나는 학창시절 유화를 한번 그려봤던 기억을 더듬어 어두운 색부터 밝은 색으로 칠해 나가기 시작했다. 


물감을 팔레트에 짜고, 붓에 물을 묻혀 이리저리 섞어보며 칠을 해갔다. 칠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동안 갈라지고, 벗겨지고, 뜯겨나간 내 마음이 아물어 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매주 한번씩 상처 난 곳곳에 예쁜 색의 물감으로 정성스럽게 칠을 했다. 아니 바르고 있었다. 물감이 마치 마데카솔 연고라도 된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그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