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있는 납골당은 겨울엔 엄지발가락이 바닥에 닿자마자 차가워질 정도로 춥다. 오빠는 1층 법당 아래에 있기 때문에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거기에는 납골함과 죽은 사람들의 사진이 위아래로 빼곡하게 차 있다. 사진의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사진 옆 빈 공간엔 작은 편지, 꽃, 사탕, 소주, 담배가 군데군데 놓여있다.
오빠가 세상을 떠난 후 2-3년 동안, 엄마와 납골당에 가면 차가운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한참을 앉아있어야만 했다. 엄마가 벌게진 눈으로 ‘이제 가자.’라고 말할 때까지. 나는 멍하니 오빠의 사진을 보다가 눈물을 몇 번 흘리고, 그다음에는 오빠 바로 위에 있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다가, 그 옆에 있는 젊은 남자의 사진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 다시 오빠의 사진으로 돌아와서 눈물을 흘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향로에 꽂아놓은 향이 다 타서 전부 하얗게 부스러지는 것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면, 차가운 바닥 때문에 딱딱해진 엉덩이의 감촉과 피가 안 통해서 저릿한 다리 통증이 내 몸에 깊게 남았다.
그때 나는 납골당은 오빠에게 좋은 곳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죄다 나이 많은 사람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답답할 것 같았다. 햇빛도 안 들어오고, 같이 놀 사람도 없는 어두운 그곳. 간신히 유골이 들어가는 작은 자리에 계속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언젠가 드라마에서 봤던 뼛가루를 넓은 강에 훌훌 털어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오빠에게도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엄마가 ‘이제 가자’고 말하는 시간이 약간 짧아졌을 때, 넌지시 말해봤다. “엄마, 오빠도 어디 뿌려주는 거 어때?”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져 화를 벌컥 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최근, 엄마가 다시 가게를 오픈했다. 30년 넘게 운영하던 미용실을 닫고, 2년 정도 쉬다가 장소를 옮겨 새롭게 시작했다. 가게 오픈 전에 엄마와 함께 납골당에 갔다. 아무도 없어 캄캄한 납골당의 불을 켜고 오빠의 사진을 쳐다봤다. 아직도 14살인 오빠가 그곳에 있다. 엄마는 그동안 오빠 앞에서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았지만, (엄마 혼자 갈 때는 오빠와 대화할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오빠의 얼굴이 보이는 차가운 액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들, 엄마 이제 가게 시작해. 엄마 쉴 만큼 다 쉬었어. 엄마 잘할 수 있게 도와줘.” 엄마의 결심인지, 다짐인지, 대화인지, 그냥 넋두리인지 모를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나오는 걸 참느라 온 몸에 힘을 세게 주었다. 나도 속으로 오빠에게 말했다. 그래, 오빠가 엄마 잘 도와줘.
이제 엄마에게 다시는 오빠를 좋은 곳에 뿌려주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빠가 있는 납골당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생각이 바뀌었다. 오빠의 납골당이 내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납골당에 가면 오빠와 내 나이의 차이를 세어본다. 내 나이를 확인하면,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물어보게 된다. 마음이 힘들면, 어린애처럼 기대게 된다. 하지만 오빠를 좋은 곳에 뿌려주고 싶었던 어렸을 때 생각이 지금보다 오빠를 더 사랑해서 한 생각인 것 같다.
이제 오빠가 없는 삶이 아주아주 익숙하지만, 오빠 생각을 평소에 잘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납골당에 가면 잠시나마 오빠 생각을 하게 된다. 오빠 생각과 더불어 내 마음도 체크하게 된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게 해달라고 속으로 오빠에게 말해본다. 오빠가 아직도 납골당에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