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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 Nov 23. 2022

나쁜 아침에도 하는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

"최대리, 잠깐 얘기 좀 하자."

대표님이 사무실에 오자마자 나를 회의실로 소환했다. 나는 양 발목에 5kg 쇠붙이가 달린 사람처럼 끌려갔다. 사실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회사에 일찍 도착했다. 회사에 아무도 없을 때면 종종 친구와 페이스톡을 했다. "나 오늘은 브이로그 찍는 직장인 컨셉으로 입었는데, 어때?" 입은 옷을 잘 보여주기 위해 모니터 각도를 조절했다. 그때 갑자기 대표님이 문을 벌컥 열고 사무실로 들어온 것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찍 오셨지. 친구의 얼굴이 둥둥 떠있는 화면을 끄느라 눈은 모니터에 고정하고, 마우스를 허겁지겁 움직였다. 대표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안녕하세요.."만 중얼거리듯 빠르게 말했다.


바로 그 인사 때문이다. 내가 지금 회의실로 끌려가는 이유는.

"너 요즘 왜 그래? 사람이 오면 최소한 눈은 마주치고 인사는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대표님의 질책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말은 죄송하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대표님이 꼰대라고 생각했다. '아예 인사를 안 한 건 아니잖아요... 얼굴 보고 하는 인사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죽을 만큼 싫은 '월말 광고주 보고 시즌'에는 대표님한테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한 건'으로 자주 소환당했다.

"은우야. 네가 그렇게 다운되어 있으면 나도 다운돼."

그 시즌에 내 목소리는 더욱 작고 낮아졌다. 발음은 웅얼거리고, 말끝은 머뭇거렸다. 내 눈은 초점이 없는 동태 눈깔로 숙성되고 있었고, 내 얼굴 채도는 무채색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사로 대표님한테 몇 번 소환당한 후에, 내 인사는 몇 개의 원칙이 생겼다. 첫째, 인사는 대표님 얼굴을 보면서. 두 번째,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세 번째, 고개도 끄덕거리면서. 내 인사에 제목을 붙이자면, '됐지? 나 인사했다? 인사로 잔소리하지 마!' 인사였다.


몇 달 후, 나는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됐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거지처럼 인사했었는지. 전 회사 대표님이 내 '거지 인사'를 보고 얼마나 속이 터졌을지. 그 회사에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인사하는 신기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활기찬 목소리로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소리쳤다. 그 사람의 눈은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저 사람 도대체 뭐야? '좋은 아침입니다'는 미드에서만 나오는 대사 아니었나? 이상하게 그 인사는 중독성이 있어서 아침마다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말을 은근히 기다릴 정도가 되었다.


나는 '아침인사 맨'에 중독되어 있었다. 저 사람도 분명 월요일이 싫을 텐데. 어제 야근했으면 다음날 출근하는 것도 싫을 텐데. 저 사람에게도 분명 나쁜 아침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인사 맨'의 인사는 매일매일 균일하게 화사한 빛을 품고 있었다. 그 빛에 담긴 아침인사 맨의 노력은 나의 하루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침인사 맨이 '좋은 아침'이라고 정의해주니까, 굳이 나쁜 아침일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조목조목 찾아 따질 필요가 없었다.


아침인사 맨에게 질 수 없어 우리 팀 막내에게 '좋은 아침입니다' 챌린지를 제안했다. 큰 소리로 모두에게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말하기는 아직 쑥스러워서 우리 둘이서만 몰래 하는 '좋은 아침입니다.'챌린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우리 둘은 나지막이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속삭였다. 어쩐지 '좋은 아침'이라는 단어가 한국말이 아닌 것 같아 말할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처음엔 웃음을 참고 말하느라 얼굴이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우리의 ‘좋은 아침입니다.’ 챌린지를 앞자리에서 지켜본 차장님은 ‘너네 정말 귀엽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나에게도 나쁜 아침이 더 많았다.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는 날도 있었고, 죽도록 출근하기 싫은 나쁜 아침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감정을 쥐어짜 내어 막내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말했다. 좋은 아침 챌린지가 내 하루의 기분을 완전히 바꾸진 못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나쁜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꼰대 대표님이 지금 '좋은 아침 챌린지'를 하는 나를 본다면 기가 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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