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서 길 잃은 한 마리 소금쟁이. 수영장에서 고프로로 내 모습을 촬영한다면 나는 아마 그렇게 보일 것이다. 발을 아무리 세게 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더 느리게 가다간 내 뒤에 출발한 사람의 손이 곧 내 발에 닿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수영을 멈추고 자리에 서서 기다리겠지. 또 민폐 수영을 할 순 없다. 마음이 급해진 만큼 발을 양쪽으로 벌려 더 강하게 찬다. 있는 힘을 다해 겨우 레인의 끝에 오면 숨이 차오른다. 평영을 잘하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머리는 다 아는데 몸뚱아리는 아직도 모른다.
우리 반에는 80살 할머니 수강생이 있다. 할머니의 발차기는 그 누구보다 우아하다. 어딘가 나사가 빠져 관절이 고장 난 로봇 같은 나와는 다르다. 핸드폰 가게 앞에서 왼쪽으로 웨이브 하다가 바로 오른쪽으로 웨이브 하는 갑판 인형 같달까. 그런 할머니 수강생은 물 밖에서는 영락없는 진짜 할머니다. 느릿느릿 조심스레 작은 보폭으로 걸어 다닌다. 선생님이 하는 말이 안 들린다며 나에게 다시 한번 물어볼 때도 그렇다. 하지만 물속에만 들어가면 우아한 인어가 된다. 인어 할머니가 어김없이 허우적거리는 날 보고 말했다. “그냥 천천히~느긋하게~배운다고 생각하면 돼~”
“평영은 약하게 시작해서 강하게 물을 모아 마무리하는 거예요. 강! 약 순서가 아니라 약-강! 순서로! ”
선생님이 핏대를 높여 소리치는 말을 듣고 의문이 생겼다. 약하게 시작해서 어떻게 강하게 끝내지? 약-강! 을 대뇌이고 발을 차 보지만 ‘약’ 파트에서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발목은 ‘강’ 파트에서 힘이 풀려 덜렁덜렁거렸다. 관대한 선생님은 그래도 긍정적인 말로 날 위로해 준다. 계속 연습하면 될 거라고.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발을 너무 세게 차서 허리와 무릎이 뻐근했다.
강습이 없는 자유 수영에 가면서 선생님이 해준 말을 생각했다. 더군다나 오늘 자유 수영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내 마음대로 천천히 해도 될 것 같았다. 선생님 말대로 몸에 힘을 빼고 느리게 발을 찬 다음 발을 모을 때 힘을 주니까 앞으로 쭉 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다! 이거다! 나는 그 감각을 잊고 싶지 않아 한 시간 동안 평영 발차기만 연습했다. 힘을 빼면 뺄수록 앞으로 잘 나아가는 게 신기했다. 그동안 나는 죽어라 열심히 뛰고, 나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강강’ 모드로만 살았는데. 평영은 청개구리 같았다. 열심히 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고 놓아버리니까 그제야 앞으로 나아갔다.
나의 ‘강강‘모드를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강하게 시작하기’ 버튼 하나만 있는 사람이다. 버튼이 켜진 상태에는 무언가에 꽂혀 열정을 쏟아붓고 몰입한다. 하지만 어려움이 생기면 바로 전원이 꺼져버려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모드가 되어버린다. 내가 버튼이 한 개 밖에 없는 걸 잘 아는 지난 회사 팀장님은 ‘어떻게 하면 내가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주제로 회사 이사님과 이야기한 적 이 있다고 했다. 나는 눈이 반짝였다. 그거야말로 내가 제일 알고 싶었다! 팀장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포기하는 방법을 알면 성장할 수 있을 거야. “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어리둥절했다.
“제가 너무 욕심이 많다는 말이에요?”
팀장님은 여전히 웃지 않고 말했다.
“아니. 그거랑은 달라. 회사라는 조직 자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적당히 포기하고 적응을 해야 해. “
팀장님 말을 더 정확히 해석하자면 나는 포기하는 방법이 아니라 ‘적절하게’ 시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가전회사 마케터로 근무할 때, 머릿속에 ’강강‘버튼이 켜졌다. 어버이날 기념으로 다리 마사지기를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제안했지만, 해당 제품의 충분한 제고가 없어서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른 품목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벤트를 진행해 보라고 팀장님은 이야기했다. 김이 새버린 나는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어버이날에 딱 맞는 힐링 제품이 아닌 처음 기획 의도와 벗어난 이벤트를 진행하기 싫어 아예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벤트 내용이나 품목을 바꾸어 ‘약강’ 모드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청개구리 평영은 나에게 몸으로 알려줬다. 과하게 뜨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기보다, 어느 정도 마음을 가볍게 비우고 유연하게 시작하는 것을. 어느 부분은 적절히 타협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 미친 듯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한번 경험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 부드러운 발차기를 보여주는 유연한 인어 할머니처럼, 뻣뻣한 내 삶의 태도에도 말랑말랑한 마음이 물들기를 희망한다. 계속 연습하면 잘될 거라는 선생님의 기약 없는 낙관적인 말 보다, 인어 할머니의 80년 노하우가 농축된 말이 내 마음에 살랑거린다. 천천히~느긋하게~배운다고 생각하고~